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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윤이상의 플루트 협주곡

기자명 김준희

동양 전통과 유럽 현대기법 녹여 불교 색채 가득 

윤이상, 송담 스님에게 법명 받고 장례식도 유언따라서 불교식
관현악 ‘바라’ 오라토리오 ‘옴 마니 파드메 훔’ 등 불교 작품 다수
플루트 소리를 대금처럼 사용…산조와 판소리 영향도 잘 드러나

자신의 연주 포스터 앞의 윤이상. 1970년 3월6일, 빈의 뮤직페라인에서 그의 대표작인 불교 오라토리오 ‘옴 마니 파드메 훔’이 연주되었다.
자신의 연주 포스터 앞의 윤이상. 1970년 3월6일, 빈의 뮤직페라인에서 그의 대표작인 불교 오라토리오 ‘옴 마니 파드메 훔’이 연주되었다.

윤이상(1917~1995)의 ‘플루트 협주곡(1977)’은 북부 독일 휴양지 히차커에서 매년 개최되는 여름 음악 페스티발협회의 의뢰를 받아 작곡된 곡이다. 당시 위촉곡을 연주하기로 예정된 플루티스트는 뛰어난 기교와 빛나는 음색을 가진 칼하인츠 쵤러였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피아니스트로 더 잘 알려진 귄터 바이센보른이었다. 윤이상은 이를 고려하여 독주자의 역량을 더욱 돋보이게, 오케스트라 파트는 작은 관현악 편성으로 단순하게 작곡하였다. 

윤이상의 음악세계의 원류는 서양음악과 동아시아 음악이다. 윤이상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에 영향을 받아 작곡했던 것과는 별개로 스스로 특정 종교인이라고 밝힌 바는 없다. 하지만 그는 “동아시아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불교를 공기처럼 받아들인다”고 생각했고, 유년 시절 고향 통영에서의 다양한 체험을 기억하며 불교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어린시절 통영에서 겪었던 문화적 체험과 다양한 공연들은 그의 작품에 혼합된 한국과 동아시아 문화로 표현되었다. 

그의 작품 중 관현악을 위한 ‘바라(1961)’, 오라토리오 ‘옴 마니 파드메 훔(연꽃 속의 진주여!, 1964)’,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나모(1971)’에서는 불교적인 내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또 11개의 성악곡과 기악곡에서 불교적인 소재와 주제를 찾을 수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곡이 ‘플루트 협주곡(Das Konzert für Flöte und kleine Orchester, 1977)’이다. 사실 윤이상은 한때 기독교에 입교한 적은 있지만, 인천 용화사의 송담 스님께 청공(靑空)이라는 법명도 받았으며, 독일에서 치러진 그의 장례식은 유언에 따라 불교식으로 거행되었다. 따라서 그가 불교적 영감을 받아 작품 활동을 한 것은 필연적인 일일 것이다. 

윤이상은 ‘플루트 협주곡’을 작곡할 때 두 편의 시에서 주요 소재를 찾았다. 하나는 고려가요 ‘청산별곡’이고, 다른 하나는 ‘청산별곡’에서 영향을 받아 지어진 신석초(1909-1975)의 산문시 ‘청산아 말하여라’이다. 윤이상은 신석초 시인의 시를 해방 전후 어느 잡지에서 읽었다고 이야기 했는데, 윤이상은 ‘청산별곡’과 함께 이 시에서 음악적 담론을 찾았다. 윤이상이 회상한 ‘청산아 말하여라’는 상당히 몽환적이고 매력적이었다. ‘달빛이 비치는 절의 마당에서 소녀가 꾸는 신비스러운 꿈에서 깨어나는 장면’을 윤이상은 ‘플루트 협주곡’의 전체적인 음악적 진행의 모티브로 하여 다음과 같이 구체화했다. 

“무(無)에서 시작하여 이야기 줄거리가 생성되고 아름다운 사찰을 둘러싼 자연 속에서 정열과 명상, 의무와 인간성에 끼인 한 사람의 피와 살이 갈등하고 자문자답한다. 그동안 관현악은 신비스러운 밤의 자연 풍경을 펼쳐나간다. 독주는 절정에 도달하였을 때 카덴차로 ‘폭발’한다. 이 플루트의 카덴차는 자아를 해탈하여 광란의 도취경에 이른다. 이윽고 현실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처음처럼 알토 플루트로 바뀌며, 음악은 다시 처음 시작할 때처럼 명상을 통해 무로 돌아간다.(최성만/홍은미 공저 ‘윤이상의 음악세계’ 중에서)”

윤이상에게 플루트라는 악기는 첼로와 더불어 그의 음악적인 자아를 가장 잘 표현하는 악기이다. 플루트 독주곡에서 보여준 산조와 판소리에서 영향을 받은 기법들 역시 이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이 작품에서 알토 플루트-플루트-알토 플루트를 교대로 사용하여 세 단락으로 뚜렷한 구성을 보여주었다. 전체적으로 단악장으로 구성되어있지만 ‘느림-빠름-느림’의 세 부분으로 되어있으며, 중간의 빠른 템포의 부분은 다시 ‘빠름-느림-빠름’의 작은 단락 구조를 보인다. 윤이상의 음악적인 특징 중의 하나인 상승세의 분위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해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처님에게 다가가는 것, 혹은 그러한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첫 부분은 더블베이스의 고요한 리듬 위로 낮은음의 플루트 솔로로 시작한다. 곧 목탁의 소리와 같은 탐탐과 우드블럭의 리듬이 교차하며, 현악기의 피치카토와 관악기가 등장하며 법고의 소리와도 같은 작은북도 더해진다. 현악기의 고음과 더불어 계속되는 플루트의 소리는 마치 대금을 연상하게 한다. 전반적으로 사찰에서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이 부분은 바순, 호른 등이 더해지며 긴장감을 가득 담고 중간 부분으로 넘어간다. 

빠른 패시지로 시작하는 중간 부분은 특히 플루티스트의 역량이 필요한 부분이다. 알토 플루트의 파트가 끝나고 (일반)플루트로 연주하게 되는 중간 부분 안의 작은 느린 부분은 정적이면서도 에너지를 담고 있는데, 곧 그 에너지는 우드블럭의 리듬과 함께 물흐르는 듯한 오케스트라 파트에 이어 긴장감 넘치는 선율로 폭발적으로 표현된다. 

비브라폰 등 다양한 타악기와 함께 하는 이 부분은 이 곡의 하이라이트이다. 법고를 연상케 하는 작은 북의 리듬 이후 플루트의 카덴차는 플루트 연주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플루트 고유의 음색은 물론이고, 전타음과 트릴, 부유(浮游)하는 듯한 비브라토, 가볍게 건드리는 듯한 취주 기법으로 표현된 동양적인 소리는 플루트의 모든 기법을 다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윤이상이 표현하고자 했던 황홀경 혹은 부처님께로 다가가는 부분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다시 알토 플루트로 연주되는 마지막 부분은 탐탐의 리듬으로 시작되는데, 첫 부분보다는 조금은 변화감이 있는 선율들이 썰매방울, 공, 효시기 등의 타악기와 함께 진행된다. 수미쌍관을 느끼게 하는 고요한 마지막 부분은 우드블럭의 사라지는 듯한 리듬을 마지막으로 끝맺음한다. 

서양의 청중들에게는 이국적이고 동양적인 느낌을 주고, 우리에게는 따뜻하고 익숙한 섬세한 감성이 전달하는 ‘플루트 협주곡’은 플루티스트의 상당한 연주력이 요구되는 수준 높은 작품으로, 종종 국제 플루트 콩쿠르의 지정곡으로 채택되기도 한다. 윤이상은 스스로 ‘나는 아름다운 플루트 소리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작곡하였다’라고 말한 바 있다. 섬세하게 채색된 오케스트라의 음향에 조심스럽지만 선명하게 표현된 유리알 같은 플루트의 선율은 전체적으로 긴밀한 구성력을 보여준다. 동아시아의 음악 전통과 유럽의 현대적 작곡기법이 공존하는 불교적인 색채가 가득한 윤이상의 ‘플루트 협주곡’이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가치있는 레퍼토리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611호 / 2021년 12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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