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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하이케 팔러의 ‘우정그림책’

우정은 어떻게 우리를 살게 하는가 

글‧그림으로 구성된 우정 풍경
현실 속 우리 모습 그대로 반영
인연은 복잡한 그물망으로 연결
친구, 매일 ‘나’ 발견케 하는 힘

‘우정그림책’

혼자는 살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아무리 외톨이라도 완벽하게 타인과 단절된 삶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정은 어떨까. 우정 없이 살 수 있을까. 극단적인 경우가 없진 않겠지만, 우정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견딜만하게 해준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없으리라.

이 책은 여운이 남는 그림과 간결한 문장으로 우정의 풍경을 보여준다. 책 속의 ‘우리’들은 늘 함께 있다. 좋은 순간도 많았지만 때로는 적이 되어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난감한 순간을 함께 넘으며, 어떨 때는 멀어지기도 하고, 잊었다 싶은 순간에 다시 만나면서. 책 속의 우정 풍경은 현실 속의 우리를 그대로 반영한다. “나더러 틀렸다고 하면서도/ 뭘 하든 편을 들어주고/ 내게 비밀을 털어놓는”내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한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새 친구들을 소개받고 돌아오는 길에 우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와 새 친구들이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는지, 어떤 특별한 비결이 있었는지, 우리 우정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광대한 우주의 수많은 사람 중 두 사람이 어딘가에서 언젠가 서로를 찾아내 친구가 된다는 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에 대해서. 그는 우정에 대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우정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는 먼저 ‘우정사슬’을 만든다. 한 친구에게 다른 친구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고, 그 친구를 찾아가 또 다른 친구를 이야기해달라고 하고, 그 친구에게 또 다른 친구 이야기를 듣는 방식이다. 이렇게 우정의 사슬을 따라가자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줄이 그의 시야로 들어온다. 그렇게 맞잡은 손들이 지구를 세 바퀴쯤 돈다. 그러면서 그는 몇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을 발견한다.

첫 번째는 오래되고 각별한 우정의 대부분이 스무 살에서 서른 살 사이에 맺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주로 같은 반이나 옆자리의 아이와 친구를 맺었던 어린 시절의 학교를 졸업한 이후,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과 비슷한 이를 발견하게 된다. 더구나 그 시기는 앞으로의 삶이 결정되는 때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특징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첫 만남 때 직관적으로 서로를 알아본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이유를 최근의 신경과학 연구에서 찾는다. “어떤 특정 상황에서 두 사람의 뇌 반응이 비슷할수록 그들이 친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물론 우정이 지속되는 것은 함께 보내는 오랜 시간과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에 좌우된다.

인상적인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일 그 사람을 어디 다른 데서 만났다면 우정을 쌓기가 힘들었을텐데, 바로 이 상황에서 만났기 때문에 친해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인연법을 떠올리게 한다. 상황과 조건을 떠난 관계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의 인연은 복잡한 그물망으로 연결된다. 가끔 우리의 만남이 기적처럼 느껴지는 이유ㄷ 거기에 있다. 어떻게 나와 그가 하필이면 그곳에, 하필이면 그때에 같이 있었을까. 그리하여 저자는 이 책을 이렇게 시작한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은하수라는 까마득한 별무리/ 그 수많은 별 가운데서/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어떻게인지 모르겠지만 너와 내가 만났어.”

책을 덮으면 전화를 찾게 된다. 그 까마득한 우주 한복판에서 만나 여전히 내 곁에 남아있는 친구를 생각하게 된다. 서로의 좋은 점을 찾고, 서로의 약점에서 나의 모습을 보고, 서로의 상처에서 닮은꼴을 발견하고, 서로의 성과를 기뻐하고, 서로를 거울삼고 서로를 반면교사 삼으며 함께 살아가는 내 친구. 우정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매일매일 나를 발견하게 하는 힘.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좋은 도반은 수행의 절반이 아니고 수행의 전부”라고 말씀하셨던 것일 것이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606호 / 2021년 10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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