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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아프가니스탄 바미얀석불

기자명 법보신문

국제사회 흥정 속에 사라진
인류 최대의 부처님

<사진설명>2001년 탈리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 바미얀석불.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안타깝게 떠오르는 불상이 하나 있다. 그건 내가 불심이 있다거나, 불교에 남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다만, 눈꼴사나운 국제정치가 어떻게 불상이라는 문화유산을 파괴시켜나가는 지를 똑똑히 보았던 탓이다.

바로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Bamiyan)석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돌이켜 보면, 1997년 9월 극단적인 이슬람논리-근본주의의 돌연변이라는 게 옳겠지만-로 무장한 탈리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할 때부터 바미얀 석불은 생존문제를 놓고 세계적인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하고 있던 내게도 바미얀석불은 중요한 사안이 되었다.

그러나 바미얀을 낀 중북부지역 전역에 전선이 형성되면서 기자들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해 현장발 뉴스를 뽑아낼 수 없었다. 그 무렵은 탈리반이 바미얀만 봉쇄했던 게 아니라, 바깥세계와 등을 돌리면서 기자들이 아프가니스탄 입국허가를 받는 일부터가 하늘의 별따기인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한 기자가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숫자에 지나지 않았다.

“석불 生死는 국제사회 몫”

자, 지금부터 우리는 인류의 문화유산인 그 바미얀석불을 어떻게 모래알로 만들어 영원히 떠나보내야 했는지를 한번 살펴보자.

1997년 탈리반이 카불을 점령한 뒤, ‘바미얀석불 파괴’ 논란을 외신 가운데 최초로 취재했던 내 노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슬람정신에 어울리지 않는 바미얀석불 같은 우상은 깨트려버려야 한다.”

탈리반이 카불을 점령한 뒤, 내가 만났던 아미르 칸 무타퀴(Amir Khan Mutaqi) 문화공보장관을 비롯해 종교장관 같은 매파들은 드러내 놓고 바미얀석불 파괴를 외쳤다.

그러나 이어지는 기록에는 전혀 다른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석불을 살리고 죽이는 건 모두 국제사회에 달렸다.”

탈리반 외무장관 모함메드 하산(Mohammed Hassan)은 노골적으로 ‘흥정안’을 내놓았다.

“이슬람은 어떤 우상도 인정하지 않지만, 국제환경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도 있다.”

물라 오말 탈리반 최고지도자의 최측근 비서이며 그이의 마음을 가장 잘 읽어낸다는 탈리반 대변인인 와킬 하흐메드(Wakil Ahmed)도 마찬가지 ‘흥정안’을 내밀었다.

그렇게 나는 당시 탈리반 지도부를 취재하면서 ‘바미얀석불 파괴’가 탈리반의 정책이 아님을 눈치 챘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아무도 탈리반의 ‘엄포’와 ‘흥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서 1998년 1월, 나는 카불을 떠나 파키스탄을 거쳐 반탈리반전선을 주도했던 북부동맹군의 일원인 헤즈비 와흐닷 이슬라미 진영의 도움을 받아 소련제 구식 헬리콥터를 얻어 타고 탈리반의 대공포를 피해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바미얀에 닿았다.

‘즐비한 사찰에 넘치는 승려들, 백성도 관리도 임금도 몸바쳐 삼보(三寶)를 받드는 땅…’

727년 붓다를 쫓아 서역 길에 올랐던 혜초 기록과는 달리, 그 바미얀은 전쟁터였다. 대석불 바로 발 밑 지하는 유류와 탄약저장고로 쓰였고, 그 머리 위에는 대공포가 얹혀 있었다.

몇 차례 지진으로 지반이 뒤틀린 데다, 1920년대 프랑스 유적조사단과 1960년대 인디아 유적보수단이 부스러지기 쉬운 사암의 특성조차 무시한 채 누수를 차단한답시고 유적에 수로를 뚫고 계단을 만들어버려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인 대석불, 그 발바닥 아래 15톤 트럭들을 바짝 들이대고 군수품을 실어 나르면서 일으키는 진동은 가슴을 아리게 했다.

탈리반과 대화 거부한 UN

그로부터 다시, 7달 뒤인 1998년 9월 바미얀을 점령한 탈리반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주장해 왔던 ‘바미얀석불 파괴설’이 농담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반쪽짜리 소석불 얼굴을 다이너마이트로 깨뜨리고 그 사타구니에 로켓포를 쏘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엄포’라고만 여겼던 국제사회는 잠시, 아주 잠시 흥분하는 듯 하더니 곧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탈리반 지도부는 “소석불 헤꼬지는 지도부의 명령이 아니었다”고 발뺌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흥정’ 강도를 높였다.

탈리반이 내건 그 ‘흥정’이란 건 간단했다. 영토의 94% 이상을 점령한 실질적인 아프가니스탄 주도세력이니 국제사회가 자신들의 합법성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조랑말 몇 마리만 남은 랍바니 전대통령을 합법정부라 여겼고 유엔의석에는 여전히 랍바니의 대표가 앉아 있었다. 그렇게 국제사회는 탈리반을 대화상대로마저 인정하지 않았다.

2001년 2월로 접어들면서부터, 카불 쪽에서 본격적인 엄포가 터져 나왔다.

“최후통첩이다. 바미얀석불을 머잖아 파괴시킬 것이다.”

그래도 ‘간 큰’ 국제사회는, ‘문화적인’ 국제사회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이어 미국이 유엔을 윽박질러 대 아프가니스탄 봉쇄결정을 내리고 하루 만인 2001년 2월 26일, 지난 5년 동안 석불을 놓고 이리저리 재던 물라 오말이 “우상을 인정할 수 없다. 율법에 따라 불상을 모조리 박살내라”고 교령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제서야 ‘문화적’인 국제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이 놀라움, 이 무기력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유네스코 사무총장 고이치 마츠우라가 침통한 표정으로 성명서를 읽어 내려가자, 앞서거니 뒷서거니 각국 정부와 관련단체들도 다투어 성명을 쏟아냈다.

“인류의 문화재산을 파괴시키지 마라” “인류와 역사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한술 더 떠, 영국 대영박물관과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그리고 대만 고궁박물관은 “석불 유적을 부수느니 차라리 팔아라”는 희한한 제안을 내놓기까지 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지점은 물라 오말이 교령을 내리고부터 석불파괴까지에는 또 2주일이라는 시간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유네스코 직원을 물라 오말에게 파견하는 식으로 받아쳤다. 물라 오말의 탈리반이 바미얀석불을 놓고 5년 동안 벌인 ‘흥정’이 기껏 유네스코 직원을 만나겠다는 게 아니었다. 이건 정치적 흥정을 원하는 상대에게 문화단체 대표를 파견한 꼴이었다. 말할 나위도 없이, 물라 오말은 그 유네스코 직원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석불 팔아라” 희안한 제안도

<사진설명>바미얀석불로 향하는 탱크. 정면에 보이는 산에는 파괴되기 전의 바미얀석불과 수도자를 위한 수많은 암벽동굴이 보인다.

이런 과정을 놓고 보면, 5년 동안 국제사회는 바미얀 석불유적을 구출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었다는 뜻이다. 국제사회가 탈리반을 합법정부로 인정하든 않든, 적어도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리반을 대화상대로는 인정했어야 옳았다는 뜻이다.

해서 나는 바미얀석불파괴 과정을 취재하면서, 파괴자 탈리반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모두 공범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야 마땅하다고 여겨왔다. 돌이켜 보면, 탈리반이 원했던 ‘흥정’과 차이가 나고 또 국제정치 야심과도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적어도 아시아의 불교국가들만이라도 연대해서 일찌감치 바미얀 석불보호에 나섰더라면 하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불심은 늘 현실과 멀어도 한 참 먼 곳에 있었던 모양이다. 가고 없는 석불을 놓고 땅을 친들 무엇 하랴만은, 이런 종교적 편견이 서린 의문은 남는다.

“만약, 그게 기독교유적이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국제사회가 눈도 깜빡하지 않았을까?”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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