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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기어린 직감 [br]찰칵, 한 찰나에 [br]불립문자 세계 포착

기자명 법보신문

사진작가 주 명 덕

<사진설명>사진작가 주명덕씨는 의미부여 이전에 직감으로 대상을 촬영해 작품을 탄생시킨다. 그의 직감에 선기가 어려있다.

주명덕은 불교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사진작가다. 성철큰스님을 찍은 사진뿐만 아니라 사찰과 관련된 수많은 사진을 통해 불교이미지를 사진으로 가장 탁월하게 해석하고 있는 작가로 인식되고 있다. 그는 지나가는 말로 자신은 불교와 깊은 인연을 지니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불교란 특정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보편적으로 내면에 깊게 자리한 미의식과 문화적 기호, 취향과 관련되어 있기에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인이기에 가능한 사진을 찍은 것뿐이라는 얘기다.

간혹 스님들은 그에게 자신들 보다 더 불교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 있기에 그런 사진이 나온 것 아니냐고 반문하곤 했다고 한다. 주명덕의 사진은 ‘불립문자’의 사진이다.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직관적 차원에서 가능한 사진이다. 어느 날 문득 그렇게 보인 눈에 의해 태동된 사진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풍경사진은 가장 한국적인 자연의 모습, 한국인의 자연관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사진으로 기억된다. 겸재 정선 이후로 가장 한국적인 자연을 본 눈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풍경이란 지금의 자기와 눈앞의 세계가 만날 때 태어난다. 이 세상 속에 존재하는 자신과 자신이 대면하는 세계를 ‘나’와 ‘너’의 관계로 규정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세계를 인식하는 ‘나’에 대한 ‘너’로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풍경은 발생한다. 따라서 풍경은 무엇보다도 관계의 미학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풍경이란 대지의 투사 형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하여 인간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이미지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풍경이라는 현상에는 대지라는 물리적 실체와 그것을 시각이미지로 포착하는 사람, 이 양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인연이 되어야 풍경 역시 성립한다. 인연이 없다면 풍경은 없다.

주명덕은 오랫동안 산을 탔고 누구보다도 한국의 산에 대해 잘 아는 이다. 그는 한국의 자연을 통해서 비로소 한국인의 자연관, 미의식 혹은 종교심을 읽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불교적 사유와 겹쳐 나온다.

<사진설명>서울 사간동 ‘캘러리 인’에서 전시되고 있는 ‘풍경’시리즈 작품.
‘한국의 풍경’,‘잃어버린 풍경’, ‘도회의 풍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회는 5월6일까지다.


원래 풍경(風景)이란 뜻은 바람과 세계의 시각 상으로 된 언어다. 배의 돛대와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비행하는 벌레가 바람이고 그것은 비가시적 존재이지만 사물의 몸을 빌려 나타난다. 그러니까 바람은 타자의 몸을 빌려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다. 동양에서 풍경 산수화란 바로 그런 미세한 기운, 호흡, 생명, 모든 만물의 감촉, 섬세한 주름까지도 잡아내고 이를 형상화하려는 지난한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은 유동적이고 없으면서도 있고 있으면서도 없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기생한다. 차별과 차등이 없이 공존의 세계상, 식물과 동물의 구분도 지워지는 그런 경계 없는 장면이자 모두들 공(空)으로 돌아가지만 어김없이 살아 돌아오면서 환생과 순환을 거듭하는 곳이 바로 자연이다. 그가 찍은 산은 무수한 인연과 기생의 관계를 보여주듯이 여러 겹으로 밀려 올라온다.

주명덕의 풍경사진은 영성을 지닌 자연의 모습, 생명체로서의 자연의 호흡을 감지시킨다.

그의 사진은, 사진 가까이로 우리들의 눈과 육체를 끌어당긴다. 대부분의 그의 사진은 너무 어둡고 모호하다. 일반적인 사진들이 곧바로 드러나는 명시성에 기반한다면 이 사진들은 그저 시꺼먼 종이, 인화지에 불과해 보인다. 짙은 어둠, 흑연을 잔뜩 칠한 종이, 그 위에 유연하게 미끄러지는 회색, 흰색에 가까운 선들만이 난무한다. 드로잉으로 착각할 정도다. 신경다발 마냥, 무성한 섬모인냥 얽히고 꽉 찬 수풀, 나무줄기, 꽃, 댓잎, 대파, 잎사귀들이 그제서야 제 몸을 내민다. 무서운 생장력, 무식한 생명력이 섬뜻하다. 무심하게 찍은 이 자연이 어느 순간 귀기어린 분위기로 충만하다. 이 ‘풍경시리즈’를 주명덕은 처음으로 ‘나를 찾은 사진’이라고 말한다. 늘 보면서도 스쳐 지나갔던 풍경과 경치였는데, 이 ‘풍경시리즈’를 통해 비로소 자연의 이치를 이해할 것 같다는 느낌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 자연 풍경을 이렇게 짙은 어둠 속에 가둬놓고 마치 드로잉인양 보여주는 그의 시선은 ‘사진적 시선’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사진은 인간의 눈과 다르다. 사진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여준다. 그것이 사진의 주된 전략이다.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놓고 완벽한 부동과 침묵 속에 절여놓은 대상이 바로 사진이 보여주는, 사진 속에 들어있는 대상이다. 그것은 시간이 죽은, 고요한 풍경이다. 정지된 순간, 바람소리도 없고 미동도 없는 그런 절대 침묵과 명상이 가득 찬 공간이다. 사진은 고요의 아름다움이다. 갑자기 얼어붙은 대상을 느닷없이 접한다는 사실이 당혹함을 야기하듯이 주명덕의 이 풍경사진은 그런 상처와 같은 시선을 보여준다. 그가 찍은 풍경은 일상의 하찮은 것들이다. 그저 덤덤한 소재들을 무심하게 찍고 현상할 때 빛과 인화지 조작만이 약간 가미될 뿐이다. 언어화되거나 무거운 의미부여를 지우고 본인 말대로 그저 “직감으로 찍은”것들이다. 언어화할 수 없는 영역 바깥의 무엇을 쫓고 있다는 얘기다. 흡사 도사나 깨달은 스님의 한 말씀 같지만 새삼 그의 사진을 보면 그 말의 의도를 조금 알아차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의 사진의 짙고 어두운 톤은 말, 설명이 필요 없이 곧바로 보는 이의 눈을 찌르고 가슴에 그대로 들어와 박히는 인증의 힘을 준다. 그것은 설명과 말을 지우고 그것을 넘어 곧바로 다가온다. 그만의 ‘말을 지우는, 말을 지운 자리에서 하는 말’의 방식이 어두운 톤의 사진 속에 들어있다. 어둠 속에 풍경들은 지워져 있다. 지워지려는 것들과 지워지지 않으려는 것 사이의 묘한 기운이 서글프게 아름답다. 스러지려는 것, 소멸하는 것, 그러나 악착같이 살아 숨쉬려는 것들로 혼미한, 들끓는 자연의 법칙 같은 풍경이 컴컴한 사진 속에 스물거린다. 밝은 것 속에 드러난 풍경이 아니라 어둠 속에 들어있는 풍경, 그러나 결코 밤이 아닌 이 풍경들은 그 어둡고 컴컴한 곳에서만 비로소 보여지는 깨달음의 풍경같다. 직관으로 찍은, 그래서 말이 필요 없는 언어화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사진의 힘이라는 얘기를 침묵 아래서 거느리고 있다.

(미술평론·경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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