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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온고이지신 (끝)

부처님 법대로 살려는 내부자 시선이 종학 시작

‘불교를 하는 행위’ 속엔 학문연구 비롯해 실천하는 삶 포함
들러리 아닌 신앙 주체로서 불교 보려는 관점의 전환 필요
옛 불교인들처럼 전통·현재 아우르는 새로운 ‘판짜기’ 절실

신규탁 교수는 “조계종, 태고종, 진각종 등등을 대상으로 삼아 연구하는 ‘불교학’이 아닌 주체의 시선으로 정립된 ‘종학’도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사진은 조계종 교육원이 11월15일 개최한 세미나에 참여해 발표와 토론을 벌이는 교육아사리 스님들.
신규탁 교수는 “조계종, 태고종, 진각종 등등을 대상으로 삼아 연구하는 ‘불교학’이 아닌 주체의 시선으로 정립된 ‘종학’도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사진은 조계종 교육원이 11월15일 개최한 세미나에 참여해 발표와 토론을 벌이는 교육아사리 스님들.

‘사이언스’와 ‘테크놀로지’, 그리고 ‘시민혁명’과 ‘의회민주의’로 새롭게 정비된 서양의 ‘근대 유럽’과 그 유럽을 모델로 한 ‘근대 일본’은 온 세상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현재의 G7이다.

저들은 자신들이 세운 철학, 역사학, 문학, 신학, 언어학, 문법학, 문헌학, 그리고 ‘자연과학’이라는 ‘보편학’을 기반으로, 제국(帝國)의 확장을 위해 앞을 다투어 ‘아시아 경영’ 내지 ‘아프리카 경영’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저들은 서유럽 이외 모든 지역을 ‘지역학’의 범주에 넣어 연구했고 놀라운 성과도 내었다. 이제 세상의 학문, 그중에서도 인문학은 둘이 되었다. 하나는 ‘보편학’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학’이다.

‘지역학’의 하나로 ‘인도학’과 ‘중국학’과 ‘조선학’은 서유럽과 그 영향을 받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해당 지역의 언어와 문법, 또 종교와 사상, 또 역사와 풍습, 그런 등등을 ‘대상으로 삼아서’ 연구를 했다. 한 예로 한어(漢語), 조선어(朝鮮語), 나아가 고대 범어(梵語) 등의 문법책을 비롯하여 그 지역의 철학사 관련 서적이 서유럽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도 그런 연구의 성과이다.

불교 연구도 예외는 아니다. ‘인도학’의 범주 속에서 불교를 연구하기도 하고, ‘중국학’의 범주 속에서 불교를 연구하기도 하고, ‘종교학’의 범주 속에서 불교를 연구하기도 한다. ‘불교학’이라는 용어는 학적 방법론이 정립되지 않은 일반적 호칭이다.

서유럽에서 시작된 지역학으로서의 불교 연구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도 소개되고, 현재 한국 학계에도 그 방법으로 훈련받은 학자들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필자도 그런 축에 속하는 사람으로, ‘중국학’의 일환으로 중국불교를 연구한다. 중국의 언어, 역사, 사상, 종교, 문화 속에서 ‘중국의 불교를 대상화’ 하여 연구한다.

자, 그러면 유럽은 세계이고, 나머지는 지역인가? 유럽은 보편이고, 여타 지역은 특수인가? ‘중심과 주변’, ‘보편과 특수’라는 인식의 틀로 ‘나의 삶’ ‘우리의 삶’을 ‘타자(他者)’의 시선에 내맡길 것인가? ‘우리’ 또는 ‘내’가 남의 연구 대상이기만 한가? 그런 점도 있지만, 내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영위해가는 주체이다. 대상이 아닌 자신 말이다.

‘타자’의 시선이 아닌 ‘주체’로서 살아가는 즉 ‘스스로 불교를 하는 행위’가 바로 종학(宗學)이다. 자신이 불교이고, 불교가 자신이다. ‘불교를 하는 행위’ 속에는 학문적인 연구를 비롯하여 실천하는 삶을 포함한다. 제 ‘자신’이 제 인생의 주인이 되어 세상을 보는, 나아가 이런 ‘자신들’의 신앙이 주체가 되어 불교를 보는, 이런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역학’이라는 들러리의 시선이 아닌, 주인의 자각이 필요하다. 조계종, 또는 태고종, 또는 진각종 등등을 대상으로 삼아 연구하는 ‘불교학’이 아닌, 주체의 시선으로 정립된 ‘종학(宗學)’도 필요하다.

‘종학(宗學)’에서 ‘종(宗)’은 최고의 정점에서 산 전체를 조망하는 안목에 비유될 수 있다. 종학의 정립을 위해서는 조계종이면 조계종, 태고종이면 태고종, 각 종단의 전통을 보편의 지평 위에서 재구성하는 과정이 우선 필요하다. 동시에 이 시대의 문제를 적극 해석하려는 자세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전자가 과거에 시선을 둔다면, 후자는 현재 지금을 주목한다.

이런 종학이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방면이다. 하나는 과거이고, 또 하나는 미래를 포함한 현재이다. 우선, 지난 과거의 정체성을 점검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으로, 세계관, 인생관, 역사관, 교리, 의례, 소의경전, 법회, 세속화된 종교 행위, 출가공동체, 재가공동체 등등이다. 다음으로, 현재 직면한 현실과 그 대안으로, 가치, 인권, 환경, 생명, 공동체, 사유재산, 국가, 산업, 직업, 가족, 다종교, 다문화 등등이다.

기존의 불교 관련 교수와 스님들이 위에서 거론한 각 방면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와 그에 따른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문제는 이런 연구보고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그 각각의 사안들에 대한 시-비, 경-중, 선-후 등을 구조적으로 종합해서 조직화하는가이다. 필자는 이에 대한 기본 철학으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또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 불교계의 대부분의 종단은 옛 전통에 뿌리 내리고 있다. 그런 한국 불교의 전통 속에는 긴 역사 속에서 겪었던 수없는 시련과 극복이 축적되어 있다. 또 서유럽의 근대적 산물에 기인한 불교 문헌자료 방면의 새로운 연구가 현재하고 있다.

전통을 고수하는 다른 지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역동성’이 현재하고 있다. 전통과 현재를 아우르는 새로운 ‘판짜기’가 필요하다. 지난 역사에서 우리 불교계는 그런 일을 해왔다.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시대에는 산중에서 청빈하게 살면서 참선 수행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당시로서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인재이나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 승려와 사찰의 지위가 향상되었고, 또 영조와 정조 임금 이후 새롭게 부흥하는 학문 연구에 힘입어, 뛰어난 학승들이 ‘화엄’과 ‘염송’을 연구하여 새로운 강학(講學) 시대를 열어갔다. 간화선 수행을 중심으로 하면서 화엄교학을 아울렀다. 이렇게 하여 조선 후기 이래 해방 전후까지의 긴 전통이 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일제의 왜곡된 근대화를 바로 잡으면서, 수행의 풍토를 재건하려했다. 성철 스님의 ‘봉암사결사’가 초석이 되었다. ‘청빈한 삶’으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운동이다. ‘부처님 법’이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초기불교가 그것이라느니, 대승불교가 그것이라느니. 아무런 역사가 없었던 지역이라면 다 옳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불교의 긴 역사가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필자는 ‘온고이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 불교는 저 멀리는 조계의 남종선을 전한 도의국사, 그리고 고려의 보조와 태고, 그 후 태고 보우국사를 중시조로 하여 ‘조파(祖派)’를 전수하고 있다. 선종의 맥 위에 조선 후기에는 화엄교학을 수용했다. 이런 우리의 전통 위에, 현재는 서양에서 시작된 문헌학적 연구가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다. 스님들 중에도 이제는 불교의 각종 고전어(한어, 범어, 팔리어, 티베트어)를 잘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시대의 불교가 펼쳐질 여건이 마련되었다. ‘청빈한 삶’에 기반을 둔 ‘부처님 법’대로 살기 위한 내부자의 시선, 그것이 종학의 시작이다. 연구를 넘어선 삶으로서의 불교 말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13호 / 2021년 12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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