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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고봉 스님(1919∼1979)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 대중화 앞장선 석학

1979년 12월 4일 입적
한글 불교개론서 발간
불교교리 토요강좌 개최
불교사상연구회 창립


“1960∼70년대 황성기 박사는 학자로서 이론 연구에만 매진한 것이 아니라 일반불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불교학을 추구했습니다. 이는 후학들이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동국대 명예교수 목정배 씨의 말처럼 고봉 스님(속명 황성기)은 한국불교의 대중화에 앞장 선 인물이었다. 교계에서는 최초로 일반 불자들을 대상으로 사찰이 아닌 서울 중심부의 한 예식장에서 토요교리 강좌를 개최했을 뿐 아니라 한글로 된 변변한 불교개론서가 없던 시절 『불교학개론』을 발간, 일반인들이 불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인 1919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난 고봉 스님은 34년 고성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8월 경기도 화성 용주사에서 경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 용주사 강원에서 사미과와 대교과를 수료했다.

전통 강원에서 불교를 배운 스님은 이후 동국대 전신인 혜화전문학교에 입학해 현대적 불교교육을 접했고, 이를 계기로 한국불교가 전통을 계승하고 새롭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산중에 머무르기보다는 일반 불자들에게 찾아가 함께 공감하는 대중불교, 생활불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이후 1943년 용주사 수원불교 포교소(현 수원포교당)를 개창하고 포교사로 활동하던 스님은 해방 이후 1953년까지 고성 공립초등학교에서 위탁교원, 고성 송강초등학교 교장, 고성 중학교 교사, 거진여자중학교 교감, 용주사 자혜원 교사 등을 역임하며 불교인재 양성에 주력했다.

1953년 스승 김동화 박사의 권유로 동국대 불교학과에 편입해 학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스님은 이후 57년 동국대 불교대학원에서 「화엄교학의 무진연기」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60년 불교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그러나 스님이 교수로 부임할 무렵 불교계에서는 이른바 비구·대처 분쟁이라 불리는 큰 혼란이 발생했고, 이를 안타까워하던 스님은 ‘독자적으로 불교의 개혁과 대중화를 위해 앞장서겠다’는 발원을 세우고 모든 종단의 소속으로부터 벗어나 사단법인 ‘불교사상연구회’를 창립했다. 특정 종단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불교 본연의 가르침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스님은 우선 불교를 쉽게 전달하는 것은 대중잡지를 발간하는 것이라 판단, 1962년 월간지 『불교사상』을 발간했으며, 64년 당시 서울 을지로 5가에 위치하던 ‘통일예식장’ 건물에서 ‘불교교리 토요강좌’를 정기적으로 개최, 불교대중화를 선도했다. 특히 스승인 김동화 박사가 일본 『불교범론』을 바탕으로 저술한 『불교학개론』을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새롭게 한글로 발간한 『불교학개론』은 고봉 스님의 대표적 역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고봉 스님은 1979년 12월 4일 지병인 고혈압으로 법납 46세, 세수 61세로 입적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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