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효 스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
예상치 못한 동생의 죽음은 김선아 감독을 불안정하고 위태롭게 만들었다. 숨을 쉬고 있는 것, 삶 자체에 의미를 찾지 못해 갈팡질팡했다. 그런 그에게 한 권의 책이 전달됐다. ‘길에서 원효를 만나다’. 책을 받아든 알 수 없는 강한 이끌림을 느꼈고, 자리에서 단숨에 책을 읽어나갔다. ‘일체유심조’. 그동안 찾아 헤매던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았다. 원효 스님이 궁금해졌다. ‘해골물’ ‘요석공주와 설총’ 등으로만 알려진 원효 스님은 과연 누구일까.
관련 논문을 찾아 읽고 또 읽고, 원효 연구로 저명한 교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원효 스님에 대한 정의가 명확해졌다. 동양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종교인, 가장 뛰어난 사상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십여 년간의 미국생활을 청산했다. 철학자로서의 원효 스님을 알려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가방 하나 들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2013년이었다.
“모든 게 의식이 창조해 낸 것이고, 학습에 의해 만들어진거지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이때부터 굉장히 자유로워졌어요.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단숨에 사라졌어요. 원효 스님은 단순히 이념만 제시하는 것이 아닌 실현하셨던 분이었다는 걸 알고 매우 놀랐어요. 내가 잘하는 영상으로 원효 스님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죠.”
한국에서 마주한 현실은 암담했다. 원효 스님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스님의 철학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알고 있는 한국의 철학자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답은 “몰라요”였다. 원효 스님을 한국 철학의 맥락이 아닌 한국사의 영역에서만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더 박차를 가했다. 스님이 태어난 곳, 공부한 곳, 살았던 곳 등을 찾아다니며 자료 조사를 진행했다. 도법 스님, 정목 스님, 로버트 버스웰 미국 UCLA 교수, 모로 시세키 이본 하나조노대학 교수 등 원효 스님에 일가견이 있는 스님과 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토대를 완성시켜 나갔다.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고 소식을 들은 스님들도 제작비를 후원했다. 어느정도 자금이 마련되자 사전 조사를 토대로 촬영에 들어갔다. 4분 티저를 포함, 5년간에 걸쳐 제작한 5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원효를 만나다’가 부산 MBC에서 부처님오신날 특집으로 방영됐다.
“4분짜리 티저영상이 공개되고 이탈리아에 있는 철학과 교수한테 연락이 왔어요. 강의시간에 티저를 틀어줬는데 한국불교에 대해 학생들이 알게 됐다고 했어요. 그 학생 중 한 명은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원효 스님에 대한 논문도 썼어요. 영상이 갖는 파급력은 대단하다 싶더군요.”
영상을 통해 세상에 울림을 주고 있는 그이지만 원래 꿈은 감독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 책 읽기를 좋아하는 문학소녀였을 뿐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학생이라는 자신의 본분에만 충실했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로 진학한 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전공에 대한 흥미, 취업에 관심도 없었다. 언론인을 꿈꾸며 학보사에서 근무하고,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동기들과는 달리 도서관에 틀어박혀 살다시피 했다. 이력서 대신 손에 세계문학전집을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서른살 때까지는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보자.’ 그리고 이벤트 회사, 영업, 통역 등 여러 영역에서 근무하며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 직접 부딪히며 겪어보니 인생이 더 궁금해졌다. 그러던 차 운명처럼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면서 미국 이민을 떠났다. 얼마 후 의대생이었던 남편을 따라 1999년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로 향했다.
분쟁이 끊이지 않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국에도 평화로운 시기가 있었다. 사람들의 일상은 평온했고, 행복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계속될 것 같았던 평온도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완전히 깨졌다. 무장테러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폭탄이 날아왔다. 텔아비브는 지옥으로 변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나갔다. 허망했다.
“테러를 목격하고 삶과 죽음이 정말 한순간이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삶과 죽음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됐고, 깊은 고민에 빠졌죠. ‘내가 당장 죽어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카프카처럼 글로는 못해도 영화로 철학을 하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되어야겠다 했죠. 영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스토리텔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시기가 바로 그때에요.”
2003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원에 입학했다. 시나리오를 전공하면서 대본도 쓰고, 촬영 기술도 배웠다. 학생들과 함께 다큐멘터리, 단편 영화도 제작했다. 늦은 감이 있긴 했어도 하고 싶었던 일이었던 지라 즐겁기만 했다. 그러던 중 한국에 있던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KBS가 뉴욕에서 다큐를 제작하는데 현지 코디네이터를 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번 해보겠냐는 질문에 흔쾌히 승낙 의사를 표했다. 촬영을 위한 섭외, 현장 조율 등 완벽했던 세팅에 제작진은 거듭 감탄했고 그의 꼼꼼함은 미국 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뉴욕에 있는 7년간 70여 편의 한국 다큐 제작에 참여했다. 협업이 아닌 직접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칸 영화제에 초청받기도, 2010년 전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받기도 했다.

뉴욕에서 오랜기간 활동하며 좋은 평을 받아온 김 감독은 프로듀서로도 큰 활약을 이어갔다. 한국·인도 합작 다큐 ‘바나나쏭의 기적’의 경우 영화제 마켓에서 김 감독의 프레젠테이션으로 전 세계 곳곳에 판매될 수 있었고, 일본 NHK, 미국 PBS, 프랑스 아르떼, 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 공영방송 등에서 방송됐다. 이같은 성과가 계속되자 김 감독은 글로벌 다큐 프로듀서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그러다 보니 해외 제작사와 협업이 필요하거나 영화제 마켓에 다큐멘터리를 출품하고 싶을 때 모두 김선아 감독을 찾았다. 넷플릭스 다큐 ‘님아 : 여섯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도 김 감독의 손을 거쳐간 작품이다. 네덜란드 불교방송에서 한국의 사찰음식 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했는데 그 뒤에도 김선아 감독이 있었다. 한국의 사찰음식 프로그램을 기획해 한국 제작사와 네덜란드 불교방송을 연결해 현지에 한국불교를 알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저는 다작을 안 해요. 자본주의와 최소한의 타협을 하며 살기 때문에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해야해요. 약간 완벽주의자죠. 남이 해도 잘할 것 같으면 굳이 내가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해서 원하는 작품, 감독님들과 작업을 하는 편이죠. 그러다보니 KBS에서 색에 대한 다큐를 제작할 때 감독님이 저와 하려고 촬영을 늦추기도 했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그는 영화관이라는 상영 플랫폼에 제한을 두지 않고 전 세계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유튜브를 활용하기로 했다. 개인 유튜브 채널 ‘KoreanPhilosopher’을 개설했다. 2024년 1월 원효 스님의 ‘일체유심조’ 사상을 담아낸 단편영화 ‘경계가 없는 곳-무이사’를 공개했다.
원효 스님을 통해 불교와 인연을 맺은 김 감독은 조계종 화쟁위원으로도 위촉됐다. ‘원효의 발자취 순례’를 이끌어오다 코로나19를 맞아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 현재는 ‘화쟁 티키타카’에 출연하고 있다. 최근에는 챗 GPT를 활용한 ‘원효 스님에게 묻다’라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스님의 얼굴을 구현한 영상에 원효 스님 일대기에서부터 사상 등을 학습한 AI가 답하는 방식인데, 누구나 폭넓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 특징이다.
“화쟁사상은 민족 종교 이념 등 온갖 문제로 대립과 갈등을 벌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정신적 가르침이에요. 불자들도 잘 모르시더라고요. 어떻게 쉽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을 했는데 올해 초 AI필름 메이킹 코스를 수강하면서 발전하는 기술을 적용해보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이런 식의 콘텐츠 제작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불교를 좀 더 자연스럽게 대중에게도 알릴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원효 스님에 대해 알아가는 건 기본이고요.”

김 감독의 삶은 원효 스님을 만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평탄하게 흘러갈 것만 같았던 인생에 몇 번의 굴곡이 생기고, 의미를 잃어갈 때 원효 스님은 김 감독 앞에 운명처럼 나타나 지금까지 든든하게 그를 지탱해 주고 있다.
“위기의 순간 원효 스님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아직도 그때 느낀 자유로운 감정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원효 스님의 사상을 공부하는 것이고, 영상화 작업을 한거죠. 제작 여건이 따라주지 않아 아직 미완성이지만 다큐 작업을 재개해 많은 이들에게 세계의 위대한 철학가이자 사상가인 ‘원효 스님’을 알리고 싶어요.”
김민아 기자 kkkma@beopbo.com
[1728호 / 2024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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