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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첩 공간은 모두 함께하는 장소로 발전”

  • 교계
  • 입력 2022.08.30 17:43
  • 수정 2022.08.31 09:13
  • 호수 1647
  • 댓글 1

불교사회연구소, 8월29일 공공성지 운영·현황 관련 학술대회
“공공 자본은 공공성지 조성에 쓰이도록 제도 장치 마련 시급”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불교사회연구소가 8월29일 ‘세계 공공성지 운영의 현황과 검토’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불교사회연구소가 8월29일 ‘세계 공공성지 운영의 현황과 검토’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종교 성지로 여겨지는 역사적 장소들은 오늘날 유력한 제도종교의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문화적 전통들만이 아니라, 대단히 다양한 역사적 삶의 흔적들이 누적돼 있다. 때문에 ‘여러 종교가 공유하는 성지’ 또는 ‘종교 중립적인 성지’는 모두의 역사가 함께하는 ‘공공성지’로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승훈 원광대 교수가 8월29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불교사회연구소가 개최한 ‘세계 공공성지 운영의 현황과 검토’ 학술대회에서 종교 성지를 둘러싼 논란과 그 대안을 제시했다.

‘현대 한국 종교의 성지 공간과 갈등’을 주제로 발표한 한 교수는 성지 갈등 문제가 한국 사회 다종교 상황의 특수성에서 비롯됐음을 지적했다. 현재 우리사회 내에 존재하는 복수의 종교전통들 가운데 인구 구성이나 영향력에 있어 타자를 압도하는 지배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불교, 개신교, 천주교는 사회적 영향력에 있어 대체적인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도 민주화 이후 제도종교를 가능한 공평하게 대하면서 직간접적 지원을 통해 주요 제도종교를 포섭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은 선교·포교의 기회를 얻고, 지역사회의 영향력을 확장해야 하는 제도종교의 입장에선 종교 편향이라는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고착된 것이다.

타종교의 반발을 가장 크게 일으키는 성지 조성 양식은 ‘성역화’ 문제다. ‘성역화’는 일정한 범위의 영역을 특정 제도종교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성지로 조성하려는 실천을 의미한다.

한 교수는 가톨릭의 천진암 성지화를 성지 갈등의 표본으로 꼽았다. 가톨릭은 천진암 인근 토지를 매입하고 대규모 성당을 건립하는 등 100년 계획으로 성지화를 위한 토대를 닦아갔다. 그러나 정약용의 묘지명을 비롯한 역사적 기록에서 강학 장소와 시기에 대한 관련성이 뚜렷하지 않아 성역화 방식과 정당성, 고증 문제 등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가톨릭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통적인 성지의 개념과 차이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성지’란 팔레스타인 지역을 가리키는 고유한 명칭이다. 그러나 유독 한국 천주교에서는 순교지, 순교자 묘소 등 교회 사적지까지 모두 ‘성지’ 개발하는 등 ‘성지’의 개념을 남용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톨릭이 무리하게 대규모 성역화를 진행하는 이유는 ‘성역화’라는 표현의 등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역화는 1960년 후반 박정희 정권의 ‘현충사 성역화 5개년 계획’에 따른 전쟁영웅 및 순국영령 숭배의 전형적 형태를 보여준다. 국가 주도의 성역화는 ‘정화’라는 개념으로, 거주민을 포함해 장소의 의미를 교란시키는 요소들을 배제해 해당 영역을 단일한 색채로 ‘순수화’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의 제도종교들 역시 빠른 속도로 이 개념을 받아들였고, 천주교의 절두산과 천진암 조성 과정이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한 교수는 “성역화 유형의 성지 조성은 특정한 제도종교 조직이 일정한 부지를 확보하고 건물과 기념물, 순례 장소 등을 배치한 형태”라며 “이질적, 복합적 특성을 가진 경관들을 ‘정화’하여 독점적, 배타적 공간을 구성하는 국가주의적 세속종교의 욕망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순례길’ 조성은 중앙 및 지방 정부, 종교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관광자원 개발을 통한 경제 활성화’라는 경제적 이익이나 문화적 정당성이 확보돼 있지만, 실제로는 특정 종교에 대한 편향 논란이나 종교단체 사이의 주도권 경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정책 결정자와의 긴밀한 관계도 사업 결정에 큰 영향을 준다. 지가가 높고 많은 지역민들이 거주, 활동하는 대도시 환경에서 과거 천진암 성지나 절두산 순교성지와 같은 성역화 유형의 개발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정책 결정자들의 조력을 얻는 데 성공할 경우 여전히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승훈 원광대 교수.
한승훈 원광대 교수.

한 교수는 성역화와 순례길 유형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공공성의 결여’라고 지적하며, 그 대안으로 ‘공공성지’를 제안했다. 천진암만 보더라도 불교적 장소인 사찰에서, 유교적 지식인들이 모여, 그리스도교를 발견한 사건이다. 때문에 현존하는 어떤 제도종교 집단도 이 장소의 의미를 독점하거나 배타적인 소유권을 주장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한 교수는 “공공성지는 제도화된 종교전통에 관련된 기억만으로 장소를 채우는 것, 효율적인 상품화를 위해 장소에 대한 기억이 자의적으로 편집되는 것에 저항한다”며 “기억은 산만하고, 혼란스럽고, 잡다할 때 오히려 창의적이고 풍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장.
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장.

이에 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장은 특정종교의 순례길 및 공공성지 독점화와 관련해 ‘정책 결정자들의 조력을 얻는 데 성공할 경우 여전히 반복될 수 있다’는 한 교수의 발언을 짚으며 “경기도 광주 천주교 순례길, 신안군 기독교화 등 특정 종교의 공공성지가 모두 ‘정책 결정자들의 조력’에 힘입은 결과”라며 “기성종교들이 스스로 권력화 되거나 권력과 밀착을 이용해 한국적 다종교 사회에서 우위를 점유하려는 욕망은 앞으로도 절제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민학기 변호사도 “여러 종교의 역사가 혼재된 곳을 공공의 영역으로 발전하는 것은 마땅하나 이미 독점된 공공성지나, 이를 방조하고 공적자금을 지원한 정부의 조력은 되돌리기 힘들다”며 “공공의 자본은 공공성지 조성만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고영섭 동국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학술대회에서는 이밖에도 박규태 한양대 교수가 일본 불교와 신도의 동거(신불습합)을 토대로 일본의 종교적 특수성과 종교지형, 근대불교 출발의 배경 등을 소개한 ‘가미와 호토케의 동거-신불습합의 유형과 공동성지’를, 양정현 한림대 교수가 중국과 대만의 공공성지 관련 대립 사례를 분석한 ‘중국 대륙과 대만의 공공성지 현황과 종교 갈등의 사례’를, 최화선 서울대 교수가 예루살렘 인근에 위치한 유일신 3교의 성지 역사와 갈등을 살핀 ‘유일신 3교의 성지’를, 심재관 상지대 교수가 인도의 가야지역에서 힌두교와 불교의 공존을 고찰한 ‘하나의 땅, 두 개의 전설-가야는 어떻게 두 종교의 성지가 되었나’를 발표했다. 제점숙 동서대 교수, 김영진 동국대 WISE캠 교수, 민학기 변호사, 나유인 세계종교평화협의회 집행위원장이 각각 토론자로 나섰다.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특별위원회 위원장 선광 스님.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특별위원회 위원장 선광 스님.
불교사회연구소장 원철 스님.
불교사회연구소장 원철 스님.

앞서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특별위원회 위원장 선광 스님은 “공공의 영역에서 종교편향과 왜곡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시점에서 시의적절한 자리를 마련해 줬다”며 “세계 여러 지역의 공공성지에서 종교 간에 서로 화합하며 평화롭게 성지를 운영하는 모습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사회도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불교사회연구소장 원철 스님도 “국가와 종교, 또 종교와 종교 간에 벌어지는 갈등에서 드러나는 여러 개념과 관념들이 사실은 많은 부분 ‘만들어진’ ‘허상'일 수 있다는 귀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문화 속에 여러 종교가 함께하며 야기된 갈등과 긴장의 어려움 속에서도 아름답게 조정하고 극복해 왔던 역사를 확인하고 향후 더욱 아름다운 공존을 위해 여러 종교와 함께 불교계도 노력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내영 기자 ny27@beopbo.com

[1647호 / 2022년 9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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