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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탁신이 왕실과 불교에 충성하는 이유

기자명 법보신문

“정치와 불교만 없으면 타이는 낙원?”

泰 정계 ‘세계적 위사카 부차’ 준비 분주
정작 불교계는 ‘집안싸움’으로 봉축 뒷전


“정부 관료나 정치가들 가운데 뇌물 받은 이가 절대 없다. 만약 미국 측 회사가 증거를 대지 못한다면 모든 계약을 파기할 것이다. 타이의 명예가 돈이나 시간보다 더 중요하다.”

“모두들 임금님께 바칠 진실을 맹세하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두 문장은 탁신 시나왓(Thanksin Shinawatra)총리가 어제오늘 사이에 내뱉은 말로, 요즘 타이사회를 주름잡는 ‘화두’이기도 하다. 앞에 것은 9월 개장 목표인 방콕 수와르나부미공항에 설치할 폭발물 탐지기 거래를 놓고 미국 정부가 자국회사 인 비전(GE In Vision)과 타이 정부 사이의 뇌물거래 혐의를 폭로하면서부터 비롯되었는데, 부정부패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타이에서 총리란 자가 민족주의를 앞세워 ‘순결’을 강조한 말이다.

탁신 총리의 ‘순결’ 선언

총리가 뭐라 든, 이미 ‘비린내’는 났고 시민들은 시큰둥한 표정이다. 뒤에 것은 5월22일로 다가온 타이 최대 불교 축일인 ‘위사카 부차’(Visakha Bucha)에 맞춰 탁신총리가 ‘1인 1진실 맹세운동’이라는 희한한 구호를 내걸고 임금에게 ‘진실맹세’를 하라며 시민들을 윽박지르는 말이다. 총리가 뭐라 든, 이미 ‘때깔’은 드러났고 시민들은 어이없는 표정이다.

정신나간 정치가 시민에게 ‘도덕까지’ 가르치겠다는 이 모든 일들은 8달짜리 음력에서 6월 보름(올해 서양력으로는 5월22일)에 해당하는 ‘위사카 부차’ 언저리에서 벌어지고 있다. 2548년 전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도 또 첫 깨달음을 얻은 날도 그리고 정확히 80년 뒤 돌아가신 날도 모두 음력 6월 보름이라 하여, 타이에서는 이 날을 위사카 부차라 부르며 최대 축일로 여겨왔다. 올해는 탁신총리가 나서 아예 이 날을 ‘세계 위사카 부차’로 선포하고 대형 국제행사를 준비해 왔다.
그런데 문제는 주객이 뒤집힌 데 있다. 주인이어야 할 불교는 뒷전이고 객인 정치가 휘젓고 다니는 꼴이니 말이다. 게다가 탁신총리가 위사카 부차를 앞두고 임금을 내세우는 일도 흘겨 넘겨버릴 수 없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왜 탁신총리는 불교와 왕실에 대한 충성을 이토록 강조하는가?’라는 의문이 들 법도 하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역사를 잠깐 살펴보자.

알려진 대로, 타이에서 불교와 왕실은 국가를 구성해 온 두 축이었다. 이 둘은 ‘불교가 왕실을 인정하는 대신 왕실은 불교를 국교로 보호한다’는 교조주의적 공생관계를 지녀왔다. 그렇게 처음부터 권력과 친교하면서 민중불교로 성장할 수 없었던 타이불교는 매우 정치적인 자신들의 정체를 숨긴 채, “불교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이중성을 설파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불교 전통 속에서 1932년 입헌군주제 이후 지금까지 스무 번도 넘는 크고 작은 군사쿠데타로 얼룩져 온 타이 현대사는 지난 2000년 선거를 통해 탁신 시나왓이라는 제왕적 권력을 지닌 총리를 낳았다.

국민에게 ‘진실 맹세’ 요구

타이 최대갑부인 그이는 총리로서 정치마저 장악한 뒤, 사관학교 동기들을 경찰과 군 요직에 박아 무력까지 휘어잡았다. 이어 언론을 장악해 비판세력을 잠재웠다.

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힘을 따진다면, 더 이상 뭐가 있을까?

이쯤 되면, 눈치 빠른 독자들은 왜 탁신총리가 위사카 부차와 임금을 묶어 정열을 불태우는지 고개를 꺼덕일 법도 하다. 자, 불교와 임금에 대한 충성심 강요가 ‘석가모니-임금-총리’로 이어지는 신성계보 창조에 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분명한 건, 타이 사회에서 탁신총리에게 대놓고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하여 탁신총리 얼굴을 붉게 만들 수 있는 인물은 둘 뿐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는 저승에 계신 부처님이고 하나는 이승에 계신 임금님이다.

아무튼, 올해 위사카 부차는 이렇게 정치에 휘둘리며 혼란과 의문 속에 다가오고 있다. 근데, 그 불교축일 행사를 정부 손에 빼앗겨버린 불교는 또 집안싸움으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보수불교와 산티아속 싸움 한창

보수불교를 주도해 온 상가위원회(Sangha Council)가 산띠 아속(Santi Asoke)이라는 교파를 위사카 부차 행사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부터 일이 틀어졌다. 이 산티 아속은 1970년대 초 보디락사(Bhodhiraksa)라는 승려가 기존 종단의 부패와 보수성을 거부하면서 금욕주의와 채식주의를 내걸고 설립했으나, 상가위원회는 1989년 이들을 이단으로 낙인찍어버렸다.

한편, 산티 아속은 설립자 보디락사가 “타이불교가 유일한 불교며, 산티 아속이 타이 불교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극단적인 논리를 펴며 개인 우상화를 추구해 비난을 받아 온 것도 사실이지만, 보수종단에 실망한 많은 이들이 산티 아속을 따르고 있는 것도 또한 현실이다.


시민들 한숨만 높아져

문제가 복잡하게 꼬인 배경에는 탁신총리가 이번 위사카 부차 행사에서 핵심부서 격인 이른바 ‘도덕장려센터’ 책임자로 그 동안 산티 아속을 지원해 왔던 참롱 전 방콕시장을 임명하면서부터다. 육군소장 출신으로 풀만 먹는 참롱은 탁신총리를 정치판에 끌어들인 장본인으로서 탁신총리에게는 선도자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참롱은 “행사에 참여하는 승려를 감옥에 집어넣을 수는 없다. 승려는 불교 자체다”며 산티 아속 참여를 지원했고, 탁신총리는 “모든 종파가 화합하고 함께 참여하는 축제로 만들자”며 그이들 뒤를 받쳤지만, 아무튼 상가위원회 결정으로 일이 여의찮게 되고 말았다.

결국, 탁신총리가 공들여 온 그 세계적이고 국제적인 위사카 부차는 집안다툼으로 개봉도 하기 전에 이미 속살을 드러내고 만 셈이다.

하여, 실망한 시민들 입에서는 “정치와 불교만 아니면 타이는 낙원”이라는 자조적인 소리들이 흘러나오고도 있다.

이러니, ‘부처님 오신 날’, 단 하루만이라도 온 세상이 평화롭고 모두에게 즐거운 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은 올해도 영 신통찮아 보인다. 이 지상최대 불교국이라는 타이에서부터, 석가모니를 쫓는 후배들 마음속에 잿밥만 어른거리니.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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