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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보행로의 ‘붉은 십자가’ 당장 걷어내라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2.11.18 21:12
  • 수정 2022.11.23 22:20
  • 호수 1658
  • 댓글 2

십자가‧붉은색은 ‘순교자’ 의미
서울시가 가톨릭 성지화 앞장
‘쾌적’ 아닌 ‘갈등 촉발’ 순례길
서울 역사문화의 길로 거듭나야

서울시가 서울순례길을 안내한다는 명목으로 가톨릭 정체성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의 마크를 중구, 종로구, 용산구, 마포구 일대의 1105곳에 설치한 데 이어 특수 주문한 붉은색 보도블록으로 보행도로에 십자가를 형상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역 인근의 2,1km 구간에만도 십자가를 비롯해 기도, 비둘기 등의 가톨릭 상징물 377개가 있다. 가톨릭식의 ‘땅 밟기’를 서울시가 주도해 보려는 것인가?

동학의 역사를 모두 묻고 가톨릭 성지로 변모시킨 서소문역사공원. 역사 왜곡까지 서슴지 않으며 가톨릭의 역사를 부각하려는 광화문 역사물길. 총 44.1㎞의 길 위에 24개의 가톨릭 편향의 성지 안내판을 세워가며 연결한 가톨릭 서울 순례길. 여기에 붉은 십자가로 서울 거리를 물들였다.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가톨릭 편향 시책들을 이렇듯 무모하게 강행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강북 일대를 가톨릭의 성지로 조성하려는 게 아니고서야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서울시가 길바닥에 박아놓은 십자가는 ‘라틴식 십자가’다. 처벌의 수단으로 사용된 십자가는 종교적 상징을 가질 수 없었지만 4세기 초 로마 황제에 의해 십자가형이 폐지되면서 ‘희생’의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톨릭에서 붉은색은 열정 외에도 희생, 순교자를 의미한다. 길을 걷는 방향에 따라 이 십자가는 거꾸로도 보인다. ‘거꾸로 십자가(Cross Inverted)’는 로마의 네로 황제에 의해 베드로가 머리를 거꾸로 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울 거리에 깔리어있는 ‘붉은 십자가’는 ‘순교’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트 모양’의 이정표를 서울 길바닥에 새긴 의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서울순례길을 안내한다는 명목으로 보도 곳곳에 새겨진 이정표에는 남산타워, 한옥‧빌딩이 그려져 있고, ‘서울 도보 관광’이라고 쓰여 있어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하트’가 숨어 있다. 천주교서울대교구가 개발한 ‘매듭으로 만든 하트’에 대해 서울시는 화합과 포용을 상징한다고 설명하지만, 그동안 보인 서울시의 가톨릭 편향 행보를 고려하면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 겹쳐진 양 끝의 줄을 당기면 손발을 옥죄는 매듭이다. 서소문 역사박물관 입구에 전시된 ‘순교자의 칼’을 감싸고 있는 포승줄과도 유사하다. 

단순 ‘매듭 하트’라기보다는 ‘포승줄 하트’라고 보는 게 보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다. 가톨릭계에서 포승줄에 묶인 죄인은 ‘백성’이 아닌 ‘순교자’다. 황사영 같은 역적도 순교자로 명명해 서소문역사공원의 순교자현양탑에 새겨 넣는 가톨릭 아닌가. 그러고 보면 서울시가 거리 곳곳에 새겨 넣은 건, 한국의 가톨릭계가 우리 사회에 그토록 불어넣고 싶어 하는, 가톨릭 성지화의 제1 전제인 ‘순교와 박해’다.

서울시는 “문화‧관광 사업의 일환일 뿐”이라고 강변하겠지만 가톨릭계보다 성지화에 더 앞장선 듯한 정황들이 보인다. ‘서울 순례길 종합계획’에서 서울시는 “2014년 천주교서울대교구가 만든 서울 순례길은 가톨릭 정체성이 부족하고 성지 표지물 ‘주목도’도 부족하다”면서 “서울시 보행 도로 곳곳에 ‘산티아고 순례길’의 가리비 문양처럼 가톨릭 순례길 이정표를 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트 마크’가 개발된 연유이기도 하거니와 ‘화합‧포용’이 아닌 ‘박해‧순교’로 해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붉은 십자가를 주문해 거리에 깔았다. 서울시는 업체에 “가톨릭 순례자들의 역경‧고난을 표현할 20여개 특수블록”을 주문했고, 업체는 고난‧투쟁‧평화‧순교를 주제로 한 상징물 3개를 디자인해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2019년에 도시디자인위원들이 “과도하다”고 지적했음에도 개선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서울 순례길’은 서울시가 주장하듯 시민을 위한 “쾌적한 순례길”이 아니다. ‘아주 불쾌한, 갈등을 촉발하는 순례길’이다. 서소문역사공원과 가톨릭 서울 순례길에 늘어선 성지화 시설‧이정표도 철거해야 하지만 붉은 십자가는 하루빨리 걷어내야 한다. ‘가톨릭 서울 순례길’이 아닌 서울 역사문화 순례길로 거듭나는 첫걸음이다. 혈세를 들였으니 서울시 책임이다.

[1658호 / 2022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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