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성지 오대산을 가다]⑤ 수상사(殊像寺)·중대(中臺)
[문수성지 오대산을 가다]⑤ 수상사(殊像寺)·중대(中臺)
  • 법보신문
  • 승인 2005.08.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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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 하나 하나에 수행자의 구법 열정 오롯이 남아

<사진설명>중대 정상에 서 있는 사리탑을 중심으로 빼곡히 서 있는 돌탑들.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수행자들이 남긴 구법의 열정과 피와 땀의 흔적들이다.

8만평이 넘는 대가람인 탑원사와 현통사의 경내 참배를 마치자, 시나브로 시간은 흘러 기세를 잃은 태양이 서대(西臺) 끝에서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다. 반나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그러나 숨 고를 틈도 없이 대라정, 현통사, 탑원사 등 3곳의 대가람을 잇따라 참배한 일행의 몸은 천근만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더위와 강행군에 지친 일행들 속에서 숙소로 돌아가 땀이라도 씻어내자는 웅성거림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오대산 길잡이 허홍발 씨는 야속하게도 이런 분위기를 애써 무시하며 다음 목적지인 수상사로 묵묵히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심상치 않은 일행의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그는 일행을 향해 회심을 일격을 날린다.

“여러분 부처님은 성도(成道)후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 25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 가셨다고 합니다. 부처님을 닮고자하는 원력을 품고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이 이 정도 가지고 힘들어해서야 어찌 부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웅성거림이 점차 세력을 더해 볼멘 소리로 전이되려는 순간 그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동시에 입을 닫았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서 불만이 있다한들 어찌 입을 열 수 있겠는가. 더구나 길에서 길로 포교에 나셨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위대한 삶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오대산을 향해 몸을 내 던졌을 이름 없는 구법승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일행의 여정은 사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잠시 나태해진 마음을 가다듬은 일행은 초심(初心)의 마음으로 오대산에서 가장 큰 문수보살이 봉안돼 있다는 수상사로 힘차게 발길을 옮겼다.

사실 수상사는 오대산에 있는 여느 사찰과 달리 천왕전, 문수전, 종루 등 5∼6개의 작은 전각들로 구성된 비교적 조촐한 가람이다. 우리로 치자면 산 속의 조그만 암자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그러나 수상사는 오대산 순례 여정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이는 바로 9m가 넘는 거대한 규모의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중국인들은 수상사를 중국을 대표하는 문수 성지로 추앙하고 있다. 절 이름인 수상사도 문수보살상(文殊菩薩像)의 ‘수’와 ‘상’을 따 수상사로 불리게 됐다고 하니, 문수보살과의 뗄 수 없는 인연이 조금은 짐작이 간다.

<사진설명>높이 9m의 수상사 문수보살상.

내려오는 문헌에 따르면 수상사에 문수보살상이 조성된 것은 지금으로 1200여 년 전인 당나라 때라고 한다. 불교를 적극적으로 장려했던 당 황실은 당시 중국 대륙 곳곳에 거대한 사찰을 건립했고 오대산에도 황실 주도로 수많은 절들을 세웠다고 한다. 특히 당 황실은 오대산에 세상에서 가장 큰 문수보살상을 조성하려고 시도했는데, 이는 백성들의 신심을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황실의 뜻에 따라 진행된 불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탑원사 바로 밑에 대형 문수보살상을 조성한 수상사가 건립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하던 불사는 보살의 상호 조성을 앞두고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청사자(靑獅子)를 타고 있는 문수보살상을 조성하기까지는 순조로웠지만, 그 누구도 보살의 상호를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얼굴이 문수보살의 상호일까?’ 불사의 총 책임을 맡았던 수상사 주지 스님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상사에 신이한 일이 일어난다. 공양주 보살이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메밀가루를 반죽하던 중 하늘에서 난데없이 문수보살이 나타나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한번도 문수보살을 본 적이 없던 공양주 보살은 다급한 마음에 허겁지겁 메밀반죽으로 보살상을 빚었고 이를 주지 스님께 올렸다. 스님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풀리지 않던 숙제를 일시에 해결한 주지 스님은 공양주가 빚은 메밀가루 반죽을 기초로 흙과 나무를 이용해 보살의 상호를 만들었다. 그러나 어찌된 연유인지 흙과 나무로 만든 문수보살 상호는 몸체 위에 올리면 얼마 되지 않아 땅으로 떨어져 파손돼 버렸다. 몇 번을 거듭했지만 역시 보살의 상호는 온전히 몸 위에 올려지지 않았다. 급기야 황제와 약속한 날은 시나브로 다가왔다. 깊은 번민에 쌓인 스님은 할 수 없이 처음 공양주 보살이 메밀 반죽으로 빚은 보살 상호를 그대로 몸체 위에 올리게 했다. 그러자 문수보살의 상호가 떨어지지 않고 온전하게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수상사 문수보살은 메밀 반죽으로 빚은 상호를 그대로 간직한 채 완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 120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문수보살상의 두상에 메밀가루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순례객들이 피워놓은 매캐한 향 연기 뚫고 문수전으로 향했다. 거대한 문수보살이 가로막 듯 시야에 들어왔다. 9m가 넘는 거대한 몸체로 인해 문수보살을 바로 쳐다보기란 쉽지 않았다. 고개를 한껏 젖히자 메밀반죽으로 빚었다는 문수보살이 자비로운 눈길로 순례객을 맞이했다. 손끝 하나 발끝 하나에도 마치 생명의 온기가 들어있는 듯한 모습이 조각품이 아니라 중생들과 함께 살아 숨쉬는 문수보살의 진신인 양 사실적이다. 일행은 짐을 부리고 그 자리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삼배를 올렸다. 가슴속에서 밀려오는 싸한 느낌. 순간 문수보살 회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안온하고, 편안한, 그러면서 감동적인 기운이 온 몸을 감싸 안는다.

<사진설명>태화지에서 바라본 중대 정상. 초록의 평원과 파란 하늘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수상사를 끝으로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한 일행은 숙소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한 후 이튿날 아침 서둘러 중대로 향했다. 중대는 오대산에서 북대 다음으로 높은 곳(해발 2936m)인데다 산새가 험해 서둘러 길을 나서지 않으면 하루 안에 일정을 소화하기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길이 좁고 험한 탓에 봉고를 개조한 미니 버스를 이용, 길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대형 사고의 위험이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여유는 이번 여정에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곱게 포장된 도로에서의 안락함도 잠시, 숙소에서 출발하지 10여분만에 비포장 도로가 일행을 맞이한다. 본격적인 중대로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손잡이를 꽉 붙들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몸은 이미 널뛰듯이 날뛰기 시작한다. 서로 어깨에 부딪치는 수준을 넘어 머리가 버스 천장까지 뛰어올라 기어코 커다란 혹을 만들고 만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 차례 이 길을 오르내렸을 중국인 운전수는 일행들의 고통에 찬 호소에도 불구하고 즐기듯 더욱 속도를 높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고통에 익숙해질 무렵, 이제는 뱃속에서 적색신호를 보낸다. 본격적인 멀미가 시작된 것이다. 이를 앙 다물고 참고 있자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옥이 따로 없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지경에 내 몰릴 즈음, 버스는 드디어 중대 정상에 도착했고, 요동을 치던 버스도 잠잠해졌다. 메스꺼움에 답답한 속을 부여잡고 버스에서 내리자 넓게 트윈 초록의 평원이 파란 하늘과 함께 넓게 펼쳐져 있다.

시원스런 바람을 맞으며, 고요히 대 자연의 신비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잔뜩 꼬였던 뱃속도 화를 풀고 조금씩 잠잠해져 간다.

중대는 풀과 나무와 바람이 만들어 내는 안온한 기운으로 편안했다. 마치 부처님의 품안과 같다고나 할까. 정상에서 느긋하게 망중한을 즐기며 걷노라니,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거대한 탑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고 이윽고 탑이 완전히 노출되자 헤아릴 수 없는 돌탑들이 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조약돌에서 대규모 돌탑까지 탑의 크기와 모양은 가지각색이었다. 이들 돌탑은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수행자들이 남긴 구법의 열정과 피와 땀의 흔적들이다. 순간 1400여 년 전 불법을 구하자고 목숨을 건 구법 여행 끝에 오대산에 도착했을 자장 스님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다. 스님도 깨달음과 중생 구제를 염원하며 이곳에 돌탑 하나를 쌓았을 터. 돌탑을 만지는 손끝에 스님의 원력이 묻어나는 듯 정겹기만 하다.

글·사진=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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