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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정선혜의 ‘초롱이의 첫 뒤집기’

기자명 신현득

갓난아기 초롱이의 시인 할머니가
초롱이 시점으로 생각하고 본 세상

움직이는 나뭇잎은 나무 날개
꿈속 생각은 할머니 허리 낫고
아버지 통장 숫자 늘어나는 것
첫 뒤집기에 걷는 아기 상상도

허리를 다친 초롱이네 할머니가 아가 초롱이를 들여다보고 있다. 초롱이를 들여다보면 다친 허리가 빨리 낫는 기분이다. 이 녀석의 첫 소리는 “응아”였다. 눈과 귀가 열리면서 자기 주변의 것을 보고 소리를 듣는다. 어르면 말하듯이 옹알거린다. 눈으로 움직이는 것을 주시한다. 

이러한 초롱이를 관찰해서 쓴 초롱이네 할머니의 동시 한 편을 살펴볼까? 

초롱이의 첫 뒤집기 / 정선혜

갓난아기 초롱인 베란다 앞 나무를 보고 생각해요. 
하늘거리는 초록 잎사귀
나무의 날개라고 생각했지요. 

나무가 날게 되면 
뿌리째 뽑혀 날아갈까?
나무가 잘 때 초롱인 꿈을 꾸지요. 

허리를 다친 할머니 
얼른 나아서 
같이 나가는 꿈. 
                  
늦은 밤까지 일하는 우리 아빠
집 장만 위한 통장에 
숫자가 쑥쑥 늘어나는 꿈. 

어떻게 도울지 도무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나무는 잎사귀만 쫑긋.
초롱이도 그냥 방긋 웃지요. 

봄이 다 가는 날 부는 바람에 
나무는 숨겼던 날개, 꽃잎으로 날아올라요.

이것 봐! 나도 때가 되면 할 수 있어.
초롱인 뒤집기를 했어요.
뒹구르르.

정선혜 동시집 ‘초롱이 방긋 웃으러 왔어요(2021)’에서.
 

누워있는 아기 초롱이는 창너머 베란다 앞,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에는 이파리가 팔랑거리고 있다. 바람이 시키는 일이다. 

‘저 움직이는 게 나무의 날개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무가 하늘을 날아다니겠네. 뿌리를 쑥 뽑아서 하늘을 날겠군.’ 하고 초롱이가 생각하는 것 같다. 이건 시인인 초롱이네 할머니의 생각이다.

초롱이는 생각을 계속하는 것 같다. ‘나무도 나처럼 누워서 잠을 자나봐. 그렇다면 나무도 나처럼 꿈을 꿀 거야.’  

초롱이의 꿈은 할머니 다친 허리가 말짱하게 나아서 초롱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이웃에서 이웃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구경시켜 주는 그거다. 그리고 초롱이 꿈 또 하나는, 집을 장만하기 위해 늦게까지 일하는 아빠의 저금통장에서 숫자가 쑥쑥 늘어나는 그게 아닐까? 하는 할머니의 생각이다. 

그때, 아기 초롱이가 뒤집기를 했다. 뒹구를르 뒹구르르…. 초롱이의 첫 뒤집기다. 뒤집기를 시작했으니 내일부터는 온 방안을 뒹굴거다. 뒤집기 다음은 기어다니기다. 엉금엉금 기다가 일어나 앉을 거다. 손에 잡히는 걸 붙들고 일어설 거다. 그 다음이 초롱이의 걸음마다. 그러다가 “함머니!” 하고 시인 할머니에게 안길 거다. 

“뒤집기 하던 초롱이가 그사이에 다 커버렸네.”
“아프던 할머니 허리는 지난해에 벌써 나은 걸요.” 

엄마가 말을 거든다. 세월이 빠르다.

손녀 초롱이를 둔, 초롱이네 할머니 정선혜 시인은 경복궁이 가까운 서울 사직동 출생이다. ‘아동문학평론’(1981)과 ‘아동문학연구’(1999)에서 평론과 동시로 등단, 평론집 ‘한국 아동문학을 위한 탐색’, 동시집 ‘다롱이꽃’ 등 저서를 냈으며, 방정환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한국교원대학교와 한국독서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동심치유연구소 소장의 일을 보고 있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612호 / 2021년 12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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