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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타이내 버마 불법노동자들

기자명 법보신문

버마 불법노동자
발길질하는
타이 불교의 ‘자비심’

<사진설명>1990년대 버마민주화를 위해 끝까지 군부에 저항했던 버마학생민주전선의 전사들.

이 세상에 그리 흔치 않은,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강 가운데 하나가 타이-버마 국경을 가르는 모에이강(Moei river)이다. 거의 모든 강들이 바다로 빠져나가며 일생을 마치는 것과 달리, 타이 남부를 출발한 모에이는 티베트를 떠나 중국을 거쳐 내려온 살윈강(Salween river)과 마주치며 버마 국경에서 삶을 마감하는 강이기도 하다. 또 모에이는 동남아시아의 거의 모든 강들이 황토를 흘리는데 비해 드물게 맑은 물을 실어 나르는 강이기도 하고….
말하자면, 이 모에이는 지리를 따져 볼 때 좀 별난 강이라는 뜻이다.

이런 모에이강을 국경 사람들은 또 ‘눈물의 강’이라 불러왔다. 타이와 버마 국경을 가르는 이 모에이강이 버마현대사의 아픔을 담고 눈물로 얼룩져 내린 탓이다. 1948년 버마 독립 때부터 지난한 카렌(Karen) 민족해방투쟁 공간이 된 이 모에이강에서 살길을 찾아 국경을 넘는 수많은 난민들이 눈물을 뿌렸다. 그리고 40년 웃도는 군사독재정권이 시민을 탄압하고 경제를 붕괴시키자 사람들은 또 먹을거리를 찾아 눈물을 훔치며 이 모에이강을 건넜다.

이렇게 ‘국경선’이 된 모에이강은 사람들 동선을 차단하는 물리적인 장벽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마저 갈라놓는 장애물 노릇을 하면서 처절한 눈물을 담고 흘러왔다.

이 국경선, 이 모에이강은 가진 이와 그렇지 못한 이, 힘센 자와 약한 자를 구분하는 ‘차별선’이기도 했다. 목숨을 건지고자, 먹을거리를 구하고자 이 모에이강을 건너온 이들은 타이정부로부터 ‘외계인’ 취급을 받으면서 거친 발길질을 당했다.

“저 모에이만 없었더라도…”

모에이강을 낀 타이 쪽 거점도시 매솟(Mae Sot)의 한 통조림공장에 숨어 지내는 불법노동자 옹투(38세. 파안출신)의 한숨처럼, 국경사람들은 모에이강을 한탄해왔다. 매솟 인구 가운데 50∼60%가 버마계(소수민족포함)라는 사실을 놓고 본다면, 국경선이 돼버린 이 모에이강의 아픔이 크게 다가온다.

현재 타이 매솟을 낀 딱(Tak)주에는 일당 70∼80바트(약2,000원)를 쫓아 온 15만여명 웃도는 버마계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3800바트(약10만원)짜리 취업허가증을 구한 5만여명을 빼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 불법노동자 꼬리표를 단 채 쫓겨다니는 신세들이다.

<사진설명>모에이강을 낀 메솟 지역에서는 버마인 불법노동자들이 타이 경찰에 체포당해 끌려가는 모습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동안 타이 정부는 “버마계 불법노동자들이 타이 실업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범죄나 에이즈 같은 사회문제를 악화시킨다.”고 주장하며 강공책을 써왔다. ‘놀랍게도’ 국제노동자연대를 외치며 자본선진국들에게 노동시장 개방을 요구해 온 타이노동조합마저도 “버마계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뺏어간다”며 정부와 쌍나팔로 저질민족주의를 불어왔다.

그러나 이런 말을 곧이듣는 이들은 별로 없다.

“타이 경제의 근본적인 모순을 버마노동자들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 전통적인 농업중심주의 사회 현실을 무시한 채, 도시산업자본화를 몰아 부친 정부 실정 탓이다. 또 어디에도 버마계 노동자들이 사회문제를 악화시켰다는 증거가 없다.”

지 웅파콘 교수(출라롱콘대 정치학) 같은 이들은 정부와 노동조합 모두를 싸잡아 비난해왔다.

딱주 상공회의소 소장 빠니띠도 “딱주 노동력 ‘80%’를 버마인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들이 일자리를 뺏어간 게 아니라, 모자라는 노동력을 메워왔다”며 버마계 불법노동자 양성화를 촉구했다.

한편, 버마민족해방·민주혁명단체들의 결집체인 버마연방민족회의(NCUB) 중앙위원인 쵸쵸는 “버마계 불법노동자 문제는 국제 인권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사안이다. 군사독재가 장악한 버마의 특수상황을 인정하는 일에서부터 그 접근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정치’에 쫓겨다니던 불법노동자 트에 무이(32세)는 버마에 두고 온 젖먹이 아이 셋을 생각하며 모에이강 기슭 한 농가에 숨어 지내다, 결국 2월11일 토우야사원을 찾아갔다.
“피할 데라고는 절뿐이었고…어쨌든, 여기 스님들이 잘 보살펴주니.”

매솟 한 모퉁이에 103년 묵은 버마(카렌계) 사원인 토우야를 30년 동안 지켜 온 우 마헤인다(59세.사진) 주지스님은 “뭐든 일을 시키면서 숨겨 줘야지 어떻게 하겠어. 절이라 믿고 피신해 온 이들인데”라며 수줍어했다.

자신이 불법노동자로 타이 경찰에 여러번 붙잡히며 비애를 맛본 뒤 스스로 ‘오로라노동자기구’라는 조직을 만들어 불법노동자를 지원해왔고, 또 이번 취재 길잡이를 자원하기도 한 민 마잉(33세)은 그 동안 “토우야사원을 비롯한 매솟 지역 5개 버마사원이 불법노동자들에게 피난처이자 안식처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며 거듭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나는 1999년 버마불법노동자 강제송환을 취재 할 무렵, 타이 경찰에 맞서 수백 명 웃도는 버마계 불법노동자들을 사원 마당에 천막을 치고 보호하는 경우를 본 적도 있다. 당시 매솟 정보과 형사는 “불법이긴 한데, 스님들이 사원에 사람을 감춰 주는 걸 우린들 함부로 할 수가 없으니…”라며 고충을 털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이건 타이와 버마라는 두 불교국가가 사원이라는 ‘성소’를 놓고 벌이는 숨바꼭질인 셈인데, 바라보는 이 입장에서는 ‘알고도 눈감아주는 불교’가 아니라 ‘눈뜨고도 안아주는 불교’로 함께 살아가지 못하는 모습에 큰 안타까움을 느꼈던 대목이다. 무늬만 불교였지, 국적을 앞세운 거북살스런 민족주의 속내를 한껏 드러낸 경우였다.

그렇게 미운 털이 박힌 타이 영내 버마 사원들은 얼마 전부터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타이 북부 람빵(Lampang)주에 자리잡고 있던 9개 버마 사찰 가운데 8개가 이미 타이 승려들 손에 넘어간 탓이다. 하나 남은 버마 사찰마저도 주지스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타이 승려들이 차지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불법노동자들 피난처 노릇을 해왔던 매솟의 토우야사원에도 어김없이 선전포고가 날아들었다.

“두어 달 전부터 난데없이 타이 승려들과 불교도들이 몰려들어 우리 사원을 내 놓으라고 시위를 벌이는 거야. 그럴 수 없다고 버티고 있는 중이긴 한데… 모르겠어. 앞날은….”

우 마헤인다 스님은 남의 땅에 자리잡은 비애를 쏟아냈다.

“타이 승려들이 나서서 하는 짓이니, 어디 호소할 데도 없고… 우린 영문도 몰라.”
우 마헤인다 스님은, 일이 터지자 타이 당국이 나서 모든 사원을 접수해버린 람빵의 버마 사원들 경우를 상기하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불교를 ‘최고선’으로 받들어 온 타이, 불교를 국가의 영혼으로 모셔 온 타이, 그 타이 땅에서 바라보는 불국토는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하루 종일 불경 소리가 온 천지를 진동하고, 온갖 불상들이 천지를 뒤덮은 타이에서 똑같은 불교도들인 버마 불법노동자들은 이 순간에도 불교도경찰에 쫓겨 구석구석을 헤매고 있다. 같은 시간, 똑같은 붓다를 받들어온 버마사원들 둘레에는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누가 불국토를 노래했던가?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 팀장

※버마 시민들은 합법성이 없는 군사독재정권이 국호를 ‘미얀마’로 고쳤다고 주장하고 있어,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다수 국제언론들은 미얀마 대신 ‘버마’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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