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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16세기 스님들의 수행과 공부

기자명 민순의

강학 체제 완비 견인하며 독자적 불교문화 구축

사부대중 함께하는 법회 위해 대승경전·의례집 다수 발간
스님 교육 위한 교학 입문·선불교 이해 돕는 서적도 간행돼
공부 효과 거두며 오늘날 강원 교육 서적까지 전통 이어져

전라도 해남 대흥사의 옛 강원인 용화당 전경. 대흥사는 청허휴정 스님이 의발을 전한 사찰로 이후 13대종사와 13대강사를 배출하였다. 휴정 스님이 주석한 경상도 신흥사(정확히는 산내 암자인 내은적암을 중창하여 기거함), 강원도 표훈사, 황해도 보현사는 16세기에 다수의 스님 교육용 불서를 간행한 곳이기도 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라도 해남 대흥사의 옛 강원인 용화당 전경. 대흥사는 청허휴정 스님이 의발을 전한 사찰로 이후 13대종사와 13대강사를 배출하였다. 휴정 스님이 주석한 경상도 신흥사(정확히는 산내 암자인 내은적암을 중창하여 기거함), 강원도 표훈사, 황해도 보현사는 16세기에 다수의 스님 교육용 불서를 간행한 곳이기도 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6세기의 사찰판(寺刹板) 불서(佛書)에는 경전과 의례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님들을 위한 수행과 교학의 입문서에서부터 불교에 대한, 특히 선불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돕는 서적들 또한 간행되고 있었다.

황해도 귀진사(歸眞寺), 평안도 보현사(普賢寺), 경상도 신흥사(神興寺), 광흥사(廣興寺), 전라도 안심사(安心寺)를 비롯해 황해도 석두사(石頭寺), 신광사(神光寺), 성수사(星宿寺), 황주 심원사(深源寺), 구월산 월정사(月精寺), 강원도 유점사(楡岾寺), 표훈사(表訓寺), 원주 동화사(桐華寺),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충청도 은진 쌍계사(雙溪寺), 전라도 고산 화암사(花岩寺) 등 전국 각지의 사찰에서 발간된 그러한 책자의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승단 생활의 기초 율문(律文)을 정리한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고려 지눌), 출가한 스님들에게 수행의 요체를 소개하는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신라 원효), 그리고 수행과 학문을 권려하는 고승들의 말씀을 모은 ‘치문경훈(緇門警訓)’(원나라 지현 편. 이하 ‘치문’). 기초 입문서에 해당하는 책들이다.

또 선종과 교종을 대비하여 설명하는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당나라 종밀. 이하 ‘도서’), 지눌 스님의 선사상이 집약된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고려 지눌. 이하 ‘절요’), 송나라 고봉 스님의 법문을 엮은 ‘고봉화상선요(高峯和尙禪要)’(송나라 지정 편. 이하 ‘선요’), 역시 송나라 대혜 스님의 편지글을 모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일명 ‘서장(書狀)’, 송나라 혜연)도 눈에 뜨인다.

역대 부처와 조사들의 어록과 행적을 모아 정리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송나라 도원), 선사들의 공안(公案)을 모은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고려 혜심 편)도 있다. 눈썰미 있는 독자께서는 이 두 책자가 조선시대 선종 승과의 시험과목이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본문에서 거론하는 16세기 사찰판 도서에 대해서는 김자현의 ‘조선전기 사찰판 간행불서 고찰’(‘불교연구’ 49, 2018), 송일기·박지숙의 ‘황해도 사찰 간행불서의 서지적 연구’(‘한국문헌정보학회지’ 50, 2016), 최경훈의 ‘강원도 지역 사찰 간행 불서에 대한 서지적 연구’(‘서지학연구’ 84, 2020) 참조. 이들 논문에서 소개된 사찰과 도서를 모두 다 인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참조한 논문 밖의 영역에서 필자가 헤아리지 못한 간행처와 도서목록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대부분의 일반인에게 상기한 도서명은 낯설고 어려울 공산이 크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한국의 스님이라면 필자가 굳이 저 도서들을 콕 집어 예시한 이유를 넉넉히 짐작하실 줄로 믿는다. 바로 오늘날 사찰 내 승려 교육기관인 강원(講院)에서 교재로 쓰이는 책들이기 때문이다. 사미과(沙彌科), 사집과(四集科), 사교과(四敎科), 대교과(大敎科)로 이루어진 강원의 4단계 교과과정에서 ‘계초심학인문’과 ‘발심수행장’과 ‘치문’은 1단계 사미과의 교재이다. (최근 사미과의 교과과정은 ‘치문’만을 다루는 것으로 보인다. 신규탁, ‘신규탁의 종학으로 보는 불교: 15. 승려교육제도 정비’, 법보신문 2021.08.30. 참조.)

‘도서’와 ‘절요’, ‘선요’, ‘서장’은 2단계 사집과의 교재이고, ‘경덕전등록’과 ‘선문염송집’은 ‘화엄경’과 함께 4단계인 대교과에 속한다. 3단계인 사교과의 이수과목은 ‘능엄경’, ‘대승기신론’, ‘금강경’, ‘원각경’ 등의 대승경론이다. 그러고 보면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던 16세기 다수의 대승경전 발간 사례는 한편으로 사부대중이 함께 하는 법회를 위한 것이기도 하였겠으나, 그와 함께 스님들의 교육을 염두에 둔 것일 가능성에도 큰 무게를 실어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이 강학의 체제가 완비된 것은 일반적으로 17세기 이후의 일로 추정된다. 하지만 체제의 완비와는 별도로 이미 16세기부터 조선의 스님들은 저 책들로 공부했던 것이고, 아마도 그 공부가 효과를 거두며 지속되었기에 17세기 이후 강학의 체제 완비가 견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500년 전의 스님들과 오늘의 스님들이 똑같은 책을 손에 들고 읽고 토론하며 공부해 왔음을 생각하면 한국불교를 관통하는 그 면면한 전통에 문득 숙연해지기도 한다.

물론 16세기에 발간된 서적이 오늘날의 강원 교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몽산화상법어(蒙山和尙法語)’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 ‘벽암록(碧巖錄)’ ‘선림보훈’(禪林寶訓) ‘벽송집(碧松集)’과 같은 선어록(禪語錄) 계통,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반야심경소현정기(般若心經疏顯正記)’ ‘연경별찬(蓮經別讚)’ ‘화엄경소(華巖經疏)’ ‘십지경론(十地經論)’과 같은 경전 주석서 계통, ‘현정론(顯正論)’ ‘호법론(護法論)’ ‘선가귀감(禪家龜鑑)’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몽산화상육도보설(蒙山和尙六道普說)’과 같은 이론서 계통의 책들이 목록에 포함된다. (이 밖에도 또 다른 16세기 사찰판 불서들이 있다.)

이것을 보면 16세기의 스님들은 선불교에 대한 심화학습과 함께 교학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화엄경소’ ‘십지경론’), 그에 더하여 유학자들의 불교 비판에 대한 방어논리 구축에도 용심했음을 알 수 있다(‘현정론’ ‘호법론’). 또 한국 고유의 불교학을 적극적으로 계승하여 독자적 불교문화 구축에도 힘썼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벽송집’은 청허휴정 스님(사명대사)의 스승인 벽송지엄(碧松智嚴, 1464~1534) 스님의 시문집이고, ‘금강경오가해’와 ‘현정론’은 조선 초 함허기화(涵虛己和, 1376~1431) 스님이 편집 또는 찬술한 저서이며, ‘화엄경소’ ‘간화결의론’ ‘연경별찬’ ‘선가귀감’은 차례로 화쟁국사 원효(617~686),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설잠 김시습(1435~1493), 청허휴정(1520~1604) 스님의 저술이라는 사실은 그러한 짐작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한다.

한편 상기한 불서 간행 사찰 중에서도 경상도 신흥사와 강원도 표훈사, 그리고 황해도 보현사에서는 유달리 많은 불서들이 간행되었는데, 이 세 사찰은 서산대사 청허휴정 스님의 주요한 주석처들이기도 하다. 휴정 스님이 명종 대에 복설된 승과에 입격하여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의 자리에까지 올라 당대 조선의 불교계를 이끌었음을 감안할 때, 이 세 사찰에서의 활발한 불서 간행 경위를 또한 유추해 볼 수 있겠다.

민순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nirvana1010@hanmail.net

[1688호 / 2023년 7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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