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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바라문 청년 수바를 교화하다 ①

출재가의 구분은 불필요…구체적 실천이 중요

출가 향한 부정적 견해에 대해
출재가 구분 중요치 않다 밝혀
부처님, 이분법적 논리 벗어나
법을 잘 분별해 깨달음 이끌어

재가와 출가의 삶을 구분 짓는 것은 오랜 역사를 갖는다. 어떤 삶이 보다 나은 삶인지, 어떤 삶이 진정한 의미에서 올바른 삶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 왔다. 유교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사고했던 조선의 많은 유자(儒者)들이 출가의 삶을 비난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주제는 과거의 여러 시대에 있었던 것이 아닌, 여전히 오늘날에도 간혹 듣게 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맛지마 니까야’에 ‘수바의 경(Subha sutta)’이 전한다. 이 경전에서는 수바라는 젊은 바라문이 일이 있어 코살라국의 사왓띠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어떤 장자의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하루는 “사왓띠에 아라한이 없지는 않다고 들었습니다. 누구를 만나 공경을 표하면 좋겠습니까?”라고 장자에 물었다. 이에 장자는 부처님을 소개하게 된다. 

[수바] 존자 고따마여, 바라문들은 이와 같이 ‘재가자는 바른 길,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성취하지만, 출가자는 바른 길,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성취하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 존자 고따마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붓다] 바라문 청년이여, 그것에 대해 나는 분별한 뒤에 말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일방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라문 청년이여, 나는 재가자이건 출가자이건 잘못된 실천의 길에 들어서면, 그들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바라문 청년이여, 재가자이건 출가자이건 잘못된 실천의 길에 들어서면, 그 잘못된 실천의 길로 말미암아 바른 길,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성취하지 못합니다. 바라문 청년이여, 나는 재가자이건 출가자이건 올바른 실천의 길에 들어서면, 그들을 칭찬합니다. 바라문 청년이여, 재가자이건 출가자이건 올바른 실천의 길에 들어서면 그 올바른 실천의 길을 원인으로 바른 길,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성취합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수바라는 젊은 바라문은 부처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적대적 감정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 이 경전에서 수바는 부처님과 많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분노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우선 수바는 출가자는 바른 길,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성취하지 못하는 삶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바라문은 재가의 삶을 사는 귀족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바라문은 사회적 계급질서에서 최상위 계급이다. 그리고 출가자로 대표되는 ‘사문’은 이들 바라문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자유사상가들이다. 수바가 출가자의 삶을 비판하는 것은 바라문 중심주의에 대해 도전하는 사문들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명확한 답변으로 질문에 대답한다. 즉 ‘나는 분별한 뒤에 말하는 사람이지 일방적으로 말하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대목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분법적인 사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른바 흑백논리,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다. 부처님이 ‘나는 분별한 뒤에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한 말은 당신이 출가자의 삶을 선택하였지만 무조건 출가자의 삶이 좋고, 재가자의 삶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다. 분별하여 말하는 사람(vibhajjavādo)은 부처님을 부르는 또 다른 별칭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처님을 ‘분별설자(分別說者)’라고 한다. 분별이란 법을 잘 분별하여 사람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부처님에게 재가자나 출가자의 구분은 사실 무의미하다. 달리 부처님을 행위론자(行爲論者)라고도 표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 경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잘못된 길을 실천하느냐, 올바른 길을 실천하느냐’라는 구체적인 실천을 보아야 하지, 그가 출가자인지 재가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부처님은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부처님은 사실과 관념을 혼동하여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바르게 보여주시는 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분별하는 사람’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611호 / 2021년 12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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