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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108산사 “카메라로 수행하고 사진으로 전법하죠”

  • 무진등
  • 입력 2025.07.18 17:36
  • 호수 1786
  • 댓글 3

건축사 직업 덕에 사진 친숙
IMF로 폐업…작가의 길 열려
문화유산수리전문가로도 활동
“최고 순간 위한 기다림·집중
마음 살피는 수행과 비슷해”

주말 교회 다니던 기독교 청년
아버지 죽음 후 종교로 방황
불교 만난 후 “알수록 매력”
‘108산사’ 시리즈로 전법행

최우성 불교사진작가는 2018년 사진집 ‘사진으로 본 한국의 108산사’ 1권에 그동안 촬영한 산사와 불교 문화유산을 담았다. 1권 출간 7년 만인 올해 3월에는 ‘108산사’ 2권을 냈는데, 3~5년 내에 나머지 두 권을 출간할 계획이다.  
최우성 불교사진작가는 2018년 사진집 ‘사진으로 본 한국의 108산사’ 1권에 그동안 촬영한 산사와 불교 문화유산을 담았다. 1권 출간 7년 만인 올해 3월에는 ‘108산사’ 2권을 냈는데, 3~5년 내에 나머지 두 권을 출간할 계획이다.  

“포교에서는 시각적인 요소가 중요합니다. 사진은 사찰과 불교 문화유산의 매력과 분위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관적으로 전하죠. 사람들이 이 같은 요소를 눈으로 접하면 불교에 관심을 갖고 다가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런 점에서 사진도 하나의 포교 방편입니다.”
불교계에서 영상 콘텐츠 기반의 포교가 대세라지만, 전국의 산사를 20여 년간 발로 누비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온 최우성 불교사진작가(효천,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사진으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동안 사진을 통해 불교를 알려온 그는, 한국 산사만의 매력과 가치, 그 속에 녹아 있는 부처님 가르침을 사진으로 전하는 일 또한 전법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사진도 포교의 일환인 만큼 최 작가의 촬영 과정은 매우 치밀하다. 사진에 담을 만한 산사인지 판단하고자 최소 두 차례 이상 사찰을 직접 방문해 세심하게 관찰한다. 경관의 아름다움과 사찰의 역사, 문화유산적 가치까지 고려한 뒤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한국의 산사는 산의 지형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부석사를 예로 들면, 전각들이 산세에 따라 배치돼 있어요. 전각을 지날 때마다 산세를 따라 부처님에게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건축설계사로 활동하던 최 작가에게 사진은 낯설지 않은 동반자였다. 기설계 과정에서 건축물 사진을 자주 촬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들게 된 계기는 IMF 외환위기였다.

건축업계가 어려워지자 사업체를 정리하고 문화재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생 시절 잠시 문화유산을 공부했지만, 이번에는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 결과 2000년 문화유산수리기술자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을 받고 난 뒤 ‘문화유산을 사진에 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때부터 전국을 답사하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덕분에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사진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사진작가로도 선정되며 문화유산 전문 사진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전국을 다니며 문화유산 사진을 찍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찰로 이어졌어요. 사찰과 그 속의 문화유산을 사진으로 담는 데 집중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사찰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닙니다. 건축과 배치, 그림 하나까지 모두 부처님 가르침을 품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까지 담아야 사찰 건축과 문화유산의 가치가 제대로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더 잘 찍기 위해서는 불교에 대해 더 공부해야 했고, 그럴수록 그 가르침에 더 깊이 귀의하게 됐습니다.”

사찰과 불교 문화유산을 ‘제대로’ 사진에 담고 싶었던 그의 노력은 자연스럽게 한국불교사진협회(이하 불사협) 활동으로 이어졌다. 2011년 불사협에 가입하며 불교사진작가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사찰에서 사진을 찍으며 스님들과의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해인사 대적광전 내부를 촬영하려 했는데 처음에는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 차례나 공문을 보내고 직접 방문해 설득했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정성을 들인 끝에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최 작가가 직접 사찰에서 촬영한 부석사 무량수전.
최 작가가 직접 사찰에서 촬영한 부석사 무량수전.

문화유산수리기술자이기도 한 그의 사진에는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가 담겨 있다. 사찰은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며 자리 잡고 있기에,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일은 문화유산수리기술자의 가장 기본적인 역량이다. 그런 만큼 사찰이나 불교문화유산을 사진으로 담을 때도 주변의 자연환경까지 세심히 살펴야 최상의 장면을 포착할 수 있다. 전국을 다니면서 산사와 자연을 담기 위한 기다림과 인내는 필수였고, 어느새 사진은 그에게 포교이자 수행의 한 방식이 됐다.
“좋은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한 자리에 오랫동안 머무는 일이 다반사예요. 날씨가 흐려지거나 빛이 사라지면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할 때도 많고, 반대로 갑작스러운 빛의 변화에 대비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막연히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변화의 과정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집중해야 하죠. 마음이 산란하면 눈앞의 변화를 놓치기 마련입니다. 마음을 고요히 두고 외부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이 과정은 수행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랜 인내 끝에 한 장의 사진을 찍는 순간, 마치 화두를 풀어낸 듯 그간의 고생이 모두 잊힙니다.”

불교사진작가로 활동하던 2018년, 그는 사진집 ‘사진으로 본 한국의 108산사’ 1권을 출간했다. 그동안 촬영한 산사와 불교 문화유산을 담은 결과물이다.

“제가 환갑이 되던 해였어요. 아내가 환갑 기념으로 무언가를 해보라고 권했어요. 그 말을 듣고 산사 사진을 책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오랜 기간 외세의 침략과 억압을 견뎌온 사찰의 현재 모습, 불국토를 위해 헌신한 선조들의 이야기를 후대에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산사와 불교 문화유산의 매력과 가치를 넘어 부처님 가르침을 직관적으로 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불보사찰 통도사, 관음성지 낙산사, 불국사 등이 수록된 1권 출간 후 7년 만인 올해 3월에는 ‘108산사’ 2권이 세상에 나왔다. 코로나19로 출사가 어려웠던 시기를 견디고 나온 만큼 최 작가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다. 2권에는 법보종찰 해인사, 금정총림 범어사, 문수보살 성지 월정사 등이 포함됐다.

불교사진작가로 빛나는 경력을 쌓아온 그는 사실 주말마다 교회에 나가던 기독교 청년이었다. 기독교계 종립학교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신앙생활을 했지만, 20대 초반 든든한 버팀목이던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믿음에 회의가 찾아왔다. 4~5년간 방황하던 그의 관심은 조금씩 불교로 기울어졌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기독교 신앙에 대한 회의감이 자연스럽게 불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죠. 불교 관련 서적을 몇 권 읽던 중 ‘열반경의 세계’라는 책을 접하고 부처님 가르침에 감화됐습니다. 그것이 불연의 시작이었습니다.”

감동은 수행으로 이어졌다. 당시 금산사의 지도법사였던 도법 스님으로부터 불교를 배우기 시작했고, 월주 스님으로부터 ‘효천(曉天)’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새벽하늘’. 사진작가에게 잘 어울리는 법명이다. 그 덕분인지 ‘사진으로 포교하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고 있는 그는 포교에 대한 소신도 분명히 밝혔다.

“불자와 스님, 종단 모두가 일반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해요. 그러려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불교에 대한 신뢰가 생기면 호감이 생기고, 그 호감이 커질수록 불교 사진과 같은 콘텐츠를 접할 때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년 넘게 그의 카메라에 담긴 불교문화유산은 몇 점이나 될까. 모두 헤아리기는 어려울 테니 가장 인상 깊은 사진이 무엇인지 물었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입니다. 건축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 탑의 균형은 매우 잘 잡혀 있어요. 게다가 그 사연도 기구하죠. 일제강점기에는 서울과 일본을 전전했고, 한국전쟁 때는 폭격으로 부서지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다행히 지난해 복원됐는데, 모진 풍파를 겪었음에도 특유의 기품과 화려함을 잃지 않았어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며 부처님의 법이 세월을 뛰어넘어 전해진다는 걸 느꼈습니다.”

‘변하지 않는 바위처럼’이라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 단단한 석탑도 신심 깊은 작가의 눈에는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아름답고 당당하게 태어났지만, 세월의 무게에 늙고, 때로는 피하고 싶은 아픔을 겪는 석탑.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한 티끌 먼지가 될지도 모른다. 그의 사진은 이런 이야기를 담고 전하는 또 다른 신행수기다.

“‘108산사’ 시리즈가 절반까지 왔습니다. 앞으로 3~5년 내에 4권까지 출간해 108곳의 산사를 모두 알릴 계획입니다. 한국 사찰에 산신각이 많은 만큼 산신을 주제로 한 책도 내고 싶고, 한국 사찰만의 독특한 건축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책도 쓰고 싶어요.”

그의 얼굴엔 부드러운 미소가 머물렀지만, 말과 눈빛에는 더 많은 사찰과 불교 문화유산의 숨결을 세상에 전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런 만큼 그의 사진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불교를 알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포교를 꿈꾸는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줄 것이다.

백진호 기자 kpio99@beopbo.com

[1786호 / 2025년 7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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