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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마크 트웨인의 ‘아담과 이브의 일기’

기자명 박사

이브, 첫 탐구자 모범을 보여주다 

상상속 아담과 이브 일기 통해
최초 혼란에도 자기현실 인정
끈질긴 관찰과 탐구정신 발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 전해

‘아담과 이브의 일기’
‘아담과 이브의 일기’

마크 트웨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를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돌아다니는 그의 농담을 피하기는 어렵다. 담배를 끊어보려 했던 사람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농담인 “담배처럼 끊기 쉬운 것은 없다. 나는 백번도 넘게 끊었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말은 위트와 아이러니가 무엇인지 한눈에 명쾌하게 보여준다. 

그런 그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를 상상한다면 어떤 얘기를 할까. 그의 작품 ‘아담과 이브의 일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들의 일기를 각각 발췌한 형태로 쓰여진 이 책은 태초의 혼란 속에 서로를 뜨악하게 바라보던 이들이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키득키득 웃는 것은 독자의 몫. 

전설대로라면 아담과 이브는 만물에 처음으로 ‘이름’을 지어준 이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12연기의 ‘식’과 ‘명색’ 사이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이 이름을 정하는 과정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다. 아담은 이브가 “내가 이의를 제기하기도 전에, 보이는 모든 것에 이름을 붙여버린다. 그리고 항상 그 똑같은 핑계를 댄다. 그렇게 생겼잖아”라며 투덜댄다. “가령, 도도새가 있다고 치자. 그것을 보자마자 한눈에 ‘도도새처럼 생겼네’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것은 으레 그 이름을 갖게 된다. 그런 일에 안달복달하자니 넌더리가 나고, 어차피 그래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도도새라니! 그것은 나만큼이나 전혀 도도새처럼 생기지 않았다.”

물론 농담이다. 아담과 이브가 창조 이전에 도도새를 보았을 리는 없으니, 도도새처럼 생겼는지 아닌지 알 리가 있나. 마크 트웨인은 그들을 최초로 농담을 한 사람들이라 여긴다. 물론 아담과 이브는 농담에서만 최초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세계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다. 어쨌든 세계는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되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특히 이브는 공부하려는 이들이 갖추어야 할 태도의 첫 모범을 보여준다. 자신이 그다지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며 끈질기게 관찰하는 노력을 버리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실제로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고, 그러면 앎을 얻게 되지만, 짐작과 가정과 추측에 의존하면 결코 박식해지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짐작과 가정과 추측이다. 짐작과 가정과 추측은 상을 만들고 개념을 만들어 우리의 눈을 가린다고 부처님은 지적하셨다. 이브는 스스로 얻은 옳은 결론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어떤 것들은 답을 얻을 수 없지만, 짐작과 가정으로는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조차 결코 알아내지 못할테니, 정말이지,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낼 때까지 참을성 있게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답을 찾게 되면 기분이 아주 좋고, 세상이 몹시 흥미로워진다.” 

이브가 세상의 진리를 알아내려는 사람들의 선구자로서 탁월한 점은 그 끈질긴 탐구정신에서 또 한걸음 나아간다는 것이다. “답을 얻으려고 노력해서 답을 얻지 못하는 것조차 답을 얻으려고 노력해서 답을 얻는 것 못지않게 흥미로우며,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그 깨달음은 결국 우리가 무지의 상태에서 용맹정진하며 공부한 끝에 도달한 곳이 ‘오직 모를 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무용한 시도가 아니었음을 설득력있게 알려준다. 첫 탐구자 이브의 결론은 지금도 유효하다.

물론 이 책은 실제 이브와 아담의 일기가 아니며, 우리는 이브가 이 세상을 어떻게 보았을지 알지 못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마크 트웨인이 이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지일 뿐이다. 수많은 작품을 통해 웃음과 함께 반짝이는 진실을 보여준 마크 트웨인이 어떻게 이 세상에서 그 진실의 조각들을 길어올렸는지, 이브의 말 속에서 힌트를 얻는다. 여실지견. 그렇게 볼 때, 세상은 비로소 만들어진 제 몫을 다 한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604호 / 2021년 10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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