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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승인호패제(僧人號牌制)

기자명 민순의

신망 얻은 스님에게도 호패 발급토록 규정

군정·부역 위한 호구 확보 목적…태종 초 호패제 첫 도입
세조, 스님 호패 발급…국가 주도로 승적 관리‧활용 주목
승단·스님에 대한 임금의 존중과 우대 녹아 있음도 보여

조선시대의 호패. 일반적인 호패는 사진에서와 같이 상원하방(上圓下方), 즉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난 형태의 모양이었으나, 세조 때 시행된 승인호패는 직경 2촌의 원형이었다.
조선시대의 호패. 일반적인 호패는 사진에서와 같이 상원하방(上圓下方), 즉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난 형태의 모양이었으나, 세조 때 시행된 승인호패는 직경 2촌의 원형이었다.

호패(號牌)는 조선시대의 신분증이다. 16세 이상 남성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나라에서 발급한 호패를 착용해야 했다. 그 중요성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호패를 차지 않거나 잃어버린 자에게는 태형 50대를 때리고, 빌려서 주고받은 자들은 장형 80대를 때리게 할 정도였다.(‘세조실록’ 12권, 4년 4월 5일.) 

호패법은 일찍이 고려 공양왕 3년(1391)에 시행된 바 있었다. 수군과 육군의 군정(軍丁)을 장부에 기입하고 호패를 착용하도록 하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고려사’ 권81, ‘지’ 권제35.) 조선 건국 후 호패법을 정비하여 제도화하는 데 성공한 이는 태종이었다. 태종은 재위 초부터 신료들과 지속적으로 논의를 주고받으며 호패제를 시도하였는데, 그 목적은 대체로 군정의 정비 그리고 부역과 생산을 위한 호구(戶口)의 확보에 있었다.(‘태종실록’ 4권, 2년 8월1일 ; ‘태종실록’ 11권, 6년 3월24일 ; ‘태종실록’ 13권, 7년 4월18일.) 호패가 여성을 제외하고 남성 성인에게만 발급된 까닭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마침내 태종 13년(1413) 호패의 모양, 호패의 내용, 호패의 발급 및 착용 규정을 골자로 한 호패제도가 완성되었다. 이에 따르면 각 개인이 길이 3촌 7푼, 너비 1촌 3푼, 두께 2푼 크기의 상원하방(上圓下方)형 패(牌)를 신분에 따라 정해진 재질대로 고을 수령에게 제출하면, 수령은 호패의 내용에 개인의 신상이 기재되어 있는 것을 확인 후 관인을 찍어 발급하고, 호패 발급과 착용 등에 관한 규정을 어길 경우 각각 상응하는 처벌을 하도록 되어 있다.

호패에 기재하는 신상 목록은 고위직 관리의 경우 관직만 적어도 되지만, 하급 관리는 관직과 함께 성명과 거주지를 쓰게 되어 있고, 일반인[서인(庶人)]은 성명과 거주지 외에 외모를 자세히 묘사하게 하였으며, 군인은 소속부대와 신장을, 종[노(奴)]은 소유주, 연령, 거주지, 외모, 신장을 모두 자세히 적도록 하였다.

스님은 이 중 어디에 속했을까? 승과에 합격하여 법계를 받고 합당한 직책을 가진 스님이라면 관리로 간주될 여지도 없진 않겠다. 그러면 도첩은 있지만 아직 법계를 받지 못한 스님은 관리인가, 서인인가? 설마 승군(僧軍)이라는 개념과 용례에 기대어 군인으로 인식되지는 않았을 터. 심지어 도첩을 받지 못한 비공인의 출가 스님이라면? 그런 처지라면 일반인을 자처하면서까지 수령 앞에 나섰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필시, 태종 13년의 호패제도에 스님은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군정, 부역, 생산, 그 어디에도 국가가 승단에 강제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다.

긴 숙의 끝에 완성된 태종의 호패제도는 그러나 효과는 미미하고 번거로움만 크다는 이유로 시행 3년 만에 폐지되었다.(‘태종실록’ 31권, 16년 5월 12일 ; ‘태종실록’ 31권, 16년 6월 2일.) 이후 호패제도가 재개된 것은 40여 년 후인 세조 대에 이르러서였다.

세조는 재위 4년(1458) 호패법의 시행사목(施行事目)을 입안하고, 이듬해(1459) 이를 전국적으로 시행하였다.(‘세조실록’ 12권, 4년 4월 4일 ; ‘세조실록’ 15권, 5년 2월 1일.) 제도 부활의 목적은 전 국민의 신분과 직업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과 생산물 통제, 그리고 백성의 유망 및 도적의 방지에 있었다.(‘세조실록’ 12권, 4년 4월 5일.) 물론 군역의 확보도 부인할 수 없는 이유였다.(‘세조실록’ 16권, 5년(1459) 6월 2일 ; ‘세조실록’ 16권, 5년(1459) 6월 15일 ; ‘세조실록’ 17권, 5년(1459) 7월 6일.) 그리고 마침내 호패법 시행 3년 뒤인 재위 7년(1461) 세조는 왕조 사상 처음으로 스님에 대한 호패의 발급, 즉 승인호패법을 지시한다.

“서울에서는 양종도회소에서 여러 사찰(거주) 승려의 본관과 생김새를 기록하여 예조[該曹]에 전보(轉報)하고, 지방은 유나사(維那寺)에서 여러 사찰의 승려를 기록하여 그 고을(의 관찰사)에 고하면, (예조와 관찰사에서는)곧 인장[印]을 찍어 줄 것. 만일 도첩에 명백하지 못함이 있으면 호패를 주지 말고 깊이 가려서 환속시킬 것.”(‘세조실록’ 25권, 7년 8월 12일.) 

세조 본인이 직접 지시한 내용이었다. 일반인에 대한 호패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나 관리, 일반인, 천민 등 전 국민(남성)의 인구 동향이 윤곽을 드러내자, 승단의 실태 파악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 달 뒤 다음과 같은 내용의 승인호패법이 성안되었다.

① 승인호패에는 용모, 나이, 직명(職名)을 기록한다.
② 서울에서는 선교양종 도회소에서 소속사찰의 승려를 기록하여 예조에 보고하며, 지방에서는 각 산 거찰(巨刹)의 집사(執事)가 승려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해당 고을(수령)에 보고하여 호패를 작성‧발급하되[成給], 아울러 승적를 비치해 두어[竝置簿] 필요시 참고한다.
③ 도첩의 소지에 대해서는 사찰의 기록보고[度牒錄報]를 상고하되, 도첩이 없더라도 50세 이상의 연로자이거나 대중에게 그 심행(心行)이 알려진 자도 아울러 보고하고[幷報] 호패의 발급을 허락한다[許其自願]. 교지(敎旨)에 의하여 도첩을 받는 천인도 이에 준한다.
④ 호패 분실 시에는 비치되어 있는 장부를 상고하여 재발급한다.
⑤ 직경 2촌의 원패(圓牌)를 사용한다.
⑥ 이듬해인 임오년(1462년, 세조 8년)까지 호패를 발급한다. (‘세조실록’ 26권, 7년 10월 9일.)

예조에서 작성하여 올린 이 법안에는 호패의 모양과 기재내용, 발급대상과 발급절차 및 그 관리, 발급시한 등이 언급되고 있다. 특히 호패의 작성 및 발급절차가 사찰과 관청으로 중층화되며, 국가권력이 주도하는 승적의 작성 및 관리‧활용이 명시되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호패발급의 조건(즉, 대상)을 원칙적으로 도첩의 소지에 두되, 50세 이상의 연로자이거나 심행이 있는 자, 다시 말해 교단 안팎의 신망을 얻은 스님들에게도 호패를 발급하는 점 또한 눈에 띄는 점이다. 2년 뒤(1463)에는 호패의 위조방지를 강화하고 전국 모든 스님들에 대한 승적이 중앙의 예조에 집적되는 방향으로 제도 보완이 이루어진다.(‘세조실록’ 30권, 9년 1월 12일.) 

세조의 승인호패제는 도첩제도가 시행되는 것과 동시에 승단의 실태 파악과 승적 관리를 위하여 별도로 시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세조의 승인호패제도에는 승단과 스님들에 대한 임금의 존중과 우대가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도첩제도가 폐지되고 난 뒤(중종 11년, 1516) 한강의 견항 공사에 참여한 스님들은(중종 31년, 1536) 그 노고의 대가로 스님 신분을 공인받는 도첩이 아닌 그저 ‘호패’를 받게 되었을 뿐이었다.(‘중종실록’ 80권, 30년 11월 19일 ; ‘중종실록’ 81권, 31년 2월 6일.)

민순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nirvana1010@hanmail.net

[1679호 / 2023년 5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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