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성지 오대산을 가다]① 오대산 가는 길
[문수성지 오대산을 가다]① 오대산 가는 길
  • 법보신문
  • 승인 2005.07.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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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오대’ 보는 순간 지혜를 얻으리라!

<사진설명>동대에서 바라본 오대산 전경. 봉우리 정상이 평평하고 수목이 없어 마치 흙으로 된 평원 같다.

신발이 다 닳고/ 발바닥이 피흘려도 올라갈 수 없어라.// 정강이로 오르고/무릎으로 오르고/가슴과 턱/ 이마로 올라가도 다다를 수 없어라.//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늘의 하늘 끝/ 마음으로 닿을 수 있는/ 마음의 마음 끝/ 어떻게도 이대로는/ 바라다볼 수 없는,// 그 음성 아득하게/ 내리시올 자비/ 커다랗게 허릴 굽혀/ 안아 올려 주실/ 그 정상 이마직서 홀로 울어라. -박두진 ‘지성산(至聖山)’

산은 마음의 고향이다. 산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에 마치 어미 품처럼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그뿐인가, 산은 인생에 비유되기도 한다. 평탄한 길이 있는가 하면 금새 험준한 절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런 까닭에 예부터 구도자들은 산을 수행처로 삼았고 그 속에서 위없는 깨달음을 찾았다.

지난 7월 4일부터 9일까지 문수성지 중국 오대산(五台山)을 순례했다. 문수신앙의 맥을 잇는 성지,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오는 중국불교의 중심지였던 오대산의 기운과 정취를 느끼기 위해서였다.

중국 산서성 오대현 동북부에 위치한 오대산은 사방 500리에 걸쳐 뻗어있는 거대한 산이다. 해발 3000m에 달하는 취암봉, 망해봉, 금수봉, 계월봉, 엽두봉 등 다섯 개의 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다고 해 이름도 ‘오대산’이 되었다. 이 다섯 봉우리 정상은 평평하고 수목이 없어 마치 형상이 흙으로 된 평원 같아 ‘오대(五台)’라 불렸다.

오대산이 불교성지로 자리 잡은 것은 5세기 경. 원래 오대산은 신선도(神仙道) 신도들의 신앙 중심지였지만 이후 『화엄경』에 나오는 문수보살이 거주했던 청량산이 바로 오대산이라 믿어진 후 서서히 불교성지로 바뀌었다. 당나라 때인 6∼7세기에는 360여개의 사찰이 창건될 정도로 오대산은 불교신앙이 성행했지만 현재는 대회진을 중심으로 50여개의 사찰만 남아있다.

오대산은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의 설법지는 물론이고 화엄 신앙의 원류가 되는 곳으로 일찍이 중국 당송 때부터 청량 징관 스님을 비롯해 인도, 몽골, 티베트 등 각국의 수많은 수행자들이 찾았던 명산이다. 특히 오대산은 신라 고승 자장이 문수보살을 친견했던 곳으로 한국불교의 원류가 되는 곳이다. 목숨을 건 구법여행을 떠났던 자장은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 후 가사와 부처님 사리를 받고 돌아와 통도사와 평창 오대산 상원사에 봉안해 이후 우리나라 사리신앙의 기원을 만들기도 했다.

순례를 위해 오대산으로 향한 것은 중국 산서성의 수도인 태원시에서 1박을 하고 난 다음날이었다. 전날 문수성지를 순례한다는 설렘에 잠을 설친 탓인지 타향에서의 하룻밤은 그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대산을 향해 첫 시동을 걸었다.

“여러분 아침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감사합니다.” 북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중국 교포 허홍발 씨가 여행일정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오랫동안 타향에서 생활한지라 그의 발음은 어색했다. 그렇지만 동포를 만났다는 생각에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겹기 그지없다.

태원에서 오대산까지는 250km. 차로 달려 5시간은 족히 넘는 거리이다.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보다 더 긴 거리가 같은 자치구역에 속한다니 중국 대륙의 광활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진설명>푸른 초원이 펼쳐진 오대산 정상에서 마을 주민들이 말과 양을 방목하고 있다.

허 씨는 오대산은 미타성지 아미산(峨嵋山), 관음성지 보타산(普陀山), 지장성지 구화산(九華山)과 함께 오랫동안 중국 4대 불교성지로 불렸다고 소개했다. 그중 무엇보다 오대산은 수많은 전설이 연관돼 있어 전설의 산이라는 별명까지 있다고 했다.

그가 첫 번째로 전해준 이야기는 오대산에 처음으로 건립된 현봉사에 관한 전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900여 년 전. 하루는 한나라 명제가 꿈을 꿨다. 꿈속에 금빛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더니 동남쪽에 불교가 흥하니 그곳에 사람을 보내 불교를 배워 통치이념으로 삼으면 대대로 흥할 것이라고 일렀다. 꿈에서 깨어난 명제는 서둘러 사신을 그곳에 파견해 불경을 구해오라고 하니 사신은 천축국에서 섭마등 스님과 축법란 스님과 함께 돌아왔다. 이들은 우선 낙양에 백마사를 짓고 불교를 홍포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우연히 오대산을 찾은 두 고승은 오대산의 경치가 마치 부처님이 제자들을 모아 놓고 설법했던 영취산과 흡사한지라 명제에게 일러 이곳에 사찰을 짓게 했다. 이 때 지은 사찰이 오대산 첫 개산지인 현봉사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듣던 옛날이야기가 새록새록 다시 떠오르는 느낌이다.

허 씨의 설명이 무르익을 무렵, 우리 일행을 실은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영문을 몰라 창밖을 두리번거리자 허 씨는 “석탄 트럭이 넘어졌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렇지 않아도 오대산을 향하는 내내 석탄을 실은 거대한 트럭이 끊이질 않고 지나가고 있었다는 느낌이 있었다.

<사진설명>오대산 가는 길은 석탄을 실은 대형 트럭으로 붐빈다.

산서성은 ‘석탄의 도시’라고 할 만큼 중국에서 가장 많은 석탄을 생산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석탄이 중국 산업화의 원동력이 된다. 도로가 좁고 교통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 운전습관으로 한번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로 이어져 여행 목적지까지 2∼3일은 족히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러다 문수성지에 발 한번 딛지도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피였을까. 우리를 태운 버스는 용케 막힌 도로를 빠져나와 시원스럽게 오대산을 향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허 씨의 설명을 뒤로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옛날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오대산 구법여행은 오직 자신의 두 발에 모든 걸 맡겼으리라. 수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으며 구도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목숨을 건 긴 여정은 누굴 위한 것일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들이 험난한 여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신심(信心)때문이었을 것이다. 깨달음을 구하고 중생을 교화하겠다는 굳은 신심에서 발원된 서원이 없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드디어 차창 밖으로 오대산 전경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녹색의 푸름과 새파란 하늘이 한 폭의 수채화다. 책에서 보던, 말로만 듣던 문수성지 오대산에 드디어 첫발을 내딛었다.

글·사진=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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