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위빠사나 수행 어느 단계서 비로소 가능한가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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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보신문
  • 승인 2006.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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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택 “위빠사나 온전한 경지 초선”주장
김재성 “주석서 잘못된 이해서 비롯”반박



조준호 박사의 문제지적에 김재성 씨의 반박으로 시작된 이른바 ‘위빠사나 논쟁’은 이후 또 다른 초기불교연구자인 임승택 박사가 가세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임승택 박사는 2002년 9월 불교학연구회에서 「선정의 문제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김재성 씨와 조준호 박사를 한꺼번에 공격했다.

임 박사는 논문에서 “위빠사나는 ‘첫 번째 선정(초선)’이전 단계에서부터 행해질 수 있으며 ‘첫 번째 선정’에서부터 ‘아무 것도 없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가능하다”며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非想非非想處定)’와 ‘지각과 느낌의 소멸’ 상태에서는 위빠사나를 행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위빠사나 수행이 온전히 진행될 수 있는 경지는 초선”이라고 단정한 뒤 “위빠사나는 어떠한 선정의 상태에서 진행되는가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굳이 A.D 5세기 이후에야 등장한 개념인 ‘찰나삼매’의 이론을 빌려야 하는가”라며 김재성 씨의 주장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이에 대해 이날 논평에 나선 김재성 씨는 한편의 논문 분량의 논평을 통해 임승택 박사의 주장의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씨는 “위빠사나가 온전히 진행될 수 있는 초선에서 모든 번뇌를 소멸시키는 것이 가장 온전한 수행의 체계가 된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의 상태가 초선에서 경험되는 선의 요소를 가지고 진행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초선이 위빠사나 수행을 진행할 수 있는 온전한 형태의 선정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오히려 초선과 동일한 심리요소를 가지고 위빠사나 수행이나 성인의 도가 진행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또 임승택 박사가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非想非非想處定)’와 ‘지각과 느낌의 소멸’ 상태에서는 위빠사나를 행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이 같은 주장은 주석서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나온 것”이라고 반박했다. 여기에 임승택 박사는 다시 논평에 대한 반론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세미나는 이렇다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후 임승택 박사와 김재성 씨는 2003년 4월 불교학연구회 월례발표회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수집과 논거로 재무장하고 다시 맞붙었다. 공격에 나선 임승택 박사는「첫 번째 선정의 의의와 위상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위빠사나의 초선이 갖는 의미와 선정 없는 지혜는 있을 수 없다”며 자신의 주장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김재성 씨 역시 “욕망, 악의와 성냄, 혼침과 졸음, 들뜸과 회한, 회의적 의심 등으로 대변되는 오개의 극복이 초선 이전에도 가능하다면, 초선 이전에 위빠사나 수행의 완전한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논쟁에서 한 발 물러서 있던 조준호 박사는 2004년 3월 열린 불교학연구회 월례발표회에서 「초기불교중심교리와 선정 수행의 제문제」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위빠사나 수행법 논쟁에 불씨를 지폈다.

조 박사는 거듭된 김재성 씨와 임승택 박사의 공격에 반격하면서 자신이 제기한 위빠사나 수행의 문제점 지적에 대한 본의(本意)가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조 박사는 논문에서 “위빠사나 수행법이 부처님 당시의 수행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소승 수행법으로 간주되는 것은 미얀마 등지를 내왕하면서 수입한 특정 부파의 위빠사나를 마치 초기 불교의 위빠사나인 양 소개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뒤 “초기불교 경전에 근거한 위빠사나 수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박사는 또 “김재성 씨와 임승택 박사의 주장 근거는 초기불교가 아닌 후대에 가미된 주석서 또는 경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초기불교의 수행법과는 거리가 멀다”고 반박했다.

‘위빠사나 수행이 어느 단계에서 가능한 가’에 대한 주제로 5년 이상 지속된 논쟁은 아직까지 끝을 맺지 못했다. 그러나 비록 결론은 내리지 못했지만 하나의 주제로 소장학자들이 지속한 이 논쟁은 ‘논쟁이 없다’는 지적을 받던 불교학계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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