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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재원이 미얀마식 출가 ‘신쀼’ 하던 날

기자명 법보신문

“나이는 어리지만 여엿한 수행자입니다”

꽃샘 추위가 다시 맹위를 떨치던 2월 5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 미얀마 선원(주지 산디마 스님)에 화사한 웃음꽃이 만발했다. 11살 재원이(본명 허재원, 경남 합천군 가회 초등학교 4년)를 위한 빅 이벤트, 즉 단기출가 의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는 미얀마 전통적 출가 의식인 ‘신쀼’로 이뤄졌다. ‘신쀼’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유성출가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남방 불교의 독특한 출가 전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유행처럼 동자승의 단기 출가가 이뤄지고 있지만, 미얀마의 ‘신쀼’는 출가와 동시에 스님이 되는 말 그대로 출가 의식이다. 따라서 재원이는 이날 ‘신쀼’를 통해 사미계를 받고 수행자로 첫발을 디디게 될 것이다.

화려한 치장 부처님 유성출가 본떠

<사진설명>출가 의식 전 화려하게 치장한 재원이

‘신쀼’가 있던 이날, 미얀마 선원의 풍경이 우리에겐 이채롭다. 출가 의식에서 볼 수 있는 깊은 침묵과 무거운 고요, 인연있는 이들과의 눈물 바람이 없다. 마치 축제를 여는듯 미얀마 전통 악기 사웅의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화사한 웃음과 가벼운 담소만이 선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오늘은 재원이가 부모님께 가장 큰 효도를 하는 날입니다. 재원이의 출가로 부모님 또한 석가족의 일원이 되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산디마 스님의 설명에 미얀마 출가 전통의 의미가 비로소 이해된다. 버리고 끊는 것에 익숙한 우리와 달리 미얀마의 출가 의식은 얻음으로 시작된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성불의 열쇠를 얻고, 모든 이들의 복전(福田)되는 즐거움의 연속이다. 참석 대중 또한 인천(人天)의 스승을 배출하는, 공덕을 쌓는 일이기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다. 이런 것을 접어두더라도 겨우 11살 재원이에게 버릴 것이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이런 연유로 미얀마 노동자들은 노곤한 삶을 위로할 유일한 휴일임에도 전통 의상을 곱게 입고 행사에 참석했고, 주한 미얀마 대사 내외도 어려운 시간을 할애해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음식과 공양물, 불자들과 원각사탑으로

<사진설명>무등을 타고 탑골공원으로

‘신쀼’ 의식은 부처님께 출가 소식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장소는 탑골 공원의 원각사 10층 석탑. 어느 탑이든 부처님의 위신력이 깃들지 않았으랴만은 원각사탑을 굳이 선택한 것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탑의 의미를 남달리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행은 미얀마 선원을 출발, 탑골 공원으로 향했다. 재원이는 하얀 미얀마 전통 의상에 녹색과 분홍, 황금색의 보관과 장식물로 치장하고 얼굴과 입술에 붉은 연지를 발랐다. 출가 전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 따른 것이다. 탑골공원 가는 길에 재원이는 무등을 탔다. 부처님의 유성출가처럼 말을 타야 하지만, 사람이 말을 대신한 것이다.

탑골 공원으로 향하는 행렬은 장엄했다. 부처님께 올릴 쌀과 과일 등 공양물이 줄을 잇고 무등을 탄 재원이가 뒤를 따랐다. 산디마 스님과 3분의 태국 스님, 그리고 재원이 고모와 고모부, 큰 아버지, 미얀마 노동자들이 길게 꼬리를 이어 행렬을 이뤘다.

안국동, 인사동, 낙원상가, 탑골 공원으로 이어진 이색적인 행렬에 시민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일행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특히 화려하게 치장한 재원이의 모습이 신기했는지, 이내 휴대폰과 디지털 카메라를 꺼네 사진을 찍기 바쁘다.

팔리어로 수계…가사 입고 수행자 새 출발

<사진설명>부처님께 향을 바치고

원각사탑에 도착하자, 법석이 마련되고 스님들의 끝없는 축원이 이어졌다. 탑을 세 번 돌며 부처님께 재원이의 출가를 알린 뒤, 팔라어로 이뤄진 염불은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은 장중하면서도 묵직한 음률로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탑골 공원 안은 차가운 바람이 칼날이 되어 불었다. 그러나 얇은 가사와 전통 의상에, 맨발의 스님과 미얀마 노동자들은 행사 내내 경건함을 잃지 않았다.

탑을 감고 있던 실의 한 가닥이 재원이의 손목에 묶이는 것으로 탑 앞에서의 일정이 끝나자 선원에서 본격적인 출가 의식이 시작됐다.

“나는 몸과 마음과 입으로 지은 죄를 참회합니다 어리석은 제 마음을 참회합니다. 지금부터 구업, 신업, 의업의 삼업을 짓지 않겠습니다”

간간이 한국말이 섞였지만 만트라같은 팔리어로 계율이 설해지고 재원이는 이를 한알 한알 힘겹게 따라했다. 삼보에 대한 귀의. 사미 10계. 계와 함께 재원이가 배워야 할 수행 방법들이 연이어 설해지는 동안 화려한 옷차림의 재원이는 사라지고 어느덧 삭발에 가사를 입은 앳띤 사미승이 놓여있다. 사마네라(사미) 냐냐. 냐냐는 앎과 지혜의 의미로 산디마 스님이 직접 고른 법명이다. 이윽고 출가를 후원했던 고모와 고모부가 재원이의 부모를 대신해 사미승 냐냐에게 삼배를 한다. 인천의 스승으로서 성심을 다해 받들겠다는 의미다.

법명은 ‘냐냐’…그래도 출가생활은 한국에서

<사진설명>고모와 고모부에게 삼배를 받는 냐냐 스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머리카락, 피부, 뼈를 포함한 몸은 살아있거나, 죽어있거나 관계없이 항상 변하고 있습니다. 이를 잘 알고 열반을 위해 노력하도록 하십시오”

축원이 끝나자 냐냐 스님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피어난다. V(브이)자를 그려보는 폼이 영락없는 11살이다. 스님은 개학 전까지 2주간 미얀마 선원에서 예불과 명상, 계를 지키며 생활해야 한다. 그러나 산디마 스님의 바람은 냐냐 스님이 선원에서 계속 수행자로 남았으면 하는 것이다.

“냐냐 스님, 앞으로도 계속 스님으로 계실거지요”

“예전에는 스님이 될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이제는 하고 싶어요. 그래도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에서 했으면 좋겠어요”

대답이 진중하다. 동심을 벗고 출가 수행자의 위의가 드러나는 것 같아 가슴 한켠이 뭉클하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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