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이 종교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초기 신화를 과장하고 성지화 작업에 전력한 결과 경기도 광주 천진암과 여주 주어사지 등 불교 성지에서 불교의 흔적을 없애고 잇달아 역사 왜곡을 자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사회부장 도심 스님)가 12월 11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광주 천진암과 주어사지를 둘러싼 역사 왜곡과 종교 갈등을 종식하고 평화와 공존을 모색하는 학술 세미나를 열었다. ‘천진암-주어사지 종교갈등 해결을 위한 실체적 접근’을 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 세미나는 총무원 사회부가 주최했으며 불교역사제자리찾기운동본부와 종교평화위원회가 공동주관했다.

경기도 광주 천진암과 여주 주어사지는 18세기 천주학을 연구하던 학자들에게 강학 장소를 제공하고 관을 피해 온 가톨릭인들을 보호한 사찰로, 불교의 포용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19세기 폐사된 후 현대에 들어 가톨릭이 천진암과 주어사지, 홍주읍성 등을 성지화하면서 불교계와 마찰을 빚어왔다. 양측의 갈등이 커진 가운데 이번 세미나는 역사적 고증과 문헌을 기반으로 불교 역사 왜곡에 대응하고 종교 편향을 불식하기 위해 개최됐다.
‘천주교의 불교사찰 성지화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주제로 한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의 기조발표에 이어 이창익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닫힌 성지와 열린 성지:천진암과 주어사 연대기’, 민순의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이 ‘주어사 천진암의 실체적 접근’, 김용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가 ‘18세기 경기도 불교의 다양한 양상과 천진암 주어사’를 각각 발제했다.

발제자인 이창익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닫힌 성지와 열린 성지:천진암과 주어사 연대기’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가톨릭이 종교적인 역사를 개인적인 역사로 만들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흔히 종교는 자기 종교의 기원을 과장·왜곡하는 경향이 있지만 가톨릭은 초기 역사에 대한 과장과 성지화를 통해 현실과 다른 ‘상상의 역사’를 전개하고 스스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힘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 배경에는 1920년대까지 명칭 미확립 및 불교와 개신교에 비해 수적 열세에 처해있던 가톨릭의 불안정한 종교적 입지가 있다. 종교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순교, 성인, 성지’라는 개념을 중심에 세워 가톨릭 초기 신화를 과장하고 공간화 구축에 전력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가톨릭 성지 조성의 문제점으로 ‘순교자 유해 이장’, ‘가톨릭 사적지의 문화재화’ ‘종교적 순례를 관광 자원으로 눈속임’ 등의 예를 들었다. 가톨릭이 성역화에 집착하고 편법을 통해 엄청난 국가적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데 이어 1970년대와 2011년부터 각각 시작된 천주교의 천진암과 주어사 성역화 작업을 연대화해 발표했다.

이 교수는 2027년 8월 서울에서 가톨릭 ‘세계청년대회’가 개최됨에 따라 가톨릭이 대대적인 성역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조선 왕조 치하 순교 133위 시복식이 열릴 가능성이 높으며 이들 가운데 권일신, 이벽, 이존창 등 배교자나 비순교자가 여럿 포함돼있다. 그는 “천주교는 자기만의 상상에 공간에 갇혀 스스로를 유폐하고 있다”며 “배타적인 역사 해석과 성지의 지역화·자연화를 지속화를 통해 천주교는 종교 갈등의 온상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말해 가톨릭의 각성과 올바른 역사 인식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민순의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주어사·천진암의 실체적 접근’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주어사와 천진암이 한국 가톨릭의 발상지라는 그들의 주장과 달리 두 사찰은 가톨릭과 무관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민 연구원은 두 사찰의 역사적 실체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과 두 사찰에서 진행된 남인들의 강학 내용이 가톨릭과 관련한 것이었는지 불분명하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발표에서는 주어사와 천진암에 대한 사료와 발굴된 유물을 통해 두 사찰의 성격과 가톨릭과의 관련성이 분석·제기됐다. 조선 후기 고지도를 분석한 결과 당대 주어사의 실체는 불분명하지만 2019~2023년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 주어사의 규모와 사격이 상당이 컸으며, 17~19세기에 운영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천진암은 주어사와 달리 당대의 고지도에 언제나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비록 현전하는 유물은 없지만 종이 제작이라는 중앙 당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어사는 중앙 당국과는 밀접한 관련이 없지만 지방 종교 문화에서 위상을 지녔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흔히 주어사·천진암의 강학은 정통 주자학을 비판하며 양명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던 권철신(1736~1801)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약용(1762~1836)이 지은 권철신 묘비명에 기해년 겨울 천진암 주어사에 강학할 적 이벽이 눈 오는 밤에 찾아오자 경(經)을 담론했다는 내용이 기록돼있다. 이벽이 권철신 무리의 강학에 합류한 일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달레(Claude Charles Dallet,1829~1878)가 쓴 ‘한국천주교회사’에도 서술돼있다. 가톨릭은 이를 근거로 남인들이 두 사찰에서 가톨릭을 공부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민 연구원은 강학에서 천주학을 학습했다는 명확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 정약용의 글(기해년, 1779년)과 달레의 기록(1777년)이 2년의 차이를 두고 있는 점 △ 정약용의 기록에서 경(經)이 천주학 관련 서적이라고 명시하고 있지 않은 점 △ 정약용이 적은 그의 형 묘비명에 기록된 권철신의 사상이 성리학에 입각해있다는 점 △달레에 따르면 강학회 인물들이 가톨릭 교리에 감화되어 정기적으로 금욕하거나 기도했지만 정약용의 기록에는 해당 행위에 대한 서술이 없는 점 등을 제시했다.
민 연구원은 “권철신의 주도하에 주어사와 천진암에서 강학회가 이루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강학 내용이 가톨릭의 교리에 해당하는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며 “이에 대한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현재 주어사와 천지암은 폐사된 상태이며 가톨릭의 일방적인 개발로 천진암의 유물 발굴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혀 가톨릭의 신중한 검증과 일방적인 성지화 중단을 촉구했다.

기조발표를 맡은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은 지피지기의 정신을 강조하며 가톨릭이 누리고 있는 특별 혜택 및 가톨릭의 불법행위에 대한 정부의 묵인 등에 대해 시민 공론의 장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이 원장은 “이웃 종교의 역사를 모르고 그들이 시대에 발맞춰 어떤 일을 추진하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는다면 뒤늦은 후회만 있을 뿐”이라며 “가톨릭에게서 배울 것은 과감하게 흡수하면서도 가톨릭이 정부에 지나친 예산을 지원받고 불교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는 것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가톨릭이 순교 성지 조성에 열광하는 이유로 로마 제국 치하에서의 핍박부터 예수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말살의 공포와 천국으로 가는 길로 여겨지는 순교에 대한 우상화가 작동했다고 분석했다. 박해와 억압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가톨릭의 문화 유전자를 강조한 이 연구원장은 18세기 천진암과 주어사지가 가톨릭 교도들에게 학습 장소를 제공하면서 가톨릭이 한국에 뿌리내릴 수 있었지만 가톨릭 교도들은 불교계에 감사를 표하는 일 없이 일방적으로 성지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천진암 대성당 건립 공사에 따른 광주분원 유적 훼손 사건도 언급됐다. 1993년 로마 교황이 방문하기도 했던 이곳은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유적이 훼손된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가톨릭은 현재도 공사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가톨릭 발상지라는 명분과 로마 교황의 권위에 기댔기에 가능한 묵인이었다. 가톨릭뿐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단체까지 로마 교황청의 권위에 지나치게 순종하고 있는 점 또한 비판받을 지점으로 제기되며 가톨릭에 지나친 예산을 지원하고 국도 등에 자의적으로 순교 성지 표지판을 세우는 가톨릭의 행위를 묵인하는 정부와 지방단체의 각성 또한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발제를 맡은 김용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는 ‘18세기 불교계의 동향과 경기도’를 주제로한 발표에서 경기도 동남부 지역의 주요 사찰들을 소개하고 천진암과 주어사를 종교 융합과 상생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가톨릭에서 주어사를 전유하려는 것은 종교간 갈등을 부추기는 일”이라며 “천진암과 주어사는 지식인들의 독서와 토론의 공간이었으며 다양한 사상과 종교의 흐름이 교차하던 장소”라고 강조해 가톨릭의 일방적인 성지화 작업 중단을 촉구하고 종교 융합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학술세미나에는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도심 스님, 종교평화위원장 향문 스님, 불교역사제자리찾기운동본부 송탁 스님 등과 이상훈 한국교수불자연합회장을 비롯한 발제자들과 100여 명의 불교 관계자 및 신도들이 자리했다. 또 여주 주어사 인근 주민들이 참석해 가톨릭의 불교 역사 왜곡과 일방적인 천지암·주어사 성지화 문제에 대한 관심과 논란이 확산되고 있음을 방증했다.

종교평화위원장 향문 스님은 “불교의 자비와 포용 정신이 깃든 천진암과 주어사는 갑작스레 폐사된 이후 가톨릭 성지가 되었다”며 “오늘 세미나를 통해 18세기 불교를 집중 조명하고 역사적 실체에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총무원 사회부장 도심 스님도 “천진암과 주어사는 그 자체로 불교의 포용성을 상징한다”며 “이번 세미나를 통해 역사적 진실을 바로 세우고 종교 간 화합과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오재령 기자 jjrabbit@beopbo.com
[1757호 / 2024년 12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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