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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실직과 실업

기자명 법보신문

경기침체→실직→자살 ‘악순환’

어느 날 아침 7시 노숙자 김종식(48세)씨는 거리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아침운동을 하던 한 시민이 서울 동대문운동장 공중전화 박스 옆에서 김씨를 발견했을 때 그는 주변의 상가에서 내다버린 쓰레기 더미에 덮여 있었다. 사망원인은 영양실조와 추위였다. 얇은 이불과 스치로폴만으로는 술에 찌들고 허기진 몸을 꽃샘추위로부터 막아내기 힘들었던 것이다. 발견 당시 그의 얼굴과 손의 살점이 대부분 뜯겨나간 상태였다. 경찰은 “최소한 보름 전에 숨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동안 주변의 쥐들이 갉아먹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화려한 동대문 패션상가가 밀집해있어 하루 유동인구만 수십만 명에 이르는 도심 한복판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여러 날 동안 그의 죽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주검이 발견된 날까지 한 달 동안 1400여 명이 공중전화 박스를 이용했다고 한국통신은 밝혔다. 아무도 쓰레기 더미 옆에 묻혀있는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을지병원 영안실에서 만난 그의 동생 김종수씨(44세)는 차라리 체념한 듯 담담했다. “가난했어요. 그 기억밖에 없습니다. 전북 익산의 빈농에서 4남3녀가 태어나 누구도 중학교를 가지 못했어요. 형도 초등학교를 미처 마치지 못하고 농사를 거들어야 했어요. 가진 땅이 없어 언제나 남의 논에서 일했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었습니다.” 숨진 김 씨가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치기 위해 새 삶을 시작한 것은 1990년이었다. 대전에서 조경 사업을 했고 95년에는 결혼도 하려 했다.

그러나 결혼을 미끼로 접근한 유부녀한테 속아 5천만 원을 빼앗겼고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7년말 IMF 구제금융 사태까지 닥쳐 사업도 접어야 했다. 술을 입에도 대지 않던 그가 술병을 끼고 서울 거리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결혼과 사업에 모두 실패한 그는 급속히 우울해졌고 죽기 전 몇 년 동안 가족들과의 연락마저 끊었다. 그는 힘겨웠던 이승의 삶을 공중전화 박스 쓰레기 더미 옆에서 마감했다. 빈농 아들의 참담한 주검을 세상 사람들은 보름 동안이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자포자기 상태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으리라 추정된다. 자살 여부를 논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자살이나 다름없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2003년 4월21일 오후 5시59분 서울 서초구 우면산 대성사 입구 부근의 기슭에서 박씨(37)가 총탄에 맞은 채 숨져 있는 것을 예술의 전당 관리소장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박씨는 산책로 옆에 앉아 있다가 권총으로 자신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쏴 즉사한 것 같다고 밝혔다. 박씨가 사용한 총은 ‘스페인제 라마 권총’으로 사망 당사 권총에는 실탄 6발이 장전되어 있었다.

그는 어느 대학의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2년간 국내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2년 동안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다. 그러나 1996년 이후 취직을 못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남길 유산도 없고 아무런 아쉬움도 없다. 이승의 삶을 마감하려 한다. 죽으면 화장해 달라”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되었다.

1997년 말 경제위기는 자살사망률의 급격한 증가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998년 자살자 숫자가 처음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를 넘어섰다. 최근 들어 자살률이 다시 증가하는 것도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직접 관련이 있다. 경제의 불황이 오래 지속되니까, 취직, 실직, 구조조정이 사회문제로까지 된 지 오래되었다. 우리 사회에 38선,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노인문제도 문제지만, 한창 일해야 할 20대, 30대, 40대, 50대가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경기침체와 실업률이 자살률의 증가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는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입증된 현상이다. 자살사례를 분석해 보면 카드빚, 경제적 어려움, 실직, 실업 등 경제적 원인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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