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자살사례 유형별 분석 :가족동반 자살
79 자살사례 유형별 분석 :가족동반 자살
  • 법보신문
  • 승인 2005.12.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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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자녀 동반자살 서양엔 없어
생활고를 겪어온 30대 주부가 자녀 3명과 함께 아파트에서 투신해 일가족 4명이 숨졌다. 2003년 7월17일 오후 6시10분경 인천 부평구 청천동 아파트 화단에 주부 손씨(34·서구 가정동)가 7세와 3세인 딸 2명 및 아들(5)과 함께 떨어져 있는 것을 주민 문씨(48)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손씨와 두 딸은 그 자리에서 숨졌고 아들은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오후 8시경 숨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14층과 15층 사이 계단 창문을 통해 10여초 간격으로 손씨가 딸 2명을 차례로 던진 뒤 마지막으로 아들을 안고 뛰어내렸다는 것.

이 아파트 2동 11층에 사는 이씨(44살)도 평생 잊지 못할 끔직한 광경을 보았다. 맞은 편 4동 14층과 15층 사이 창문에서 무언가 떨어지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두 번째 아이가 떨어졌다. 몇 초 뒤 다시 한 여자가 아이를 안고 몸을 날렸다. 여자는 마치 의자에 앉은 듯한 자세로 낙하하고 있었다. 떨어지는데 걸린 시간은 2.5초. 출입구 지붕 기왓장에 부딪힌 뒤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졌다. 목격자 이씨는 아직도 충격을 떨쳐내지 못하고 우황청심환을 먹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온 국민은 경악했다.

손씨 가족은 인천시 변두리 가정동의 15평짜리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큰딸은 죽은 다음날 18일 수영장으로 현장실습 가기로 되어 있었지만, 실습비 3800원을 내지 못했다. 친구 신덕화씨(30)에 따르면, 그녀는 나가서 일하고 싶은데 막내딸 때문에 못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손씨 막내딸은 팔다리에 피부염, 눈에 결막염이 있었지만, 하루 치료비 3500원이 없어서 병원 다니다가 그만 두었다. 남편 조씨는 주택공사에 인수된 한양목재에 1997년 입사해 일했는데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주택공사가 한양목재를 파산시켜 일자리를 잃었다. 조씨의 친구 노씨는 “그가 배운 기술은 목재일 뿐이었다. 그 때 직장을 잃은 그는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 발생 며칠 전부터 대전에서 초등학교 신축 공사장에서 조경공사를 하던 중이었다.

숨진 손씨의 바지 뒷주머니에서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살기 싫다. 안면도에 묻어 달라’는 내용이 적힌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있었지만, 남편에 대한 말은 없었다. 조씨는 카드빚 2천만 원, 은행 대출 천만 원이 있었다. 손씨 남동생(31)은 경찰에서 “매형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지내다 누나가 일용직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동창생 김씨(34살)는 사건 당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김씨는 손씨 아파트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씨는 “살기가 힘들다. 자살하면 어떻게 될까?” 라고 물었다. 이웃 신덕화씨는 오후 4시 30분쯤 아파트와 버스 정류장 사이 건널목 길에서 손씨와 자녀 일행과 마주쳤다. 손씨는 어두운 표정이었지만, 자녀들은 명랑했다. 큰딸 수미는 조금 뒤 닥칠 운명도 모른 채 신씨를 보고 활짝 웃었다. 이것이 손씨 가족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손씨와 남편 조씨의 부모들은 안면도에서 농사짓는 가난한 농민으로, ‘빈농의 자녀-상경-도시 빈민층 전락’ 빈곤층의 전형적인 유형이었다. 그녀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안전망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손씨 가족처럼 극빈층이면서도 기초생활 보장 수급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는 ‘차상위 계층’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

서양에서는 부모가 자살할 때 결코 자녀를 끌어 들이는 일이 없다. 자기 인생과 자녀의 삶은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부부, 연인끼리 감행하는 동반자살은 가끔 일어나지만,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자살사례는 학계에 보고조차 되지 않는다. 설령 자녀가 부모와 함께 자살하더라도 어린이는 자살한 게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것으로 규정한다.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자신과 자녀를 하나로 생각하는 것은 한국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부모의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죽음을 피하지도 못한 어린 아이들은 동반자살한 게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부모는 자살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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