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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타이 ‘스리 파고다스’

기자명 법보신문

버마-타이 국경분쟁 속에 수몰된 ‘세 개의 탑’

<사진설명>진짜 '스리 파고다스'는 1983년 타이 정부에 의해 인공호수 속으로 사라지고 흰 페인트로 뒤덮인 가짜 탑이 진짜 행세를 하고 있다.

오늘은 ‘가짜 탑’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한다. 탑이면 탑이지, 무슨 보석도 아닌 걸 진짜 가짜 따진다며 좀 수상히 여기는 독자들도 있을 법한데, 아무튼 방콕에서 북서쪽으로 한 350km쯤 떨어진 버마 국경으로 가보자.

영토분쟁 터지자 댐 건설

이름 하여, 버마 사람들은 ‘파야톤주’라고도 하고 타이 사람들은 ‘프라 체디 삼 옹’이라고도 하는 국경 통과지점이 하나 있다. 이걸 우리말로 풀어보면 ‘탑이 셋인 고갯길’쯤 되는데, 오히려 현지인들이 부르는 지명보다는 영어인 스리 파고다즈 파스(Three Pagodas Pass)로 더 잘 알려져 온 곳이다.

수많은 이들로 붐비고 온갖 물건들이 오가는 여느 버마-타이 국경 관문과 달리 이 곳은 늘 한가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산골 마을 그대로다. 그 어수룩한 풍경 너머 버마 국경 검문소 코빼기 앞 타이 땅에 바로 그 문제의 탑 셋이 서있다.

소문난 스리 파고다즈 파스를 쫓아 방콕에서 예닐곱 시간 산길을 힘들게 달려온 이들이라면, 그 탑들을 보는 순간 절로 한숨이 나고 맥이 빠지고 만다. 예술성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돌탑에다가 흰 페인트칠로 뒤덮어 놓은 그 풍경 앞에서!
문제는 스리 파고다즈 파스가 지닌 유명세와 달리 그 속사연을 아는 이들이 드문 탓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경 관문 앞에 줄지어 선 이 탑들은 진짜 ‘스리 파고다즈’가 아니다.

지금부터 이 스리 파고다즈 파스의 정체를 따라가 보자. 예부터 이 스리 파고다즈 파스 지역은 서로 다른 정치세력들이 예리하게 충돌해 왔던 지점이다. 이 일대는 16세기 중엽과 1756년 두 차례에 걸쳐 버마가 타이의 아유타야(Ayuthaya)왕국을 침략하면서 진격로로 삼았던 곳이고, 또 근대로 접어들면 버마를 삼킨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타이와 인도차이나반도를 향해 야심을 불태웠던 동진정책의 한 관문이기도 했다. 현대사에서도 스리 파고다즈 파스 지역은 숱한 분쟁들로 얼룩져 내린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버마가 18세기 중엽까지 몬(Mon)왕국의 일부였던 스리 파고다즈 파스 지역을 버마연방의 한 주로 편입해버리자 소수민족 몬이 자치·독립을 외치며 무장투쟁으로 맞서 지난한 분쟁을 겪어왔다.

게다가 이 지역은 버마군사정부에 저항해 온 버마 내 소수민족인 몬과 카렌(Karen)이 국경 밀무역에서 거둬들이는 이른바 ‘통과세’ 5%를 놓고 주도권 다툼까지 벌여 매우 복잡한 분쟁 양상을 띠고 있다. 현재 스리 파고다즈 파스는 1988년 몬-카렌 충돌을 제압한 버마정부군이 관할하고 있지만, 국경 일대는 아직도 심심찮게 버마정부군과 소수민족 해방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충돌 속에서 버마정부군의 공격을 받은 몬과 카렌 주민들이 타이 영내로 넘어들어 스리 파고다스 파스를 낀 국경지역은 피난민들로 들끓고 있다. 유엔과 타이정부가 공식적인 난민(Refugee) 신분 대신 국내추방인(IDP)이라 부르고 있는 그 피난민 숫자는 4개 캠프에 1만여명이 넘는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몬족 터전이었던 스리 파고다즈 파스 지역에서는 해묵은 정착 주민과 압박을 피해 넘어온 이들이 뒤섞여 실질적인 피난민 숫자를 파악하기조차 힘든 실정이다.

피난민 1만여명 넘어

다만, 현지 주민들은 스리 파고다즈 파스를 낀 타이의 상크라부리 전체 주민 가운데 90%쯤이 몬족이라 믿고 있다.

이렇게 스리 파고다즈 파스 지역이 숱한 분쟁을 겪는 사이에 타이 정부는 국경선 문제를 놓고 가히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말하자면 타이 정부는 국경 분쟁의 틈을 이용해 국경선을 버마 영토 깊숙이 밀고 들어갔던 셈이다. 그 버마-타이 국경선 문제의 핵심에 바로 ‘스리 파고다즈’가 서 있다.

버마-타이 국경선 문제도 뿌리를 파헤쳐보면 여느 제3세계 국경분쟁과 다를 바 없이, 결국 제2차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기준도 없이 국경선을 그어버리고 식민지로부터 도망친 영국 식민주의자들의 더러운 유산과 마주친다.

버마-타이 국경선 문제도 그렇게 제2차세계대전 뒤부터 전통적인 국경선이 버마 남동쪽으로 이동하면서부터 빚어졌다. 그러나 버마정부는 국경 전역이 독립을 외치는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해방구로 변하면서 버마-타이 국경을 실질적으로 관할하지 못한 채 현대사를 이어왔다.

졸지에 물 속으로 사라진 탑

버마 중앙정부가 그렇게 혼란을 겪고 있는 사이, 1983년 타이 정부는 상크라부리에 카오 라엠댐을 세워 고대 스리 파고다즈 파스를 낀 버마 국경 일대를 수몰시켜 버렸다. 그렇게 해서 예부터 버마-타이 국경선이라고 여겨왔던 스리 파고다즈는 거대한 인공호수 속에 수장되고 말았다.

이어, 타이 정부는 국경선 문제를 희석시키면서 동시에 스리 파고다즈 파스가 지닌 유명세를 관광수입원으로 만드는 묘안을 찾아냈다. 그게 바로 ‘가짜’ 스리 파고다즈 건설이었다.

카오 라엠호수에 잠긴 본디 스리 파고다즈로부터 20km도 넘게 떨어진 타이-버마 국경 통과지점에 흰 페인트로 떡칠한 탑 셋을 세워 어느 날부터 스리 파고다즈란 뜻을 지닌 ‘프라 체디 삼옹’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외국 관광객들은 말할 것도 없고 타이 사람들까지도 그 가짜를 진짜 인양 착각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니, 몬족이 주류를 이루는 현지 주민을 만나보면 “타이 정부가 최소 5km에서 최대 30km까지 버마 국경선을 잡아먹었다.”며 저마다 불만을 털어 놓는다. 그러나 국경선 문제의 한 쪽 당사자인 버마 정부가 몬 지역을 실질통치 하지 못하는데다, 몬족 정치단체들도 버마군사정부에 저항하기 위한 교두보로 타이를 활용하는 실정이다 보니 결국 타이 정부는 마음먹은 대로 국경선을 휘갈길 수 있었던 셈이다.

수장된 스리 파고다즈, 집어 삼킨 국경선, 그 정치적 술수가 흐르는 땅 위에 심란하게 다가오는 또 하나의 거대한 절이 있다. 수몰을 면한 카오 라엠호수 한 모퉁이에 떡 하니 버텨 앉은 왓 왕 위웨까람(Wat Wang Wiwekaram)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현지 주민들이 왓 몬(Wat Mon)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 절은 인디아 보드가야의 마하보디를 본 떠 만들었다는데, 금 6kg을 입힌 불탑 체디 루앙 포우 우따마(Chedi Luang Phaw Utama)가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절 안에는 타이 최대 대리석 부처가 버티고도 있다.

몬족 승려들이 주류를 이루는 이 절은 용하기로 소문난 주지스님 루앙 포 우따마를 존경해 온 몬족, 카렌족을 비롯해 타이 신도들이 아낌없는 보시를 통해 세웠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사실은 타이 정부가 댐 건설로 많은 절들이 수장당하면서 언잖아져버린 그 불심을 달래고, 또 무엇보다 국경선을 낀 주도권을 쥐기 위해 불사를 적극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관광객 위해 가짜 탑 조성

그 과정에서 타이 정부뿐만 아니라 몬족과 카렌족 해방군이 무기 암거래를 통해 챙긴 이문을 이 절로 흘렸다는 사실도 알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다.

처음부터 이 절은 사라져버린 진짜 스리 파고다즈를 대신해 타이정부가 몬족을 겨냥한 ‘애무용’으로, 또 버마정부에 맞서 온 몬족은 타이 정부를 향한 ‘충성용’으로 불심보다는 고도의 정치성을 안고 태어났다.

그렇게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가짜에게 자리를 내 준 진짜는 속절없이 물가를 맴돌고만 있다. 허물어진 스리 파고다즈, 물에 잠긴 스리 파고다즈 파스는 오늘도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마지막 남은 몸뚱이를 곧추세우고자 갖은 애를 쓰고 있다.

탑은, 불교는, 왜 이렇게 늘 구석구석 온 천지에서 정치의 노리개 감이 되어왔을까?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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