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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으로 이어온 자비봉사 30년, 우리 곁에 온 관세음보살

  • 무진등
  • 입력 2025.04.14 17:17
  • 수정 2025.04.15 11:36
  • 호수 1773
  • 댓글 1

80년 양산 통도사 방문하며 불연
95년부터 복지재단 봉사단서 활동

30년 꾸준한 봉사 원동력은 ‘하심’
염불‧목욕‧무료 급식 봉사 이어와

젊은 봉사자 양성 위해 문턱 낮춰야
“욕심 비워야 봉사 오래 할 수 있어”

이문희 보살은 30년 봉사 경력의 원동력을 묻자 “하심”을 꼽으며 이를 깨닫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이 보살은 1996년에 있었던 사고로 큰 부상을 당하며 봉사 현장을 잠시 떠났는데, 이때의 경험으로 하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이문희 보살은 30년 봉사 경력의 원동력을 묻자 “하심”을 꼽으며 이를 깨닫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이 보살은 1996년에 있었던 사고로 큰 부상을 당하며 봉사 현장을 잠시 떠났는데, 이때의 경험으로 하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4월 4일, 봄바람에 살랑살랑 꽃잎이 날리는 서울 내원사.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자원봉사단 화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하나둘 얼굴을 내밀었다. 이날은 정기 사찰 봉사일. 공양 준비와 환경 정리, 법당 청소까지 하루종일 바지런을 떨어야 하는 날이다. 이날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 벌써 부지런히 몸과 손을 움직이며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었다. 자원봉사단 화목회의 팀장이자, 30년 넘게 봉사의 길을 걸어온 이문희 보살(법명 금강심)이다.

이문희 보살은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자원봉사단이 창립된 1995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화목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환한 미소와 자비로운 몸 놀림으로 관세음보살과 같은 자비를 실천해왔다. 이문희 보살의 봉사활동은 화목회가 처음이 아니다. 1992년, 길음종합사회복지관에서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식사봉사가 첫 봉사였으니, 봉사 이력은 이제 33년에 이른다. 강산이 3번이나 바뀐 그 긴 세월 동안 불퇴전의 자비심으로 봉사 현장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몸에 깊이 새긴 ‘하심’이었다.
 

이문희 보살이 팀장을 맡고 있는 화목회가 4월 4일 서울 내원사에서 법당 청소 봉사를 하고 있다. 
이문희 보살이 팀장을 맡고 있는 화목회가 4월 4일 서울 내원사에서 법당 청소 봉사를 하고 있다. 

“잘하려고만 애쓰다 보면 기준이 높아져요. 그러면 쉽게 지치고 힘들어집니다. 봉사는 낮출수록 더 깊어지고 오래갑니다. 그냥 내가 할 일을 한다는 그 마음. 그것이 하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원동력입니다.”

말은 쉽지만 마음에 단단한 옹이가 생기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심의 진정한 의미를 체득하기까지는 1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1980년, 우연한 계기로 양산 통도사를 찾았다. 이웃과 가볍게 들른 산사에서 불교와 인연을 맺었고, 그해 그 희미한 인연이 봉선사로 이어져 ‘금강심’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법명의 뜻을 묻자 운경 스님은 “금처럼 단단하고,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강한 마음”이라 했다. 그후 법당을 자주 찾아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불자의 길도, 봉사의 길도 그리 곧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1992년 어느 날, 도봉산을 오르던 중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당시 제 삶은 정리 안 된 방처럼 어지러웠어요. 그래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할까 싶어 홀로 도봉산에 올랐죠.”

하지만 산 중턱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 방향 감각은 흐려지고, 날은 어두워졌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긴장이 온몸을 조였고, 결국 바위 옆에 주저앉았다. 바람은 차가웠고, 해는 이미 지고 있었다. 심연처럼 깊은 두려움이 솟아올랐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만월암에서 포행 중이던 선오 스님과 신도들이었다. “이런 데서 뭘 하고 계세요?” 스님의 물음에 이문희 보살은 “길을 잃었다”고 답했다. 스님은 이문희 보살을 일으켜 세우면서 “이제 괜찮다”며 환하게 웃었다.

“하룻밤 묵어도 될까요?” 머뭇거리며 물은 이문희 보살에게 스님은 흔쾌히 방 한 칸을 내줬다. 그날 밤, 만월암의 따뜻한 방 안에서 모처럼 깊은 잠을 잤다. 그 인연으로 이 보살은 종종 만월암을 찾게 됐고, 그곳에서 선오 스님의 따뜻한 가르침을 들으며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어느 날, 스님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다면, 남을 위해 살아보는 것도 하나의 길입니다.”

단순한 제안은 아니었다. 무언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던 절박한 마음에 불빛 하나가 툭 하고 켜졌다. 이후 이 보살은 길음종합사회복지관에서 어르신 식사를 준비하며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자비의집에서도 활동하며 삶의 중심을 ‘나’에서 ‘타인’에게로 조금씩 옮기기 시작했다.
 

이문희 보살은 그간의 봉사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2019 서울특별시 자원봉사 유공자 표창 수여식’에서 표창장을 받았다.
이문희 보살은 그간의 봉사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2019 서울특별시 자원봉사 유공자 표창 수여식’에서 표창장을 받았다.

그러던 참에 1995년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자원봉사단이 출범했다. 이문희 보살은 흔쾌히 화목회의 일원으로 합류했다. 남다른 책임감과 성실함, 그리고 리더십까지 갖추니, 자연스레 팀장직을 맡게 됐다.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무연고자 염불, 어르신 목욕 봉사, 무료급식, 소년소녀가장 장학금 지원, 군부대 봉사까지 다채로운 활동을 이끌고 있다.

그렇지만 선업도 집착하면 악업이 되듯이 오랜 세월 누적된 열정은 자신도 모르게 교만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어느 틈엔가 마음 한켠에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교만을 일거에 무너뜨린 사건이 있었다. 1996년 5월 23일, 부처님오신날 준비를 마치고 버스에 탑승했다. 그런데 유조차가 버스를 들이받았고, 이 보살은 그 충격에 버스 밖으로 튕겨 나가 하반신이 바퀴에 깔리는 참변을 당했다. 뼈는 부서지고, 엄청난 통증은 지옥을 현실로 불러 온 것 같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겨우 살아났다.

그 후 18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몸보다 더 큰 고통은 자신의 자리를 빈틈없이 채워나가고 있는 봉사팀의 모습이었다.

“정말 괴로웠어요. 내가 없어도 화목회가 돌아가고, 길음복지관도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죠.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분노가 치밀고, 우울감이 그 뒤를 따라왔어요.”

병상에서 부처님을 원망했다. 어느 날, 문득 만월암이 떠올랐다. 산을 오르겠다고 하니, 의료진은 말도 안 된다고 만류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만월암을 향하고 있었다. 기어코 나선 산행, 평소 1시간이면 오르던 길을 그날은 6시간이 걸려서야 도달할 수 있었다. 

“부처님을 뵈면 따지고 싶은 게 많았어요.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눈물만 쏟았습니다.”

부처님 앞에서 눈물이 흘렀고 입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끊이지 않았다. 그 눈물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봤다. 그러면서 ‘나 없으면 안 돼’라는 생각이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남을 돕는다는 생각에 우쭐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모질게 굴었던 과거가 떠올랐다.

부끄러웠지만, 그 부끄러움을 마주하자 ‘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서둘러 퇴원했고, 만월암에 오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돕는다는 마음이 아니라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1998년 봉사 현장에 돌아갔다.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왔지만 사람은 달라져 있었다. 얼굴에는 미소가, 말과 행동에는 배려가 절로 깃들었다. 여전히 미혹한 중생이기에 나태심이 나기도 하지만, 하심을 되새기며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자신이 아닌, 함께하는 도반들에게서도 깊은 위안을 얻는다고 말한다.

“화목회에는 70~80대 보살님들이 많아요. 봉사일이면 꼭 오시죠. 함께하는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때가 많아요.”

가정의 화목도 봉사의 선물 중 하나였다. 그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가정도 평화로워지고, 자녀들도 바르게 자랐다”며 웃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한 소년가장의 사연을 꺼냈다.

“대학 입학을 포기하려던 소년이 있었어요. 급하게 모금해 600만원을 전달했죠. 나중에 그 학생이 저를 수소문해 감사 인사를 전했을 때, 울컥한 마음과 함께 큰 보람을 느꼈어요.”

이제는 봉사의 미래를 위해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문희 보살은 2020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문희 보살은 2020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자원봉사단이 고령화되고 있어요. 젊은 불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주말 교육 같은 걸 확대해야 해요.”

후배 봉사자들에게는 이렇게 조언한다.

“여러 곳 욕심내면 금방 지쳐요. 한 곳에서 꾸준히 해보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이 편안해야 웃으며 봉사할 수 있어요.”

향후 계획을 묻자, 그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말했다.

“지금처럼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봉사하고 싶어요. 시간이 나면 도반들과 성지순례도 가고요.”

그의 미소는 30년 봉사에서 빚어진 연민과 내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현실 속에서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피워낸 이문희 보살. 그 발은 여전히 봉사의 길 위에 서 있다.

백진호 기자 kpio99@beopbo.com  

[1773호 / 2025년 4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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