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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맺은 모든 이 안락·행복 찾을 때까지 신행 멈추지 않겠습니다

기자명 법보

불교방송 사장상 - 송희윤

주도적 삶 사는 것 그리워 디지털불교대학 입학…국제포교사 원 세우고
법문 번역·외국인 안내·불교영어 강독회 참여하며 부처님 가르침 감탄
불교, 이론·관념 아닌 실천에 달려…주어진 재능 필요한 곳서 신행 다짐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부처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기 시작하고 3년을 보낸 지금, 내가 지은 좋은 인연들을 반조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모두 미션스쿨, 즉 기독교 재단이 설립한 사립학교에서 보냈다. 할머니의 강한 불심이 지배하던 집안의 분위기에서 성장하였지만 나는 불교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진학 할 학교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던 시절이어서 기독교 전도가 설립목표인 학교를 다니게 된 것에 대해 묘한 반감이 있었다. 6년 동안 매주 꼬박꼬박 성경시간이 시간표에 자리하였고 합동예배에도 정기적으로 참석해야 했다. 대학시절 모교에서 교직과목 이수를 위한 교육실습을 하게 되었고, 모교 교감선생님 권유로 교회를 방문하였으나 내 마음의 문은 꼭꼭 닫혀 있었다. 

사회생활 초기 근무지 바로 뒤에 고산 큰스님께서 주석하시던 혜원정사가 있었다. 선배의 권유로 그 사찰을 자주 방문하였고, 얼떨결에 받은 법명이 ‘자성지(自性智)’다. 30대 후반 금정불교대학, 셋째 언니가 다니던 청련암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범어사 일요법회에 가족과 함께 자주 동참했고, 법문을 들은 후 가족들은 원효암이나 계명암까지 다녀오곤 했다. 시어머니는 범어사 원효암에서 토요일마다 철야정진을 하셨다. 시어머니는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으시며 혼자서 섬이 되어 등대를 지키는 그런 어른이셨다. 나로 하여금 부처님의 가르침에 조금씩 다가가게 해 주신 시어머님께 감사드린다. 학교 관리자로 발령받은 곳은 부산 초읍에 위치한 선암사 근처에 있었다. 선암사에서 난생 처음으로 기와불사를 올리며 근무하게 될 학교의 무탈함을 기원하는 축원문을 썼던 기억이 있다. 그때가 부처님께 성큼 다가가게 된 그런 순간이라고 여겨진다.

정년을 두해 반 앞두고 퇴직했다. 공직에서 36년을 근무하며 퇴직 즈음에 가장 그리워한 것이 자기 주도적 삶을 사는 것이었다. 제2의 삶을 실답게 살며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실리적인 인연으로 조계종 디지털불교대학을 찾아 입학했다. 과정을 수료하기 위해서는 봉사활동 결과를 제출하고 사찰에서 템플스테이 체험을 해야 했다. 이리저리 검색하다 부산 시내에 있는 홍법사와 일정이 맞아 신청하게 됐다. 템플스테이에서 주지스님과의 차담 중 퇴직 후 10년간 제2의 삶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원을 말씀드리니 스님은 국제포교사의 길을 안내해주셨다.

홍법사를 방문하신 린포체 한 분을 안내하는 귀한 시간을 얻었던 때가 있었다. 린포체께서 “Heart Sutra”라고 말씀하실 때 나는 그것이 ‘반야심경’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지식이 부족했다. 이때 글로벌 포교에 대한 의지가 아주 강한 홍법사 주지스님께서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 스님의 법문을 단 한 명의 외국인이라도 전하는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부하겠다는 원을 세웠다. 스님께서는 ‘홍사홍사’라는 SNS채널을 운영하시며 매일 아침 짧지만 감동적인 법문을 사진과 함께 공유해 주신다. 코로나19로 신행활동이 제한을 받았던 2020년에 나는 나의 서원을 원만히 이루기 위한 준비로 그 법문을 영어로 옮기는 수행을 했다. 개인 블로그를 만들어 그 자료를 하나 둘 탑재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가 재적사찰에 빠르게 적응하여 신행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홍법사 템플스테이 봉사 소임이 있어 가능했다. 템플스테이 법사이신 유진 스님은 차를 통하여 마음챙김을 가르치신다. 외국인에게 다도를 설명하고 스님의 알아차림 명상을 따라하도록 안내하며 초보 불자인 나도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다. 활동적인 가운데 알아차림이 일어나도록 지도하시던 법사스님과의 인연의 깊이를 가늠해보곤 한다. 

국제포교사가 되어 다시 새로운 커뮤니티에 속하게 되었다. 이 역시 상(相)을 없애고 우뻬까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는 수행을 요구하는 환경이다. 국제포교사회 부울경지부와 인연을 맺고 공부를 하며 불교영어 강독회를 알게 되었다. ‘Ultimate Science’라는 부제의 아비달마 관련 서적을 함께 읽는 모임에 참여했다. 아비달마의 찌따와 제따시카 등의 분석은 그것이 2600년 전에 설해진 말씀이라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했다.

기복을 위해서라도 부처님을 찾는 것이 찾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무비 스님의 말씀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외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들의 취업과 안녕을 위해 무작정 기도 발원을 했다. 홍법사 4층 적멸보궁에서 신묘장구대다라니 21독을 시작했다. 자동차 시동이 걸리고 주행을 하듯,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눌리지도 않고 2021년 6월에 입재하여 11월에 회향했다. 회향을 한 후에야 기도의 시작은 기복이었으나 결국은 나의 수행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외부인으로서 바라보며 짐작하던 사찰에서의 커뮤니티 속성은 구성원이 되고서 더 확실하게 체감하게 됐다. 신행활동이라는 목적으로 모여서 활동을 하는 사찰에서의 조직은 그 구성원들의 근기가 다양하고 아상(我相)이 아주 두터울 뿐 아니라 배타적이기까지 하다. 구성원들과 함께 신행활동을 하며 나의 아상(我相)을 없애고 근기에 맞는 수행방법을 찾는다는 서원으로 성실하게 참여하고 있다. 경전이라고는 가장 대중적인 ‘반야심경’을 겨우 알았을 뿐이었던 나는 국제포교사 자격고시 공부를 하며 알게 된 부처님의 제자 주리반특을 늘 떠올린다. 법상(法相)조차도 버리라고 가르치시는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아상(我相)이라도 버리자고 매일 매일 조금씩 기도한다. 

가장 가까운 도반과 함께 천주(千珠)를 구했다. 매일 아침 관불수행이나 염불수행을 하기로 했다. 눈을 감고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면서 마음을 집중하고 한 곳을 응시하면 부처님의 니미따가 눈앞에 나타난다. 원숭이 마음이 되고 산란하면 부처님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위빠사나 수행이나 까시나 수행을 잘 모르더라도 마음을 챙기고 집중하면 그것이 바로 수행이라는 것은 알 수가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하는 수행이 그 무엇이든 꾸준히 재적사찰에서 주지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면 된다고 생각한다. 스님은 다라니기도나 법회 시 잠시 명상의 시간을 주신다. 그때 사용하시는 불구가 붓다볼이다. 일반인에게 싱잉볼로 알려진 명상을 위한 도구다. 새벽 종송, 목탁, 염불 등 사찰의 의식은 소리가 반드시 동반된다. 소리의 파장과 우리의 에너지가 동기화되어 명상을 하며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한다. 그 싱잉볼 치유의 소리를 최근에 만났다. 그 시작은 역시 나의 기본 소임인 외국인 참가자를 위한 안내 역할에서였다. 외국인에게 싱잉볼을 안내하기 위한 사전 지식을 얻는 공부를 하며 그 소리의 깊음에 매료되었다. 나의 신행의 방편이 이제야 싱잉볼 수행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스님의 말씀에 힘을 얻었다.  

여기서 89가지 마음을 배우며,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작용하는 나의 마음이 무엇인지 거울에 비춰지며 그것이 선한 마음인지, 불선한 마음인지, 아니면 기쁨이 동반되어 들뜸이 있는지,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현대과학이 대적할 수 없는 경지인 것 같다.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자기주도적인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도록 길을 안내해 주는 이 위대한 법을 만난 것으로 지난 생이나 현생에서 지은 선업이 없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교리의 가장 초보단계에서 중생을 향한 사무량심을 가지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항상 참다움은 멀리서 찾으려 하지 않고 가장 가까운데서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慈)무량심으로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아직 요원하나, 애완동물을 정말 싫어하였는데 점차 그들과 눈을 맞추며 다가가려는 마음이 생긴다. 비(悲)무량심이 생기는지 집에 함께 사는 남편이 그렇게 서로 경쟁하며 대적하였으나 이제 그가 측은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것이 희(喜)무량심을 갖는 것인 것 같다. 모든 생명체와 모든 일들에 대하여 더불어 함께 항상 언제 어디서나 기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자인 아주 가까운 지인이 있다. 그녀는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우뻬까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타인이 공덕을 짓거나 과거의 인연으로 복을 받음에 대해 기꺼이 기뻐할 줄 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희(喜)무량심을 배운다. 자비희(慈悲喜)를 가지는 것조차 버리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사(捨)무량심 훈련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자기와 대립하는 존재로 한다면 그들이 지은 공덕을 기뻐할 이유가 없다.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보지 않고 나와 동일한 생명체라는 깊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버림의 철학이 불교인 것 같다.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추구하고자 한 자기 주도적 삶처럼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철저히 나의 몫이라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 주신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가르침을 섬으로 의지하라’는 말씀에서 더 확신을 가진다. 

가랑비에 옷을 적시듯 벌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한 지 4년째다. 불법은 이론이나 관념에 있는 것이 아니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행에 있다고 한다. 불법이 아무리 교학이 정연하고 그 세계가 찬란하더라도 구체적인 창조행이 없다면 타방세계의 화려한 장엄에 그칠 것이라는 어느 스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찰들이 승가에 대한 보시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나에게 주어진 소박한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구체적이고 창조적인 신행활동에 동참하여, 부처님 가르침 속에서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 안락과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1631호 / 2022년 5월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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