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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국사 『수심결』 ⑩

기자명 법보신문

선정-지혜는 이름은 둘이나 몸은 하나

선정은 본체이며 지혜는 작용이다. 본체의 작용이기 때문에 지혜는 선정을 떠나지 않고 선정이 곧 지혜이므로 고요하면서 항상 알고 지혜가 곧 선정이므로 알면서 항상 고요하다. 육조 스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어지럽지 않음이 자성의 선정이고 마음이 어리석지 않음이 자성의 지혜라고 하신 것과 같다.

이제 먼 바다에서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도착하는 배들은 저마다 마음의 등불을 치켜들고 항구는 어느덧 불야성을 이루었다. 법회를 마치고 서둘러 먼 길을 출발했으나 항구에 도착하니 섬으로 가는 마지막 배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오랜만에 굳은 비 내리는 늦은 뱃길에 오르니 선상에서 바라보는 밤바다는 멀리 이국의 정취를 대하는 듯 본분 납자의 살림살이를 더 없이 조촐하게 하고 있다.
수행의 길이 수없이 많으나 결국에는 선정과 지혜를 벗어날 수 없는데 정과 혜는 마치 등불과 빛 같아서 등불이 있으면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빛이 없는 것과 같다. 등불은 빛의 몸이며 빛은 등불의 작용이니 비록 이름은 둘이나 몸은 본래 하나라고 육조단경에서는 설하고 있다.

허공의 성품은 본래 공하여 뒤섞이거나 무너지지 않으며 밝음이 오거나 어둠이 오더라도 물들지 않고 천둥벼락이 치더라도 상처하나 입지 않으며 새가 날아도 발자국이 찍히지 않는다. 하지만 허공은 감정이 없는 메마른 무정물이기 때문에 신령스럽게 아는 성질이 없다. 허공계가 아무리 끝이 없다고 하더라도 결국 한 마음에서 나온 허공이기에 마음을 벗어나지 못한다.

본래청정한 마음은 허공과도 같지만 영지가 있어서 일체를 분별할 줄 안다. 그래서 공적영지라고 말한다. 수행이란 공적영지한 마음을 바로 드러내는 것인데 이것을 ‘정혜쌍수 성성적적’이라고도 한다. 간화선에서는 화두가 바로 성성적적이다. 그래서 간화선에서는 화두를 제시하여 보게 함으로써 바로 성성적적한 마음에 계합하게 한다. 그렇지만 화두를 알음알이로 헤아리면 사구가 되어 성성하기는 하지만 산란하여 적적하지 못하고 화두가 없는 고요한 무기에 떨어지면 적적하기는 하지만 성성하지 못하여 본래 성성적적한 마음에 계합하지 못하므로 올바른 수행이 아니다. 그래서 오직 활구참선인 성성적적이라야만 마음을 덮고 있는 일체장애를 걷어내고 태양과 같은 광명이 드러난다. 한 생각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곧 생사이니 이러한 생사의 때를 당하여 생각생각 놓치지 말고 알아차려서 한바탕 맹렬하게 화두를 챙겨야 한다. 화두가 순일해지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사심이 곧 사라지는데 그 자리를 고요함이라고 한다. 화두가 없으면 그것을 묵이라고 하고 고요함 가운데 화두가 어둡지 않으면 그것을 신령함이라 한다. 즉 이와 같은 텅 비고 고요하며 신령스럽게 아는 것은 무너지지도 않고 잡된 것도 아니니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면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화두는 이와 같이 성성적적한 본마음을 바로 드러내 보이지만 사량으로 짓거나 번뇌를 끊어버리는 도구로 삼는다면 공부와는 멀어지게 된다. 태고선사께서도 오매일여의 지극한 경계에서도 오직 화두 하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은 공부가 극도로 미세하게 들어가면 자칫 속아서 화두를 놓치게 되는데 화두를 끝까지 밀어부처야 화두낙처를 확인하게 되어 일을 마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승묘경계인 이곳에서 아까운 세월을 낭비하게 되는데 성성적적인 화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비 내리는 항구에 어둠은 점점 깊어 가는데 가로등 불빛 더욱 외로워 객선에 얼굴을 부비고 있다.

그저 앞마당에 누워
흐르는 구름
너럭바위

거금선원장 일선 스님 www.gukumz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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