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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땐진데짼·40) 티베트불교 수행차제 - 하

기자명 법보

‘람림’ 단계적 수행에 큰 감동
불교논리학 기반 ‘대론’하며
부처님 법 사유·체화에 도달
우울 옅어지고 신심 깊어져

인도 성지순례와 보드가야 대기원법회는 내 마음을 흔들었고, ‘불교를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열망은 점점 커졌다. 그러나 당장 현실의 삶을 정리하고 인도로 떠나 승원 교육을 받을 수는 없었다. 나이도 들고, 환경도 따라주지 않아 ‘모든 게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다행히 삼학설행사 주지 남카 스님은 지난해 도반들의 요청으로 ‘날란다 코스’를 개설했다. 티베트 승원의 20년 장기 교육을 4년으로 압축한 과정으로, ‘보리도차제론(람림)’과 불교철학을 함께 배우며 방편과 지혜 두 날개를 닦도록 설계됐다.

공부할수록 부처님 법에 대한 확신이 자리 잡으며, 그간 ‘반야심경’을 수없이 외우고도 뜻조차 몰랐던 지난날의 무지를 깨달았다. 특히 ‘람림’의 하사도 가르침을 접하면서 비로소 길이 선명해졌다.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유가구족(有暇具足, 수행하기 적합한 조건을 갖춘 몸)’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불법을 만나고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이 얼마나 드문 인연인지를 알게 되자, 지금 이 몸이 수행의 출발점이자 소중한 기회라는 사실을 깊이 실감했다. 이는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했고, 삶을 수행으로 전환하는 힘이 됐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3승 15도’였다. 예전에는 기도하고 선행을 쌓으면 언젠가 성불할 수 있으리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티베트불교에서 성불의 과정이 세밀하게 단계화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마치 보물섬으로 향하는 지도를 손에 쥔 듯한 희열을 느꼈고, 성불이 추상적 희망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길임을 분명히 깨달았다.

티베트불교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경론을 문·사·수로 익히는 과정에서 논리학 입문서인 ‘뒤다’를 바탕으로 불교 인식논리학, 곧 인명학(因明學)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무아를 인식하는 지혜로 번뇌를 끊고, 대자대비심을 완성하며, 사성제와 인과를 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모두 이 같은 논리학적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고 한다.

인명학을 배우는 핵심 방편이 바로 대론(對論)이다. 대론은 사견자의 주장을 정견자가 논제와 논증인을 제시해 반박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예컨대 “오늘은 비가 온다”라는 명제에서 ‘오늘’은 논제, ‘비가 온다’는 귀결문이며, “구름이 많이 끼었기 때문에”라는 근거가 논증인이다. 이처럼 명제와 근거의 관계를 따져가며, 주제별로 정리된 문답을 통해 개념을 하나하나 학습한다. 마치 집을 짓듯 벽돌을 쌓아가며 개념과 정의를 다져 나가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뒤다’를 보면서도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고, 자신 있게 내놓은 주장이 스님의 반문 한마디에 무너질 때는 허탈함에 다 같이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내 생각이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절감했고, 올바른 견해를 세우기 위해 논리학 공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과정을 통해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넘어, 부처님 법을 사유하고 체득하는 힘이 자라나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공부를 이어가며 스스로 많은 변화를 느낀다. 마음속의 우울은 옅어지고, 타인을 대할 때의 불안과 적대감도 줄었다. 진언을 외우며 ‘람림’에서 배운 출리심·자비심·보리심을 일으킬 때마다 마음은 한결 편안해지고 신심은 깊어진다. 앞으로도 이 배움이 이어져 인도와 티베트 스승들의 논서를 스스로 읽고 사유하며 수행할 수 있기를 발원한다. 지금까지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과 도반들, 그리고 제자들을 성불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남카 스님과 달라이라마 존자님께 거듭 감사드린다.

[1794호 / 2025년 9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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