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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수행 30년, 부처님 광명 세상에 전하는 시대의 부루나

  • 무진등
  • 입력 2025.11.14 13:00
  • 호수 1801
  • 댓글 0

이종태 포교사

사법시험 좌절·부도, 불연으로 극복
매일 금강경 독송…하루 세번 기도
교육·주례 활동으로 불법·불연 나눠
광륜사·도선사·5포병여단 군법당과
고려대 불자교우회 등 신행 이어와

서울 조계사에서 만난 이종태 포교사는 “부처님과의 인연이 인생을 확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서울 조계사에서 만난 이종태 포교사는 “부처님과의 인연이 인생을 확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오늘도 아침저녁 기도를 올리고, 생활 속에서 금강경을 독송하며 부처님의 가피에 감사함을 전하는 이가 있다. 무진 이종태 포교사(83)다. 30년 넘게 수행과 신행을 이어오며 불심을 주변과 나눠온 그는 “부처님과의 인연이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종태 포교사가 본격적으로 부처님께 귀의한 건 30년 전이다. 1942년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절에 드나들었지만, 학업과 분주한 일상 속에서 마음을 돌볼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불심이 깊어질 기회 또한 오래도록 찾아오지 않았다.

“어릴 때 공부를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1960년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법학도로서 사법시험을 준비했지만 매번 떨어지며 마음고생이 컸습니다. 아쉬운 것은 그 어려운 시절에 불법을 만났더라면 인생이 훨씬 다르게 흘렀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법시험 낙방은 그의 인생에 찾아온 첫 번째 위기였다. 스트레스로 인한 무력감 속에서 그는 우연히 대우 그룹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렇게 입사한 대우그룹에서 그는 의류 수출 업무를 담당하면서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가지고 있던 역량을 활짝 꽃피우던 시절이었다. 특히 1980년대는 해외 출국이 쉽지 않았지만, 그는 해외를 마실 다니듯 드나들며 자신감과 세계를 향한 넓은 시야를 갖게 됐다.

“해외 출국이 자유롭지 않던 1980년대 미국 뉴욕을 비롯해 동남아 여러 곳을 다니며 남들은 쉽게 하지 못한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어스름한 새벽, 맨해튼 거리를 홀로 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히 되살아납니다.”

하지만 탄탄대로를 걷던 그의 인생에 거대한 파고가 밀려왔다. 50대에 접어들어 잘 다니던 대우그룹을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지만, 개인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나라가 휘청이던 IMF 외환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 격랑에 휩싸여 그 역시 부도를 맞고 말았다. 자신만만했던 삶은 송두리째 무너져 깊은 절망을 헤매야 했다. 이때 어린 시절 불씨처럼 스쳐 지나갔던 불연이 다시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을 때, 저 역시 깊은 절망 속에 있었습니다. 꿈을 안고 시작한 사업은 부도를 맞았고, 서울에 있던 집을 팔고 의정부까지 밀려나게 됐습니다. 그 무너진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어서게 해 준 것이 불법이었습니다.”

이종태 포교사는 좌절하지 않고 대우그룹에서의 근무 경력을 살려 기업 교육 및 컨설팅을 이어가며 새로운 삶의 방향을 잡아갔다. 그러던 중 생산성 향상을 위한 업무 프로세스 교육을 하면서 문득 기업 문제 해결 방식이 불교의 사성제와 자연스레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 궁금증을 가지고 당시 도봉산 원통사 주지 원종 스님과 ‘기업의 문제 해결 방법과 사성제의 유사성’에 대해 토론하면서 그는 불교 공부의 깊은 세계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공부가 깊어지자 이종태 포교사는 스스로 수행의 길을 열었다. 사업이 휘청이던 시절부터 마음을 다잡기 위해 ‘금강경’과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했는데, 이를 생활 속에 자연스레 녹여 수행의 방편으로 전환한 것이다.

“사업의 실패로 힘들 때, 수행이 큰 힘이 됐습니다. 2003년부터 2년간 ‘신묘장구대다라니’를 10만 번 독송했습니다. 또 1995년부터 30년간 매일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부처님의 가피를 많이 받았습니다. ‘금강경’을 독송하면 부처님께서 저를 지켜보고 계시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감사함이 일어나고, 인생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10번의 금강경 독송은 이제 그의 삶의 일부다. 
매일 10번의 금강경 독송은 이제 그의 삶의 일부다. 

새벽 5시 기도로 하루를 열고 저녁과 밤 기도로 하루를 닫는 일상은 그에게 깊게 훈습된 삶의 리듬이 됐다. 그는 이동 중에도 금강경 독송을 잊지 않는다.

특히 경전을 읽는 재미를 붙인 그는 “대학생 때의 법전 공부보다 불법 공부가 훨씬 재미있다”며 “특히 스님 및 도반들과 나누는 공부와 토론 시간이 삶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금강경’ 공부는 그의 인생 전체를 바꾸어 놓았다.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부처님의 가피로 잘 풀렸고, 삶이 다시 빛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생도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법보신문’과의 남다른 인연도 밝혔다. 특히 법보신문 지면에 실린 여몽 이지연 불자의 인터뷰(2005년 1월 18일자)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지연 불자가 ‘금강경’ 독송 체험을 전한 내용을 보고 직접 연락해 교류했고, 그 인연은 그의 수행에 큰 도움이 됐다.

교리공부와 수행으로 쌓은 신심을 이웃에게 회향하는 일은 그의 큰 보람이다. 포교사 품수를 받은 2003년 이후 그는 군법당과 재가모임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불법을 전하고 있다. 특히 제5포병여단 군법당과의 인연은 20년 넘게 이어져 온 소중한 수행처가 되었다. 그 도량에서 순수한 눈빛을 지닌 청년 군장병들을 만나는 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기쁨이다.

그는 5포병여단 군법당에서의 신행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5포병여단 군법당에서의 신행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 

“학교 후배의 아들이 5포병여단에서 복무하면서 함께 가게 된 것이 인연이 됐습니다. 당시 5포병여단장이 후배의 지인이었는데, 그렇게 맺은 불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법당에서 청년 병사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몸과 마음이 절로 싱그러워지는 느낌입니다. 청년들에게 불법을 전하는 일은 제 삶의 가장 큰 활력입니다.”

그는 재가 신행에도 적극적이다. 고려대불자교우회, 광륜사 신도회, 도선사 신도회에서 회장과 부회장을 역임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고려대불자교우회 상조위원장을 맡은 그는 동문의 부고 소식을 들으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영가를 위로하며 독경하고, 유가족의 슬픔을 가장 먼저 어루만지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고려대 동문들의 조사가 들릴 때 가장 먼저 달려갑니다. 특히 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독경하고 있는데, 지인들로부터 많은 요청이 옵니다. 지인의 가족에게까지 부처님의 가피를 전하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고려대 불자교우회는 월1회 정기모임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고려대 불자교우회는 월1회 정기모임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종태 포교사는 주례 요청도 많이 받는다. 주례를 대하는 그의 진심과 정성을 주변에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례는 한 생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하는 일이다. 그래서 주례 요청이 들어오면 두 달 전부터 도봉산을 오르내리며 대본을 만들고 이를 반복해 연습한다. 말투, 손짓, 어조까지 정성을 다하기 때문에, 식장에 들어선 이들은 감동과 더불어 삶의 지혜까지 얻어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지인의 요청으로 주례를 선 적이 있었는데, 당시 참석했던 예비 신랑·신부가 다시 주례를 요청하는 일이 이어져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현재도 1년에 약 10건 이상의 주례 요청을 받습니다. ‘노력이 천재를 만든다’는 말이 있듯 주례도 철저한 준비와 반복이 필요합니다.”

이종태 포교사의 일상에는 항상 부처님이 있다. 참된 삶의 길을 밝혀준 부처님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은 곧 주변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으로 이어진다. 특히 금강경을 공부하며 이러한 감사의 마음은 더욱 깊어졌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라는 말을 늘 입에 붙이고 삽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항상 함께한다는 생각을 하면 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연스레 그 말이 나옵니다.”

이런 마음은 인생의 도반인 아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아내 또한 “감사하다”는 말을 하루에도 여러 번 되뇌며 지낸다. 그는 “평소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살면 감사한 인연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불평이나 나쁜 마음을 품으면 그런 인연들이 생겨나는 것 또한 삶의 이치”라고 말한다.

이종태 포교사는 오늘도 ‘금강경’을 독송하고 하루 세 번 기도를 통해 부처님의 가피에 감사함을 전한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을 부처님의 품에 초대하겠다는 마음으로, 환한 미소와 따뜻한 말, 자비로운 마음을 품고 세상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 포교사의 서재는 금강경과 관련된 서적으로 가득 찼다. 그는 “나처럼 금강경 서적을 모은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밝혔다.

권정수 기자 kjs0915@beopbo.com
[1801호 / 2025년 11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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