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자살해서는 안되는 이유
81 자살해서는 안되는 이유
  • 법보신문
  • 승인 2005.12.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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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포기=죽음’ 공식 성립 안돼
자살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자살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우리 사회에 분명히 제시된 적이 없는 듯하다. 단지 도덕적으로 훈계하고 억지로 말리고 하는 방식으로는 자살현상에 브레이크를 걸 수 없다. ‘왜 자살해서는 안되는지’ 그 이유가 보다 체계적이고도 심층적으로 분명하게 제시될 필요가 있다. 자살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죽음문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생사학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논할 수 있다. 자살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다음같이 여섯 가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자살하는 사람은 단지 현실의 고통을 모면하기 위해 자살을 택하지만, 자살하는 즉시 더 큰 고통을 당한다. 회사 사장 K씨는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져 사업을 크게 축소하고 집도 잡혔지만, 회사를 구할 수 없었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그는 자살함으로써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으리라는 기대했지만, 자살은 미수에 그쳤다. 약 7 시간 동안의 가사상태에서 그는 무서운 사후세계를 체험했다. 가사상태에서 저렇듯 무서운 꼴을 당했으니까, 그는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둘째 자살하는 사람은 세속적인 이유에서 자살을 감행하지만, 죽음과 세속적인 동기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죽음은 세속으로부터 떠나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것이므로, 세상일은 그대로 두고 가는 것이 현명하다. 대부분 세속적인 동기, 예를 들면 경제적 어려움을 비롯해 사회생활을 하다가 어떤 난관에 맞부딪히게 되면, 마치 자살이 해결책 혹은 도피구라도 되는 듯이 쉽사리 자살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은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감행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자살을 생각할 수 없다. 죽음은 절망 그 자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삶의 포기’를 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죽음을 무찔러야만 하는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다. 허무하다 하여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죽으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거나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 어떻게 해서든지 삶의 시간만 연장하려는 사람도 있다.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이해 부족이 자살사망률 급증의 근본원인이다.

넷째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죽음의 방식이다. 자살은 가장 나쁜 방식의 죽음이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질문은 죽음의 문제를 배제한 채 세속적인 성취만을 도모한다.

이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바꾼다면, 삶과 죽음을 동시에 묻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살과 같이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삶을 마감했을 경우, 그의 삶 역시 건강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은 죽음의 방식에 의해 마무리되고, 죽음 이후는 우리 삶과 죽음 방식 관련 아래 정해지기 마련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에는 바로 당사자의 삶 전체가 요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섯째 자살은 한 사람의 불행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는 것은 물론 가족과 주위 사람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준다. 자살은 교통사고나 병사와는 달리 너무나 깊고 아픈 상처를 가족에게 남긴다. 그 후유증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당해보지 않은 가족은 짐작하기 어렵다. 한 사람의 순간적인 오판은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분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불행이다.
여섯째 우리는 자기 영혼을 보다 성숙시키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 죽는 순간, 우리에게 질문 두 가지가 주어진다. 첫째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 둘째 죽는 순간 마음은 어떠했는가, 평온한 마음으로 죽었는가, 혹은 불안한 마음으로 삶을 마쳤는가. 두 가지 질문은 죽어가는 당사자가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재산은 얼마나 되는지, 사회적으로 성공했는지 그런 것은 전혀 묻지도 않는다. 오직 한 가지 인간 그 자체, 영혼의 성숙 여부만 물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삶의 시간이 주어진 것은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함인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삶과 죽음의 질을 논의할 시점이 되었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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