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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현각 『증도가』 ⑪

기자명 법보신문

타인의 보배만 헤아려 어떤 이익 있을까

<사진설명>원담 스님의 노엽달마도.

전단숲에는 잡나무가 없고 울창하고 깊숙한 곳에 사자만이 살고 있다. 고요하고 한적한 숲에서 홀로 노니니 짐승과 새들은 모두 멀리 달아난다.

향기로운 전단숲에는 잡목이 없다. 전단은 여락(與樂)이라고 하며, 전단림은 발고여락(拔苦與樂)하는 수행자들의 모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곳 숲속에 사자가 홀로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으면 이리나 여우는 멀리 도망간다. 즉 도인이 고요한 숲에서 정진하고 있으면 소인배들은 모두 흩어진다는 것이다.

사자는 일족의 무리들이 따르고 세 살이 되면 바로 포효한다. 이리가 법왕을 닮으려 한다면 백년의 요괴도 헛되이 입을 열려고 할 것이다.

사자의 일갈(一喝)은 선종에서는 선사의 법문이며 화두이다. 사자가 세 살이 되어 포효한다는 것은 선불장에서 3년이 지나면 일갈을 할 수 있다는 뜻일까? 일본 혜담화상은 단월의 집에 딸이 죽어 장례에 가서 일갈만을 하고 돌아왔다. 나중에 그 집 주인은 감사의 표시를 하면서 “딸에게 주신 스님의 일갈은 임제의 사갈(四喝)중 어느 것입니까?”라고 물어, 당시 수행에 미숙한 화상은 캄캄했던 것이다. 화상은 그날로부터 매일 왕복 8리를 걸어 원복사에 가서 참선, 8년째 임제의 일갈을 손에 넣은 것이다. 선승의 일갈은 수행정진의 결정체다. 잔꾀를 내는 여우가 백수의 왕을 닮는다 하면 백년의 공을 들인 요괴도 닮아보려고 헛되이 소리를 내려고 할 것이라는 것.

원돈(圓頓)의 가르침, 인정(人情)이 없다. 의심이 있어 결정치 못하면 끝까지 다투어야 한다. 이는 산승이 아견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수행으로 단(斷)·상(常)의 견해에 떨어질까 염려함에서다.

남종의 돈교라는 것은 세간적 이해로서는 알 수 없는 것. 결정할 수 없는 의심이 생기면 끝까지 토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의 견해를 관철시키라는 것이 아니라 혹 수행이 단견과 상견의 이견(二見)에 빠질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그름과 그르지 않음과 옳음과 옳지 않음이 털끝만큼 차가 나도 천리나 어긋난다. 옳다면 용녀도 홀연히 성불하고 그르다면 선성(善聖)도 산채로 지옥에 떨어진다.

앞에서 설한 ‘이견(二見)’에 대한 보완되는 노래다. ‘용녀성불’은 『법화경』 「제바달다품」에 나온다. 옳음은, ‘변성남자’라야 성불한다는 것을 중생의 실유불성을 근거로 8세의 용녀가 여자이지만 그대로 성불한다고 하는 의미이다. 그름은, 선성비구가 십이분교를 아무리 암송한다고 해도 불법을 비방하고 교단에 장애를 끼치는 정법대로의 생활이 아니었기 때문에 산채로 지옥에 떨어짐을 말한다. 이 말은 『임제록』 시중(示衆)에도 나온다. 옳고 그름에 대해 시비, 집착을 말끔히 버려야 하는데 털끝만큼이라도 집착한다면 근본 대법과 크게 어긋남을 용녀와 선성에 비유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하여 경론이나 주석본에서 진리를 구했다. 분별과 명상(名相)에 쉬어야 함을 알지 못하고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세듯 공연히 스스로를 피곤하게 했다.

영가 스스로의 젊었을 때의 행장을 보인다. 현각은 출가하여 삼장을 연구하고 천태지관에 정통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불교를 학문적으로 하여 분별지성에 의한 개념적 연구에 힘썼다는 것. 그러나 불교의 수행상에서 이는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세는 것과 같음을 알았다. 기왓장을 갈아 거울로 만들려고 한 자신의 답답했던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도리어 여래의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타인의 보배를 헤아려서 어떤 이익이 있을까’라고.

지금껏 비틀거리며 헛되이 수행했음을 깨달으니 오랫동안 잘못된 풍진의 객이었을 뿐.

현각 자신의 수행한 그동안의 모습이, 마치 바람이 불면 날리는 티끌처럼 집도 없이 이리저리 다니는 풍진의 객밖에는 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수행이라고 한 것이 마치 바다의 모래알을 세는 것처럼 경론을 뒤적이며 그 속에서만 여래의 가르침을 들으려고 했다는 것을 이렇게 비유하여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한 노래다.


혜원 스님(동국대 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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