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필사본 ‘화랑세기’는 진짜일까
42 필사본 ‘화랑세기’는 진짜일까
  • 법보신문
  • 승인 2006.02.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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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돈 “인명-용어 당시 표기법 아니다”주장
이종욱 “향가 수록-관직 등 기재… 진본” 반박


신라 김대문(金大問)이 화랑의 유래에 관해 적은 책으로 알려진 『화랑세기(花郞世紀)』. 이 책은 신라시대 화랑제도의 성립 및 활약상을 다뤄 화랑 본래의 모습을 가장 잘 전하는 기록으로 알려져 있지만 몇몇 문헌에서만 전할 뿐 그 실체가 발견되지 않아 그 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화랑세기』가 세간에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9년. 당시 부산의 한 가정집에서 『화랑세기』의 필사본(筆寫本)이 발견되면서부터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 ‘필사본이 후대에 제작된 것으로 원본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진위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이른바 필사본 진위논쟁이 본격적으로 학계에서 거론된 것은 1995년 4월 역사학회 월례발표회에서부터다. 이날 발표회에서 서강대 이종욱 교수는 「화랑세기연구서설-사료로서의 신빙성 확인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통해 “최근 발견된 필사본은 신라 김대문의 원본 『화랑세기』를 필사한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토론에서 서울대 노태돈 교수는 원소장자의 장서에서 이 필사본의 모본(母本)이 되는 새로운 필사본을 발견, 이를 공식 언급하면서 “이들 필사본은 1930년∼1945년 일본 궁내성 서능부(書陵部)에 근무하던 박창화에 의해 만들어진 위서(僞書)”라며 “이 책을 신라사와 화랑도에 관한 연구의 사료로는 이용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노 교수는 같은 해 6월 한국고대사연구회가 개최한 월례발표회에서 「필사본 화랑세기의 사료적 가치」라는 논문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논문에서 “△필사본에 등장하는 인명과 용어들이 8세기 중엽 이후의 표기법이라는 점, △국공(國公), 전군(殿君), 전주(殿主), 풍월주(風月主) 등의 용어는 신라말 혹은 고려시대 이후에 사용됐던 것이라는 점, △가족 규범이 어느 정도 지켜졌던 신라사회에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문란한 신라 지배층의 성관계가 묘사된다는 점등은 이 필사본이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모본 삼아 필사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노 교수는 이어 “이 필사본의 필사자로 보이는 박창화는 1889년 충북 청원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한학과 신학문을 익히고 이후 일본에 건너가 궁내성 서릉부에서 조선관련 고문헌 정리작업을 했던 인물”이라며 “이 필사본은 박창화가 일본에서 근무할 당시 신라 화랑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이해에 입각해 과거의 사실을 자기류로 재현해 보려는 창작 욕구에 의해 제작된 위작”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노 교수의 주장으로 인해 필사본 진위 논쟁은 위작 쪽으로 기우는 듯 했다. 그러나 이종욱 교수는 「화랑세기의 신빙성과 그 저술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노태돈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다시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필사본에 후대인들이 조작하기 힘든 향가가 수록돼 있다는 점, △관직, 관등, 관위가 정확히 기재돼 있는 점, △『삼국유사』와 『삼국사절요』에 궁주와 풍월주 등의 화랑관계 용어가 보여 신라 중고시대에 이미 이런 용어들이 사용됐을 것이라는 점등은 이 필사본이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만들어 졌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근친혼(近親婚)이 빈번하게 나오고 문무왕대 안길(安吉)이 차득공(車得公)에게 자신의 부인을 내주었다는 설화를 참고하면 이 필사본에 서술된 문란한 통정관계는 오히려 이 자료의 신빙성을 높여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이 같은 이종욱 교수의 주장에 김학성, 최광식, 이강래 등의 학자들이 동조하며 잇따라 논문을 발표했고, 여기에 이기동, 권덕영 등의 학자들이 반박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필사본 『화랑세기』진위논쟁을 이어갔다.

10여 년이 넘게 이 필사본의 진위를 두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이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화랑세기』의 진본을 찾는 길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권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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