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자살사례 유형별 분석 : 카드빚 자살
76 자살사례 유형별 분석 : 카드빚 자살
  • 법보신문
  • 승인 2005.11.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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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 카드 사용이 자살 불러
신용불량자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친형제를 포함한 20대 남자 3명이 카드빚을 갚기 위해 강도짓을 벌인 뒤 이를 괴로워하다 동반자살했다. 2003년 5월21일 오전 8시쯤 부산시 금정산 북문 인근 등산로에서 백씨(29세, 회사원)와 친구 정씨(28세, 회사원)가 나무에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등산객이 발견 신고했다. 동생 백씨(26세, 무직)도 인근에서 수면제를 먹고 흉기로 자해해 목에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다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세 사람은 1천만에서 1억원 대의 신용카드 빚을 지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숨진 백씨는 ‘이 글을 보시는 분께’라는 제목의 유서를 남겼다.

“신용카드는 잘 사용하면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목을 조여오는 올가미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빚을 지면 거짓말을 하게 되고 궁지에 몰리면 엉뚱한 상상까지 하게 된다. 잘못된 생각으로 너무 쉽게 카드를 사용하다가 빚만 지고 궁지에 몰려 큰 죄를 지었다. 모든 것이 제 잘못이지만 저처럼, 아니 저 보다 더 괴로워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들 마시고 카드가 꼭 있어야 되는 것인지… 젊은 사람들은 카드 사용의 심각성을 모른다. 나 역시 몰랐다.”

숨진 백씨가 남긴 유서의 필체는 헝클어져 있었고 군데군데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백씨는 인터넷 관련업체에서 근무하다가 1억원 가량의 빚을 진 것으로 밝혀졌다. 백씨는 인터넷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투자하다가 1억원 가량의 빚을 졌다고 한다. 빚에 시달리는 것을 보다 못한 삼촌이 수천만 원을 갚아주기도 했으나 해결이 되지 못했다. 그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의 카드까지 훔쳐 결혼자금 가운데 수천만 원을 몰래 인출할 정도로 카드빚의 중압감에 시달렸다.

사진촬영 관련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던 정씨는 경험부족 등으로 4천만 원의 카드빚만 떠안았고, 실직상태인 백씨의 동생은 유흥비 등으로 1천만 원의 카드빚을 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카드 빚 독촉에 시달리던 세 사람은 엉뚱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지난 5월 19일 오전 4시 경남 양산시 이씨 집에 침입해 금품을 챙기다가 발각되자 이씨와 아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히고 달아났다.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지자 이들은 범죄에 대한 죄책감과 카드빚에 대한 비관이 겹쳐지면서 집단자살이라는 막다른 길로 내달았다. 결국 이들은 자살하기 하루 전인 5월 20일 빨래줄 등 자살도구를 준비해 금정산에 오른 뒤 집단자살을 감행했다. 자살현장에는 밤새 마신 소주와 맥주병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1999년 7월부터 정부가 현금 서비스 한도를 풀면서 신용카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갑자기 높아졌다. 당시 정부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투자가 극도로 위축되자 내수 소비를 진작시켜 경기를 살리는 정책으로 카드산업 활성화를 선택했다. 카드를 많이 쓰면 쓸수록 그만큼 소비가 늘어나고 생산도 촉진되어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본 것이다. 카드회사들은 연25%가 넘는 이자를 받는 현금 서비스를 늘리는데 열을 올려 신용도를 따지지 않고 길거리에서 대학생들에게까지 카드발급을 남발했다. 그 결과 카드회사들은 단기간에 수조원의 이익을 올렸고 급전에 목말랐던 일부 소비자들은 뒷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현금을 마구 뽑아 썼고 정부는 경제지표가 살아나자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2002년 하반기에 경기가 나빠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대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연체 회원이 늘어났다. 카드회사가 갑자기 현금 서비스 한도를 줄이면서 ‘돌려막기’가 어려워진 회원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신용불량자가 한 때 4백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4가구당 1가구 꼴로 신용불량자가 있었던 심각한 상황이어서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카드빚으로 인한 자살문제 역시 이와 같은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근간으로 해서 야기된 사회적 현상이다. 빚을 갚기 위해 살인하거나 자살을 하기도 하고 자녀의 카드빚 때문에 부모가 자살하기도 하는 현실. 카드사의 무책임, 무분별한 카드사용, 정책의 실패를 공박하는 것도 이젠 상투적인 어법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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