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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버마 민족해방운동의 스님들

기자명 법보신문

승복 벗고 총을 든 스님들, 그 후 17년

17년전 피흘린 산천,
사람은 간 곳 없으나
총칼 들이댄 자들은
여전히 칼자루를 쥔 채
권좌를 지키고,
매년 8월
버마 하늘에는
붓다 후배들의 영혼이
터트리는 울음소리가
천지를 뒤흔드네.


<사진설명>구속된 스님들 리스트. 1988년 민중 봉기 당시 1000명 이상의 버마 스님들이 군사독재자에 의해 구속됐다.

어언 17년 세월이 흘러버렸다. 불타던 의지도 터질 듯한 가슴도 모두 어디로 가버렸는지, 속절없는 회오리바람만 몰려다니고 있다. 버마민주항쟁 17주년을 맞는 8월은, 또 이렇게 지난 16주년과 15주년과… 다를 바 없이 권태로운 하루로 흘러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지난 17년 동안 수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와 ‘민족해방’을 외치며 전선에서 사라져갔지만, 동시에 국경혁명지대는 패배주의 아래 허물어져 내렸다. 혁명에 청춘을 바쳤던 전사들은 전망 없는 나날을 견뎌내지 못한 채, 이런저런 사연으로 하나둘씩 국경을 떠났다. 혁명을 타박하며 살길을 찾아 떠난 이들, 부모 형제 그리움 탓에 고향으로 돌아간 이들, 버마의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유학길에 오른 이들….

그 사이, 남겨진 국경도 변해갔다. 17년 전 오늘, 민주혁명을 외치며 눈물로 국경을 밟았던 그 꽃다운 소녀들은 어느 듯 혁명2세를 키우는 어머니로 변했고, 젖비린내 풍기던 소년들은 이제 어엿한 앞잡이 전사로 변해 있다.

지난 17년 동안 오직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시민을 학살한 유혈군인정권 뿐이다. 1988년 8월 8일 군사독재반대와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민을 총칼로 진압한 자들, 그리고 더욱 강고한 무장독재체제를 굳혀온 바로 그 군인독재자들 뿐이다.

우리는 오늘, 버마 민족해방·민주혁명사를 다시 열어보면서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이름들을 떠올려 본다. 붓다의 후배들이 바로 그이들이다. 대중을 학살하는 군인들을 보며 거리로 뛰쳐나갔던 이들, 멈출 수 없는 그 학살 앞에서 무기력한 불교를 원망했던 이들, 승복을 걸치고는 총을 들 수 없어 밤새 고민했던 이들, 결국 눈물 젖은 승복을 벗어 던지고 전사로 변신했던 이들을 버마현대사는 기억하고 있다.

88년 11명 사망 1000명 투옥

이른바 ‘8888’ 그날, 지상 최대 불교대국 버마는 총칼 앞에 쓰러졌다. 대중의 뜻을 받든 승려들은 사찰을 뛰쳐나와 민주주의를 외쳤고, 불교도인 군인들은 그 승려들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그로부터 버마 승려들은 11명의 순교자를 내고 1000여명이 넘는 이들이 체포·투옥당하면서 오늘날까지 지난한 투쟁을 벌여오고 있다.

하여 지난 17년 동안, 학살군사정권은 버마 사회의 가장 중요한 축인 승려 30여만명이 지닌 영향력을 차단하고자 ‘채찍’과 ‘당근’을 섞어가며 온갖 작태를 부려왔다.

군인독재자들은 국민 대다수가 절대빈곤에 허덕이고 국가경제가 파탄난 상태에서
도 쉐다곤파고다 복구와 같은 대형불사에 막대한 돈을 투입했는가 하면, 정치성 없는 노승들을 최고급 승용차로 꼬드겨 ‘군인불교용’ 간판으로 써먹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대놓고 사찰을 파괴했고, 또 사찰 안에 가짜 중들을 투입해 승려들을 감시하고 체포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바로 그 군인들이, 어용 최고승려위원회 승려들에게 헌화하는 군부 실권자 모습을 비춘 다음, 곧 이어 술 마시고 간음한 땡중 소식을 내보내는 버마식 ‘승려파괴용’ 텔레비전 뉴스를 살포해 온 장본인들이었다.

<사진설명>수많은 스님들이 1988년 8월 8일 버마 방방곡곡에서 민중들의 봉기에 가담했다. 그들은 눈물 젖은 승복을 벗어 던지고 전사로 변신했다.

이처럼 군인독재자들로부터 탄압받으면서 결국, 승려들은 지하에서 정치투쟁조직을 일궈냈다. 랭군과 남부지역을 축으로 삼은 청년승려연합(YMU)과 만달레이와 중부지역을 낀 승가연합(Sangha Samagi)을 비롯해 7개 승려단체가 민주화투쟁을 선도해 왔고, 또 망명 승려 3백여명이 조직한 버마청년승려연합(ABYMU)은 버마 내부 승려 100여명을 비선으로 묶어 연대투쟁을 벌여왔다. 이 승려조직들이 학생·노동자들과 함께 민주화투쟁을 주도했고, 아웅산 수지의 민족민주동맹(NLD)이 압승을 거둔 1990년 총선 결과를 뒤엎은 군사정부에 종교거부운동으로 맞섰다. 1997년 경제위기에 빠진 군사정부가 불상에서 루비를 뽑아간 사건을 놓고 8천여 승려들이 운집했던 ‘만달레이 마하 미야트무니 봉기’도, 그리고 군사정부가 대화에 나서도록 압박했던 이른바 ‘9999운동’도 모두 이 승려단체들이 이끌었던 투쟁이다.

특히, 민족해방세력과 망명 민주혁명 세력들의 결집체인 버마연방민족회의(NCUB) 일원이기도 한 버마청년승려연합은 ‘비폭력’을 무기로 삼아 대 영국 반식민지투쟁을 이끌었던 선배 승려들의 전통을 계승해 오늘날 반독재 무장통일전선인 버마민주동맹(DAB)에도 ‘비군사’를 전제로 참여하고 있다.

이후 당근-채찍으로 회유책

이렇듯, 버마 불교는 경전과 사찰에만 머물지 않았다. 현실사회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승려들은 각각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따라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그 승려들에게 불교는 한계로 여겨지고 말았다.
‘생명을 죽이지 말라.’

어떤 경우에도 거부할 수 없는 불교의 이 본질적인 명제 앞에서 수많은 승려들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결국, 그 승려들은 눈물 젖은 승복을 벗고 대신 총을 들고 전선을 택했다. 버마청년승려연합에서만도 60여명에 이르는 승려들이 승복을 벗고 반독재 무장투쟁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승으로 갔고 또 어떤 이들은 중상을 입은 채 중생으로 되돌아 나왔다.

“승복 벗느냐, 망명을 택하느냐”

<사진설명>버마청년승려연합(ABYMU) 의장 아쉰 케이마살라 스님.

오래전부터, 국경 혁명지역에서 만나왔던 버마청년승려연합 의장 아쉰 케이마살라(Ashin Khaimasala)스님은 몇 해 전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교리와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이 주는 한계를 느꼈지. 처음엔 승복 입은 ‘승군’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총 든 이들이나 승복 입은 이들이나 모두 붓다일 수도 있고, 모두 아닐 수도 있는데…”

아쉰 캐이마살라스님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옛 동료들에 대한 사무치는 아쉬움을 이런 말로 대신했다.

“중생들 뜻을 따르는 게 승려들 전통이야. 중생들이 필요로 한다면 길바닥으로 뛰어나가 시위도 하고, 산악에 올라 총을 들기도 하는 게 승려들이야. 승복이 다 무슨 소용이야. 그런 건 입어도 되고 벗어도 되는 치장일 뿐.”

그렇게 해서 타웅 한(Thanung Han. 전직 승려. 현 버마학생민주전선 전사)같은 승려들이 절문을 박차고 나와 용맹스런 민주혁명전사로 변신했다. 그 부처의 후배들은 전선에서 사라져 갔고, 타웅 한 같이 얼굴에 총알을 맞아 혀와 이빨을 잃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버마 현대사는 그렇게 수많은 붓다의 후배들을 속세로 내몰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타웅 한’들은 승복을 버리고 총을 든 채, 대중들 뜻을 따라 전선을 갔다.
하여 사람들은, 국경 민족해방·민주혁명전선이 움츠러든 2005년 8월, 여전히 중생을 향한 붓다의 꿈만은 사라져 버리지 않기를 애타게 기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8월은 다시 한번, 버마현대사가 명령한 민족해방·민주혁명을 위해 삶을 바쳤던 승려들을 고귀한 역사로 기억하고 있다.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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