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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김양동

기자명 법보신문

시-그림-전각
글씨와 환상 조화
토속적 한국미감
단박에 느껴

<사진설명>김양동 서예가는 순박하고 빛바랜 질감을 작품에 투영시켜 왔다.사진=채한기 기자

천년의 세월
한지에 스민 듯
고졸한 멋 속엔
‘생멸’이 꿈틀


김양동은 서예와 전각, 시와 그림, 도판화 등으로 이룬 이미지를 통해 동양 문화의 사유세계, 정신과 종교를 아우르는 자신만의 표현을 추구한다. 문장과 서예, 전각과 그림이 모두 하나로 통합된 이 같은 작업의 예는 찾기 어렵다. 아울러 유. 불. 선과 동양고전문화와 전통, 그 사유의 깊이와 폭을 하나로 아우르는 작가 역시 드물다. 아직도 문인화가 가능하고 문인이 가능하다면 김양동은 그에 가장 근사(近似)한 작가일 것이다.

그러니까 근대 이후 서구를 통해 받아들인 장르로 분화되고 특화된 미술개념과 그에 기반 한 작가상에서 벗어나 통합적이고 전인적이랄까, 동양문화에서 추구하던 지식인 예술가상에 밀착된 작가라는 얘기다. 그는 동양 문화와 그 전통에 깊이 천착하면서 동시에 한국고대문화의 원형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우리문화에 대한 원형탐구를 앞서 언급한 여러 방법론으로 이미지화 한다.

<사진설명>깊은 절, 깊은 맛(古寺宥餘). 한지고지(韓紙古紙)

그의 작업은 한자문화와 모국어를 서예로 승화시키는 한편 한지와 흙, 모필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발효시켜내는 동시에 한국이라는 민족적 색깔과 풍토에 익숙한 원시적인 조형과 미감을 중후하고 침착한 표정으로 융합시켰다.

알다시피 그는 유명한 서예가이다. 서예는 원래 선비들이 개인적인 수기(修己)였다. 수양과 진리 탐구를 근간으로 한 선비들의 공부는 몸과 마음을 올바로 세우고 사물의 이치를 공부하는 것이다. 선비는 인의예지신의 도덕을 몸에 익힌 사람들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과 과장되게 스스로를 꾸미지 않는 소박함, 부드러운 인자함, 예의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선비가 지닌 미덕이었다. 학문 및 자연과 인간사에 대한 여유로운 눈길과 멋스러운 정서를 시·서·화로 형상화해내는 예술가들이기도 했다.

<사진설명>나무아미타불. 한지고지(韓紙古紙)

그가 서예에 뜻을 둔 것도 그런 연유에 기인한다. 국문학을 전공한 그가 젊어서 서예를 공부한 이유는 서예가 교양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과 중국의 고대신화, 전설, 민속, 원시신앙 및 상고시대 문학과 가사, 노장사상, 불교사상 등에서 소재를 택하여 각, 서, 화의 융합 기법을 통한 새로운 조형어법으로 개성적인 미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특히나 그는 서예유적, 석비나 마애 암각석, 화상석 등의 고대유적을 바탕으로 하며 고문자에 대한 추적을 통해서 고대문화를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자연스레 불교문화는 우리 전통문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핵심적인 매개로 다가왔다.

또한 서예를 전공한 그는 한자문화 시대가 아닌데 해석하지도 못하는 한자를 가득 채우는 작업에 고민했다고 한다. 따라서 당대의 서예가란 새로운 조형미감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갈 책무가 있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서예와 전각과 그림이 융합된 작업세계로 나가게 된 것이다. 시대적 미감을 드러내면서 현대인들의 감성에 와 닿는 작업 그러니까 서예의 현대성이 그의 과제인 셈이다. 따라서 서예와 그 밖의 요소를 혼합한다. 그러니까 효과적으로 서예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작품제작을 고민하는 것이다.

서예와 함께 전각은 그의 중요한 작업세계이다. 그는 시대변화에 적응하는 전각의 미적 전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아울러 그는 우리의 전통적인 판각문화에 주목한다. 우리 전통판화는 힘차고 옹골찬 각의 맛과 다소 거칠고 투박하지만 고졸한 멋을 한없이 풍긴다.

그러니까 그는 각, 서, 화가 삼위일체가 된 표현을 한다. 작업과정을 살펴보면 오래된 고지, 바래고 고풍스런 맛을 흠뻑 풍기는 종이를 바탕으로 한다. 도판에 예리한 선으로 새겨진 글자와 그림과 도형이 불에 굽혀지고 새겨진다. 한지와 1,2백 년 전의 오래된 조선지위에 탁본하는 식으로 두들긴 글씨나 그림이 요철화 되었다. 이 탁본의 아름다움은 먹을 두들긴 정도에 따란 생생한 품격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은연중 풍화의 맛을 자아낸다. 그는 우선 도자기를 만드는 흙으로 만들어진 도판을 설정하고 그 위에 구상해 놓은 그림을 스케치하고 새겨 넣었다.

그 도판을 초벌구이 했는데, 여기에 구워낸 도판으로 고지나 한지 위에 탁본을 한 것이다. 일종의 떠냄 기법이다. 종이가 바싹 마른 후 글씨를 써서 올렸다. 모든 작품의 바탕에는 햇살무늬, 빛살무늬가 가득 하다. 그에 의하면 빛살이란 신(神)의 고자(古字)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생명의 시원적 기호에 다름 아니다. 빛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바탕으로 이것을 영원한 화두로 삼아 작업 속에 패러디화해 내는 신화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화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작품에 일관된 주제이다. 신화를 이야기하면서 중심대상인 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고대인의 발언을 현대적으로 패러디하는 작업인 셈이다. 탁본형식으로 떠낸 그림들은 최대한 표면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서 그대로 표구를 했다. 아울러 글씨나 그림을 그리기 전에 황토나 회토를 바르기도 하는데 이는 토속적인 한국적 미감을 살리기 위한 표현방법이다. 여기서 고지나 전통한지는 질기고 내구성이 강해서 선택되었는데 이 같은 한지물성의 뛰어난 장점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양동은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미감의 특성을 고졸함에서 찾는다. 도를 닦음에 있어 졸함으로 도가 이루어지듯이 글씨를 졸함으로 이르게 되는 것, 졸한 글씨는 순박하다고 한다. 교묘함을 졸렬함으로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졸하고 순박하며 자연스럽다. 아울러 그의 작품은 지워지고 흐려지는가 하면 퇴락하고 빛바랜 자취로 물들어 있다.

그 틈 사이로 형태가 은연중 드러나고 빛살무늬나 분청의 점들이 빼곡하다. 이 흔적과 지움은 일종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이는 인간의 생명작용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생성과 소멸의 순환반복을 보여주는데 이는 다름 아니라 우주의 철리이다. 그래서 흔적과 지움에는 그러한 반복 작용이 들어 있는 것이다.

<사진설명>해인사 운(海印寺 韻). 지고지(韓紙古紙)

여기에는 불교적 이미지가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그의 상당 수 작품에는 다양한 불상 이미지가 화면에 올려져 있거나 사찰 문창살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물고기 문양, 석가세존과 여덟 분의 부처상이 분청사기의 자잘한 점들과 선비들의 간찰 형태처럼 작게 눕혀서 자연스럽게 써내려간 글자들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은은하고 빛바랜 듯한 질감과 푸근한 한지의 물성 그리고 곰삭고 익을 대로 익은 구수한 흙 맛과 색상, 졸하고 순박한 미감으로 버무려진 서체와 전각의 맛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풍기는 김양동의 작업은 그 모두를 아우르고 헤아리는 자의 시선 속에서 명멸하는 작품이며 한국적인 미의 한 자락을 유연하게 들추어내는 이미지이자 전통적인 사상과 종교의 도상이 현재의 시점에서 새롭게 환생한 것이다.
(미술평론, 경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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