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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 역량 모은 반세기…‘함께하는 불교’ 실현한 원력보살

  • 무진등
  • 입력 2025.06.16 15:31
  • 수정 2025.06.17 13:11
  • 호수 1781
  • 댓글 1

고교 선배 권유로 시작된 불자의 삶
한림대 불교동아리 창립하고 회장 맡아
교직원으로서 불교동아리 재건에 앞장

종파 초월 ‘춘천지역 연합 신도회’ 결성
‘53문사수순례단’으로 지역 신행 이끌어
“스님·신도 함께 운영 이상적 사찰 꿈꿔”

 

춘천 봉덕사에서 만난 정수동 거사는 일평생 머무는 곳마다 신행단체를 만들어 왔다. 그가 총무를 맡은 ‘53문사수순례단’은 법문을 듣고[聞], 사유하고[思], 수행하는[修] 데 집중한다.
춘천 봉덕사에서 만난 정수동 거사는 일평생 머무는 곳마다 신행단체를 만들어 왔다. 그가 총무를 맡은 ‘53문사수순례단’은 법문을 듣고[聞], 사유하고[思], 수행하는[修] 데 집중한다.

불자의 역량 결집을 고민하는 한 남자가 있다. 춘천 봉덕사에서 만난 정수동(63·불이) 거사는 가는 곳마다 불자 조직을 만들며 신행의 터전을 닦아왔다. 대학생 시절엔 학교에 불교동아리를 만들었고, 같은 학교의 교직원이 된 후에는 사라졌던 동아리를 다시 세웠다. 춘천지역 사찰의 신도들을 하나로 묶어 연합 조직을 구성했고, 지금은 순례단을 이끌며 도반들의 신행을 돕고 있다. 그 모든 실천의 바탕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다져온 깊은 불심이 있었다.

어렸을 적 정수동 거사는 새벽 5시에 불 꺼진 방 안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정근 소리에 잠에서 깨곤 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자식들을 키우던 어머니는 매일 어둠 속에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기도했다. 어린 마음에는 그 모습이 낯설고 궁금했지만, 그 소리는 차츰 그의 마음속에 따뜻한 숨결처럼 스며들었다.

본격적인 불연은 강원도 춘천고에 유학하면서 시작됐다. 동아리 홍보 시간에 한 선배가 칠판에 큼직하게 ‘佛’ 자를 쓰며 불교학생회를 소개했다. 자세히 보니 중학교 3학년 때 춘천고를 홍보하러 왔던 중학교 선배였다. 반가움에 이끌려 고등학생불교연합(고불련) 활동에 참여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춘천의 고등학생 불자들과 함께 어울렸고, 주말 법회와 산사 수련회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또래 도반들과 함께 부처님 곁에 머무르자 불교는 그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82년, 한림대에 입학했을 당시 학교에는 불교동아리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고불련 활동을 마친 뒤 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로 이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었다. 자칫 신행 활동이 끊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함께 입학한 도반들과 힘을 모아 한림대 불교동아리를 창립했다. 그는 초대 회장을 맡아 동아리의 기틀을 다져 나갔고, 전체 학생 수가 많지 않던 신설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동아리는 교내에서 가장 활기찬 모임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정수동 거사는 졸업 후 모교의 교직원으로 입사해, 30년 넘게 몸담았다. 최연소 교무과장, 비교수 출신으로는 드물게 평생교육원장을 지내는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했다. 오랜 세월 학교에 몸담으며 수많은 일을 겪었지만, 가장 충격이 컸던 사건은 2009년 한림대 불교동아리의 소멸이었다.

“학교에 근무했지만 일이 많아 대불련 후배들을 제때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아리 회장이 후임을 정하지 않은 채 갑자기 자취를 감췄고, 등록이 누락되면서 불교동아리가 사라졌습니다. 직접 만든 동아리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신행을 삶의 중심에 두며 가족 모임보다 불교 행사를 우선하던 그에게 있어 참담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재창립의 계기는 아주 우연하게 다가왔다. 2017년 아들이 복무 중인 부대에서 진행된 위문법회 자리에서, 함께 참석한 한 군인이 “딸이 한림대에 다닌다”고 한 말이 귀에 들어왔다. 정수동 거사는 곧장 “그 학생 좀 만나게 해주세요. 실무는 제가 담당할 테니, 이끌 학생만 있으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6개월간 한림대 불교동아리 재창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타 종교인에 의해 불교동아리 재창립 홍보 플래카드가 훼손됐고, 기독교인이 장악한 총동아리 종교분과에서는 동아리 등록 심의 자체를 부결시켰다. 명백한 종교 차별이라고 느낀 그는 학생처장을 직접 불러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강경히 항의했다. 이 사건은 지역 언론에서 기사화됐고, 대불련 본부 차원에서도 논의될 만큼 파장이 컸다.

결국 학교도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에 나섰다. 그 결과 마침내 ‘대불련 한림지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일어섰다. 종단의 관심 속에 청년 불자도 점차 늘어나며 현재 회원 수는 130여 명으로 예전의 위상을 되찾아 가고 있다.
 

올해 문경 봉암사에 방문한 순례단의 모습.
올해 문경 봉암사에 방문한 순례단의 모습.

2021년, 정수동 거사는 종파를 초월한 ‘춘천지역 연합 신도회’를 조직했다. 이는 오랜 신행활동 속에서 줄곧 품은 ‘왜 불자들의 목소리는 사회에서 이토록 약할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했다.

“대부분의 춘천 사찰에선 하수도 공사 요청부터 도로포장 같은 민원까지, 문제가 생기면 주지스님이 직접 시청 민원창구를 찾습니다. 기도와 수행, 그리고 법문에 집중해야 할 스님들이 공무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쓰시더군요. 그런데 저는 이런 일은 스님이 하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찰 실무는 스님의 지도 아래 신도들이 전적으로 맡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의문은 ‘신도들 간에 유기적인 조직이 없다’라는 결론으로 귀결됐다. 각 사찰마다 신도회는 존재했지만, 사무를 담당하는 신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수동 거사는 춘천 지역 불자들이 사찰 실무의 주체가 돼야 불교가 지자체와의 교섭에서 힘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러한 철학으로 지역 사찰 신도회를 하나로 묶는 ‘춘천지역 연합 신도회’를 구상했다.

사찰별로 5명씩 신도 대표를 추천받아 총회를 구성하고, 수직·수평의 피라미드형 네트워크로 지역 전체 불자들을 연결하는 구상이었다. 이를 통해 사찰 간 연대를 형성하고 실무 역량을 키우며, 나아가 지자체와의 업무에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길 바랐다. 초기에는 반발과 무관심 속에서 두 차례나 무산됐지만, 세 번째 시도 끝에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춘천 시내 대형 사찰 법당에 200명 가까운 불자들이 모여 발대식을 열었고, 지역 정치인과 시장도 자리했다. 정수동 거사는 실무 총무를 맡아 조직 운영을 책임졌다.

그러나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조직이 자리를 잡아가던 무렵, 일부 사찰에서는 지역 신도들 간의 활발한 소통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다른 사찰의 신도와 단톡방을 만들고, 밴드로 연락을 주고받는 모습이 마땅치 않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신도들이 자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새로운 방식이 아직은 낯설게 다가온 것이다. 결국 연합 신도회는 다시 형식적인 운영으로 위축됐다.

“사찰은 사부대중이 함께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역할과 권한을 나누고,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가 협력해야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이상적인 사찰 공동체는 스님이 법(法)의 중심에 서고, 신도가 실무를 책임지는 협력적 구조였다.
 

문경 세계명상마을에서 순례 도반들과 함께 정진하는 모습.
문경 세계명상마을에서 순례 도반들과 함께 정진하는 모습.

가는 곳마다 조직을 만들고 불자들의 역량을 결집했던 정수동 거사는 이제 춘천 지역 사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53문사수순례단’의 총무를 맡아 포교에 진력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복신앙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순례단을 만들며 가장 중점적으로 기획한 것은, 방문하는 사찰의 주지스님으로부터 법문을 듣고[聞], 사유하고[思], 수행하도록[修] 이끄는 것입니다. 기도 공덕도 중요하지만, 결국 부처님이 어떤 가르침을 주셨는지 귀 기울이는 것이 신행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해설사 자격증이 있는 만큼, 방문하는 사찰에 숨겨진 ‘의미’를 발굴해 불교의 가치를 도반들의 마음속에 새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수동 거사의 길은 단지 한 불자의 신행을 넘어, 춘천 불교 공동체를 일구고 역량을 모은 원력의 여정이었다. 그는 언제나 부처님 곁에 머무르되, 혼자가 아닌 함께 걷는 길을 택했다. 가는 곳마다 불연을 잇고, 멈추는 자리마다 신행의 터전을 일군 그는 오늘도 묵묵히 그 길을 걷고 있다.

춘천=박건태 기자 sky@beopbo.com

[1781호 / 2025년 6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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