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백화도량발원문 의상 스님이 썼나
34 백화도량발원문 의상 스님이 썼나
  • 법보신문
  • 승인 2005.11.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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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기무라 등 “의상 이후 가택된 것”주장
해주 스님 등 “저자 언급돼 재론 여지없다”반박


한국불교 최초의 발원문으로 알려진 백화도량발원문. 고려 충숙왕대(1314∼1330) 목암(木庵) 체원(體元)이 백화도량발원문을 모아 주석을 붙인 백화도량발원문약해(白花道場發願文略解)에 수록돼 있는 이 발원문은 200여자에 불과한 비교적 짧은 글이지만 신라 관음 신앙의 관계를 알게 해 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돼 왔다. 특히 이 발원문은 체원이 백화도량발원문 약해에서 ‘신라 의상 법사제(新羅 義相 法師製)’라고 밝혀 누가 이 발원문을 지었는지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이 발원문의 저자를 의상으로 볼 수 없다는 학자들의 논문이 발표되면서 ‘백화도량발원문의 저자’ 논란이 학계에서 처음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1988년 동국대 김영태 교수는 “백화도량발원문의 저자가 명확히 누구인지는 단언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 저자를 의상으로 보기에도 어려운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백화도량발원문의 몇 가지 문제」(한국불교학, 13집)라는 논문에서 “체원이 백화도량 약해에서 ‘관자재보살이 보달낙가에 계신다하니, 청량소에서 해석해 이르되 보달락가란 차운 소백화수(此云 小白花樹)이니 산에 이 나무가 많아 향기가 멀리 풍기고 봄에 반드시 즐거우므로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해 ‘백화도량’의 명칭은 여기서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어 “그러나 관음 주처로서의 ‘백화’는 청량징관(738∼839)의 『화엄경소』와, 그 이전의 혜원(慧苑)의 『화엄경음의』(華嚴經音義, 709∼713년경 저술)에 등장하지만 이 모두 702년 입적한 의상 이후의 일”이라며 “따라서 의상 자신이 백화도량이라 이름 붙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백화도량에 왕생하고, 관음보살이 미타를 정대하듯이 관음을 정대하겠다는 등의 원은 『화엄경』에 근거하기보다는 『관무량수경』 등 정토계 경설 쪽에 가깝다는 점, △백화도량발원문의 내용이 의상의 대표작인 일승법계도와 사상적으로 이질감이 있다는 것, △비화엄적인 내용이 많은 점 등은 해동화엄의 초조(初祖)라고 불리는 의상이 지은 것이라고 보기에는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 기무라 기요다가(木村 淸孝)교수는 「백화도량발원문고」라는 논문을 통해 “백화도량발원문은 의상 당대의 저작이라고 볼 수 없다”며 “이는 관음신앙자에 의해 8세기 중엽이후 13세기 말 무렵까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정병삼 교수도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통해 “백화도량발원문은 신역 80화엄이 신라에 수용되는 8세기 말 이후 의상의 관음신앙을 충실히 계승해 오던 한 인물에 의해 그 본뜻을 살려 가탁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혀 김영태 교수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에 대해 동국대 정병조 교수와 김상현 교수는 잇따라 논문을 발표하고 “체원이 약해에서 ‘백화도량발원문을 의상이 지은 것’으로 소개하고 있는 이상, 여전히 의상의 발원문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1992년 동국대 해주 스님은 「의상화상 발원문 연구」(1992, 「불교학보」29)라는 논문을 통해 김영태 교수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해주 스님은 논문에서 “체원이 약해에서 발원문의 저자를 의상이라 밝히고 그의 행장을 소개한 점에서 의상의 작으로 보는 것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이어 “△체원이 약해에서 백화도량발원문이 화엄경에 의거해 나왔다고 언급한 점, △약해에서 인용하거나 언급한 문헌 역시 화엄관계 자료가 다수인 점(총 77자료 중 화엄관련 46, 비화엄 31), △백화도량발원문의 주된 내용이 자리이타행, 성익(成益)으로 이는 일승법계도가 전체적으로 자리이타 수행득익(自利利他 修行得益)의 구조로 유사하다는 점 등은 의상의 작으로 보기에 충분한 근거”라고 밝혔다.

아직까지 백화도량발원문의 저자 논란이 명확하게 가라 앉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학계에서는 그 저자를 의상으로 보는 것에 무리가 없다는 견해가 다소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권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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