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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 인

기자명 법보신문

강렬 오묘한 색채 속엔
갈등-대립 넘은
절제-침묵 자리해

<사진설명>이인 화가는 현재 서울 인사동 ‘가람’화랑에서 ‘색색풍경’전을 열고 있다. 이 전시회는 11월 30일까지 열린다. 사진=채한기 기자

종이 위에 색과 먹을 가지고 무심하게 놀듯, 유유자적하듯이 그려낸 그림들이다. 아이들 그림 같은 그림이 지극한 경지임을 화가들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미 일정한 교육과 관습화된 몸을 지닌 후 그런 경지로 되돌아가기는 바늘귀에 낙타가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많은 화가들은 자신이 배웠고 몸에 익은 것들을 어떻게 하면 털어내고 비울 것인가를 갖고 애쓴다. 인생의 절반을 들여 애써 배우고 나머지 삶의 반은 배운 것을 가능한 지우고 잊어버리고자 하는 셈이다. 이 아이러니가 바로 예술의 길이다. 그것은 익히고 배워야 하면서 동시에 부단히 지우고 덜어내는 일이다. 어쩌면 삶이란 것도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그림 그리는 일을 인생의 길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배운 것 잊는 게 예술

이인의 그림은 다소 무심하게 끄적이고 긋고 그려나간 자국들이 장식적으로 마감되어 자리했다. 나는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손의 관능, 감각, 깊은 서정, 불교적 사유, 좀더 넓혀서 동양의 인문화된 정신의 한 편린들의 기호와 상징화를 만난다. 그 모든 것들은 수묵의 맛과 채색의 열락, 서예의 조형성 속에서 적절하게 조화를 유지하고 있거나 구성의 묘미 아래 단아한 문장을 형성하는 주옥같은 단어들 마냥 존재한다.

다양한 색상을 배경으로 한 화면에 검정, 노랑 색의 작은 원형의 점이 찍혀있는가 하면 일상의 모습에서 추출하거나 자신의 관념세계를 기호화한 흔적들이 별처럼 흩어져있다. 그런가하면 참선하는 형상, 부처님의 수인, 연잎, 자신의 몸, 작업실에서 내다보이는 저녁노을과 환한 달, 한글과 한문으로 감칠맛 나게 쓰인 문자 들이 어우러져있고 그것들끼리 한 폭의 풍경을 보여준다.

작업실에서 대부분이 시간을 보내는 그의 실존에 대한 단상과 그렇게 추억하고 기억하고 떠올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그는 그림으로써 저장하고 반추한다. 그 위로 동양의 사상과 불교적 사유의 한 자락을 형상화하고자 하는 지난한 시도가 눈처럼 내리고 또 그런가하면 자신의 작업실 주변의 찬란한 자연의 변화에 새삼 절룩거리는 마음의 결들 또한 다소고이 올려놓았다. 그의 근작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한 편의 시나 동화처럼 빛난다. 더러 스산하고 서늘한 고독과 허무, 작업하는 일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삶의 경륜과 익숙할 수 없는 인생의 고단함에 대해 기우뚱거리는가 하면 스스로를 지속해서 가라앉히고 작업의 수액으로 자리하는 동양의 마음과 사유들을 거듭 펼쳐 보이는 일들로 바글거린다. 그래서인지 작업의 제목은 ‘색색풍경’이다.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그저 하루를 기록하며, 자족하는 일 밖에.”(작가노트)

그래서일까, 그의 작은 그림 하나하나, 혹은 큰 것과 작은 것들끼리 잇대어진 그림들은 모두 저마다 세상의 풍경, 그로부터 비롯된 인연과 경험, 기억과 단상, 사연과 소망 등등을 색색으로, 형상과 기호로, 문자와 드로잉으로 그려놓은 것들이다. 동시에 그의 다채롭고 아기자기한 화면은 이내 도(道)나 공(空)으로 표산되는 문자의 틀 안으로 귀결되기고 하고 정신세계로 마감되는 편이다.


삶의 실체서 상징 건져

“그림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작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구도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진리를 찾아 정진해가듯이 그림 또한 삶의 다양한 유형 중에서 실제의 참모습이 모호한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힘겨운 작업이 아닐까 한다. 나는 색채의 정신성과 색채의 상징성을 추구하며 그림을 그린다...‘인생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깊이 있게 던지는 그림’, 즉 삶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에 깔고 살아있는 진실을 건져올린 그림이 과정이고 또한 결과이고 싶다....주변에서 부딪히는 느낌들을 상징적 도상으로 표현, 기록함으로써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더욱 절실하게 나타냈으면 한다. 최소한 열 번 이상의 밑칠에서 우러나오는 오묘한 색채는 절제와 침묵을 나타내고 그 위에 그려진 상징들은 부분적으로 지워지기도 하고 상대적 공존을 유지하며 긴장된 관계로 대립을 반복한다. 나의 화면에서 나타나는 강렬한 색채는 공존과 대립의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갈망하는 나의 모습이 아닐까? ”(작가노트, 1996)

정각원 찾아 마음 다스려

이인은 동국대학교에서 미술(동양화)을 수학했다. 교양으로 들었던 불교관련 학과목에 대한 관심이 이후 내내 자신의 인생관, 미술관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그는 말한다.

“동국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는 정각원은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모습이 한결같다. 단아한 절집 분위기 말이다. 법당 안에 두 세명의 학생들이 앉아 참선하는 모습도 모두 똑같다...이 학교와 인연을 맺은 이후 나는 지금도 가끔 이 정각원을 찾는다. 학창 시절 실기실에서 그림을 그리다 지치면 부처님 앞에 와서 그냥 앉아 있다 가고는 했다. 그리고 오늘, 처음 그날처럼 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 때 마다 나는 짐을 조금씩 내려놓고 간다. 또 20여 년 후에도 깨끗한 법당 마루에 앉아서 처음처럼 오늘처럼 인연 따라 생각나는데로 부시럭거릴 것이다.”(작가노트)

그런 불가의 인연이 작업하는데 더없이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고독하고 적요한 작업실에서의 생애를 마치 스님들의 수양과 정진하는 삶처럼 누리고자 한다. 그런 세월을 보내다보면 얼핏 만나는 한 자락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끊고 그가 그림의 세계로 들어가 만나고 있는 흔적들을 보면서 새삼 그림의 길과 구도의 길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또한 알 것도 같다.

(미술평론, 경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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