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금동용봉향로 백제의 것일까
35 금동용봉향로 백제의 것일까
  • 법보신문
  • 승인 2005.12.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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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 “박산로와 유사… 중국서 수입” 주장
최웅천 등, “백제 독창성 보인 창작품” 반박


1993년 12월 12일 세계 고고학계는 한국을 주목했다.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세계최대, 전대 미문의 화려한 도상을 가진 대향로가 발굴됐기 때문이다. 능산리 고분군의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 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이 향로는 높이 64㎝, 무게 11.8㎏이나 되는 세계 최대의 크기로 몸체와 뚜껑, 봉황과 받침대 등 크게 4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이 향로는 23개의 산들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는 풍경을 조각하고 있으며 향로에 표현된 조각이 매우 뛰어날 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종교와 사상적 복합성까지 보이고 있어 백제시대의 공예와 미술문화, 종교와 사상, 제조기술까지도 파악하게 해 주는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돼 왔다. 또한 그 동안 중국에서 몇몇 향로가 발견돼 왔지만 이처럼 엄청난 크기의 대형향로가 발견된 예가 없어 당시 국내 뿐 아니라 세계 언론은 능산리 출토 향로를 주요기사로 일제히 보도하는 등 그 관심이 지대했다.

그러나 이 향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고고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 금동용봉향로(국보 제287호)가 백제의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수입된 것이 아니냐는 이견이 제기되면서 이 향로가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이는 중국 또는 일본 고고학자들을 중심으로 이 금동향로의 양식이 중국 박산 향로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당시 발굴단은 “향로의 받침엔 용이, 꼭대기엔 봉황이 장식된 것으로 미뤄 중국의 것과 다른 백제의 독창성이 보이는 작품이며 제작시기도 6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일본학계에서는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맞고 도교가 융성했던 시기가 7세기 전반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향로도 그 시기 중국에서 제작된 것이 백제로 흘러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맞섰다. 이처럼 백제 금동용봉향로에 대한 논란이 계속해서 수그러들지 않자 국립부여박물관은 2003년 금동용봉향로 발굴 10주년을 기념해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그 동안 제기된 학자들간의 다양한 이견을 종합 검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서 일본 경도여대 저웅겸승(猪熊兼勝) 교수는 「백제·능사 출토 향로의 디자인과 성격」이라는 논문을 통해 “능산리 출토향로는 불상의 연화대좌형(蓮花臺座形) 몸체에 산악형의 모양을 한 뚜껑이 덮여 있는 양식으로 이는 중국 박산로(博山爐) 양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특히 웅크리고 있는 용이 향로의 아래 부분을 바치는 모습은 이미 전한(前漢)시대 중국 섬서성 무릉에서 출토된 금동제죽절(金銅製竹節) 향로와 유사하다”고 밝히면서 이 향로가 중국에서 수입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 쩡저우(鄭州)대 원위청(溫玉成)교수는 “능산리 대향로의 원형은 중국 한대 유행했던 박산로임에 틀림없다”고 동조하면서 중국 수입설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한국학자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국립전주박물관 조용중 학예연구관은 「백제금동대향로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이 향로의 제작국에 대한 문제는 도상이나 제작기법 또는 동반 출토된 유물과의 검토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밝힐 수 있다”며 “이 향로가 동아시아의 공통된 박산 향로 도상이기는 하지만 6∼7세기 중국 박산 향로에서는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 쪽의 신산(神山) 도상을 따르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출토지인 백제에서 제작한 것이 맞다”고 반박했다. 또 국립춘천박물관 최응천 학예연구관은 「백제 금동용봉향로의 조형과 편년」에서 “능산리 향로는 그 기본 구성은 중국의 것을 따르면서도 백제적인 변화와 새로운 요소가 가미된 것으로 한대(漢代) 이후 계승된 박산향로를 백제에서 불교적인 요소와 함께 복합시켜 새롭게 번안한 백제의 독창성이 보이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한중일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계속됐던 용봉향로 제작국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 향로가 백제의 예술적 감각과 독창성을 발휘해 오히려 중국의 수준을 뛰어넘은 작품이라는 점에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권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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