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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그릇 운동’ 강사 오 정 숙 씨

기자명 법보신문

분노-열등감 다 털어내니
마음도 ‘빈 그릇’ 됐어요

새벽 공기의 차가움은 여전히 버겁다. 추위를 막아줄 번듯한 벽도 아닌 비닐하우스에서 맞는 한 겨울의 새벽은 아무래도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새벽 4시. 오정숙 씨는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몸가짐을 단정히 한다. 지난 1993년 3월 정토회 만일결사에 입제한 이후 지금까지 거르지 않고 계속해 오고 있는 새벽기도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예불과 독경, 108배를 마친 오 씨는 마음을 다해 기도문을 읽는다.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당신이 진실한 불자의 인연 맺기를 발원합니다. 제가 자비심 내어 당신을 이끌어드리겠습니다. 해탈하겠습니다.”

오 씨의 입에선 하루 종일 이 기도문이 떠나질 않는다. 차를 타거나 길을 걸을 때, 손을 놀려 무엇인가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입으로는 기도문을 쉼 없이 염송한다. 기도문은 오 씨의 발원이며 가족과 세상을 향한 감사의 표시이기도 하다.
“기도문에서 말하는 ‘당신’이란 제 주변의 모든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가까이는 내 가족이고 넓게는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죠. 그분들 모두가 불자의 인연을 맺고 해탈할 수 있도록 이끌어드리겠다는 발원이에요. 좀 거창한가요?”

빈그릇 100만 달성 이끌어

하지만 뜻이 없다면 비록 입으로만 되뇌는 발원이라도 오래 가긴 힘든 법 아닌가. 오 씨의 발원은 하루 종일 이어지고 뜻이 되고 생각이 되어 성성한 화두처럼 그의 몸 안에 가득 차 있다. 자신감과 기쁨이 엿보이는 오 씨의 얼굴을 보면 그 발원이 결코 입소리 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 씨는 지난 한 해 정토회가 진행한 ‘빈그릇 운동’ 기간 동안 전국의 초중고등학생과 군장병 등을 대상으로 펼친 빈그릇 설명회의 홍보강사로 활동했다.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학생과 장병들 앞에서 빈그릇 운동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덕분에 빈그릇 동참 100만 달성의 공로자로 연말엔 감사패도 받았다.

빈그릇 운동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강단에 오를 때 마다 오 씨는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살아온 길을 솔직히 말하면 된다. 혹 실수를 하더라도 그것이 솔직한 내 모습이기에 부끄러울 것이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많이 배우지 못한 내가 잘 못하는 것이.’

오 씨의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15일 재학이 전부다. 며칠씩 밥을 굶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어린 시절, 학교는 동경의 대상에 오를 틈도 없었다. 꼬장꼬장한 집안 어르신들이 포진하던 고향 경북 안동에서 집안의 허락도 없이 살림을 차렸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낳은 자식이 딸이었다는 이유로 오 씨는 아버지의 호적에도 오를 수 없었다. 어머니는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어린 딸과 함께 떠돌아다니며 남의 집 허드렛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남의 집 일을 해주는 처지이기에 주먹밥 한 덩이를 쥐어주면서도 어머니는 주인집 눈치를 보았지만, 혹여 일 시키는 이가 “애까지 달고 다닌다”고 구박이라도 하는 날엔 당장에 보따리를 싸서 나와 버렸다. 자연히 며칠씩 굶기도 예사였다.

“5살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며칠을 굶었는지 배가 고프다는 느낌도 없이 기운이 빠져 누워 있는데 어떤 분이 먹을 것을 주었어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얻어먹지 못했다면 지금 이 사람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르지요. 지금 내가 여러분 앞에 서 있는 것은 나에게 먹을 것을 준 사람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이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굶주려 죽어가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궁핍했던 어린시절이 내 자산

어리게는 초등학생부터 성인이라 해도 20대 초반 대부분인 군부대장병들이 오 씨의 강의 대상이다. 굶주림과는 거리가 먼 이들 세대에게 오 씨의 말은 먼 나라 혹은 먼 옛날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씨는 “숨을 죽여 가며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면서 내 이야기가 이 아이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 앞에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발가벗겨진 채 서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더군다나 오 씨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은 ‘배고픔’이었고 철이든 후엔 그 자리를 분노와 원망이 채웠다. 낳아준 어머니, 어머니와 자신을 버린 집안, 최소한의 배움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가난, 그런 자신에게 어떤 기회도 주지 않던 세상, 지긋지긋했던 가난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남편. 오 씨의 마음속엔 분노가 가득 했지만 그 밑바닥에선 분노보다 더 질긴 열등감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다. 세상을 향해 무엇 하나 당당히 내 놓을 것이 없다는 열등감은 결국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남편을 향한 화살이 되어버렸다.

“수도 없이 보따리를 쌌습니다. 안 살겠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왔는데, 친구가 정토회관에 하루 가 있으라고 하더군요. 마침 그곳에서 열리고 있던 법회에 참석했는데 법문 한마디 한마디가 제 잘못을 탓하는 말씀이었어요. 얼마나 내 자신이 부끄럽고 집을 뛰쳐나온 것이 후회가 되던지. 남편이 ‘당장 들어오라’고 호통을 치는데도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인연’ 이란 이런 데 두고 쓰는 말일지도 모른다. 끼니도 못 잇게 가난하던 어린 시절, 화를 내며 반항하는 오 씨에게 어머니는 “화가 나면 관세음보살을 입으로 되뇌라”고 일러주었다. 철이 든 후 돈을 벌겠다고 어머니 곁을 도망쳐 나왔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죽어가는 오 씨를 거둬 준 곳도 법천사라는 부산의 작은 사찰이었다.

1993년 3월 만일결사에 입제한 오 씨가 처음 받아든 기도문은 남편과 아이에 대한 참회문이었다. 그 다음 기도문은 남편에 대한 감사였다. 이유도 모른 채, 그보다는 내가 왜 참회와 감사를 해야 하는가라는 의구심만 가득 짊어진 채 기도를 시작했다. 그렇게 하기를 5년 여 즈음 지났을까. 어느 날 기도를 하던 오 씨의 눈에서 참회의 눈물이, 감사의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 가난했고 배우지 못했다는 것은 그냥 하나의 현상일 뿐이었다. 정말로 오 씨를 괴롭힌 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분노와 열등감이었고 그것이 오 씨 주변의 사람들까지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분노를 다스리는데 꼬박 10여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분노보다 오래가는 것이 열등감이더군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가 배우지 못해서’인 듯 했지요. 그런데 빈그릇 운동을 하면서 극복하는 길을 만났어요. 수십 명 앞에서 내 살아온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내가 가난을 탓하며 분노를 키웠다는 사실을, 내가 배우지 못했기에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을 솔직히 드러낼 수밖에 없었지요. 이런 사실들이 명백히 드러나는 순간 비로소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앉으나 서나 “관세음 보살”

지금 오 씨의 웃음은 그 누구보다도 밝고 건강하다. 작은 몸매와 거친 손마디가 그녀의 고단했던 삶을 살짝 내보여 주는듯하지만 굵게 잡히는 주름살도 아랑곳없이 활짝 입을 벌려 웃는 모습엔 이제 아름다움이 감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안의 분노와 원망, 그리고 부끄럽다고만 생각했던 내 삶조차 솔직히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 법을 만난 덕분이지요. 부끄러운 삶은 없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현실을 부정하려는 자기 자신일 뿐입니다.”

분노와 원망, 열등감을 떨쳐버리고 진리의 길을 찾는 그녀의 미소가 보석처럼 빛났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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