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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사회병리현상으로서 자살 : 죽음에 대한 무지

기자명 법보신문

죽음외면은 우리사회 병리현상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은 박씨가 늘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한숨을 푸욱 쉬면서 말했다. “아무런 희망이 없다. 죽음은 곧 절망을 뜻하지 않는가. 정말이지 죽고 싶지 않다. 죽으면 모든 게 정지하고 끝나는 것인데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로부터 며칠 지나서 그는 죽었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삶의 시간만 연장하려고만 한다.

결국 두 눈을 부릎 뜬 채 공포와 두려움으로 얼룩진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가족에게 안타까움만 남길 뿐이다. 사람들은 현재의 삶을 전부로 여길 만큼 영혼이 메말라 있다. 삶 이후의 삶에 대한 어떤 실제적인 지식이나 근거 있는 신념도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극적인 의미를 상실한 채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죽은 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런 희망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지 않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이 보여주는 또 다른 반응은 두려움이다. 60대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친구인 의사가 잔여수명이 3개월 정도라고 말해 주었다. 잠시 후 환자의 상태가 이상해지더니 온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는 죽으면 꼼짝없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지옥의 공포가 몰려와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환자는 침대에 똑바로 누워 무릎을 약간 세운 채 이빨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덜덜 떨고 있었다.

또한 유방암에 걸린 어느 여성(42살)의 죽음 역시 애처러운 죽음이었다. “불안하면 호흡곤란이 더 심해져요. 두 달 전부터 갑자기 심해졌어요. 살고 싶어요! 정말 살고 싶어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주 심해요.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아요.” 암으로 인한 신체적 원인 보다 당사자의 심리적 불안에 의한 정신적, 영적인 고통이 한층 심했다. 사실, 말기환자가 겪는 육체적 통증의 90% 이상은 완화의학에 의해 다스려질 수 있으므로, 죽음에 임한 당사자의 정신적, 영적인 고통은 당사자가 죽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여하에 따라 편차가 크다. 따라서 정작 문제되는 것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죽음과 그 이후 세계에 대한 이해인 것이다.
세속적인 성취에만 몰두한 사람은 죽음에 대한 부정, 혹은 거부감이 심하다. 사회적 성공이나 출세만을 지향해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죽음은 전혀 준비하지도 못하고 평소에 죽음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면,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모든 것을 세속적인 관점에서 돈이나 물질로만 바라보는 사고방식으로 평생을 살았지만, 죽음은 그런 식의 접근을 결코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부정하면 할수록 고통의 무게는 더 한층 커지기 마련이다.

사람들 사이에 죽음은 알게 모르게 금기가 되어있다. 우리는 죽음을 일상 대화의 주제로 올리기를 꺼린다. 죽음을 입에 올리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사람들은 죽음을 터부시하여 아무 생각 없이 죽는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죽음을 금기시하여 자신의 의식으로부터 쫓아내 버린다면, 죽음과 표리일체를 이루는 삶을 바람직하게 영위할 수 없게 된다. 죽음을 터부시하면 죽음뿐만 아니라 자기의 삶 역시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가까운 사람의 부음에 수시로 직면하게 되지만, 죽음을 자기 자신에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문제로 심사숙고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음의 준비가 전혀 없는 상태로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기 자신의 죽음에 임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들은 자동차 사고 혹은 병 등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을 들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죽을 때 편안히 죽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죽음에 대한 무관심이나 무지야말로 우리 사회의 커다란 병리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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