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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히에이잔 엔랴쿠지 시키코오도오(四季講堂)

기자명 법보신문

눈 속에 터진 꽃망울, 여래장을 설하다

<사진설명>료겐 스님은 천황의 명을 받아 이곳 시키코오도오(四季講堂)에서 매 계절마다 법화경을 설했다. 이곳은 스님의 별칭인 원삼대사당(元三大師堂)이라고도 불린다.

끝없이 내리는 새하얀 눈꽃들로/우리 걷던 이 거리가 어느새 변한 것도 모르는 채/환한 빛으로 물들어 가요.

일본의 겨울은 참으로 묘연(妙然)하다. 겨울과 봄의 풍경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설산 속에서 새순이 움트고 겨울바람이 가장 매서운 시기에 봄의 태동은 이미 동토(凍土) 위로 드러난다. 눈 속에 드러난 꽃망울을 보고 있노라니 나카시마미카의 ‘눈의 꽃(雪の華)’이 떠오른다. 잠시 감상에 젖어 그 노래를 가만히 읊조려 보았다.

예외 없이 히에이잔에도 ‘눈의 꽃’은 대지위로 뜨거운 생명력을 터트리고 있다. 요카쿠 지역에 위치한 시키코오도오(四季講堂)에 들어서자 산더미처럼 쌓인 눈 위로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덩그러니 서있다. 눈 더미 속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삐죽 가지를 내민 나무에는 아기 손톱만한 꽃망울이 올라오고 있다. 어느 것이 꽃이고 어느 것이 눈인지 모를 아름다움은 차갑게 얼어가던 심장에 뜨거운 불꽃을 당긴다. 저 눈 속에 생명이 담긴 것일까. 아니면 저 생명 속에 눈이 담긴 것일까.

966년 히에이잔에는 엄청난 화재가 발생했다. 토오토오 지역의 강당·문수루·사왕원·연명원·법화당 등 30여 채에 달하는 당우가 모두 불에 탔고, 엔랴쿠지는 폐허지경에 이르렀다. 일본 최고의 수행처로 자리 잡은 히에이잔과 천태교학의 본거지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한 것이다.

<사진설명>엔랴쿠지에 소장된 자혜대사좌상(慈惠大師坐像). 스님은 입적후 자혜대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일본 국보.

당시 18대 천태좌주로 주석하고 있던 료겐 스님(良源, 912∼985)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 바로 히에이잔의 재건임을 깨달았다.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한 스님은 조정의 지원을 받는 한편 지역 스님들과 전국 불자들의 보시를 요청해 히에이잔의 법당들을 하나씩 재건해갔다. 하지만 법당만 다시 세운다고 해서 엔랴쿠지가 재정비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 스님은 교(敎)와 율(律)이 살아있는 승가를 구성하는 것이 바로 엔랴쿠지의 재건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했다. 이에 료겐 스님은 스님들에게 교학을 장려하고, 승가의 계율을 강화하는 작업에 나섰다. 동시에 경제적인 기반 확충에 심혈을 기울여 황실과 귀족들의 보시를 이끌어내 히에이잔의 재정적 토대를 안정시켰다. 스님의 히에이잔 재건 추진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당시 스님의 제자들이 무려 3000여명에 달했다고 하니 그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스님의 활약상은 후대에 전설이 되었다. 그런 스님이 훗날 천태종의 중흥자로 추앙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일본의 불교설화에는 유독 료겐 스님과 관련된 일화들이 많이 남아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설화집 『금석물어집(今昔物語集)』에는 료겐 스님과 관련된 설화가 자주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텐구(天狗) 설화다. 스님이 『법화경』을 강설했다고 전해지는 시키코오도오(四季講堂) 앞에는 스님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 서있다. 그런데 이 비석의 맨 위에는 못생긴 요괴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비슷한 텐구(天狗)다.

비문에 따르면 984년 일본 전역에 역병이 유행하고 역병의 신이 배회해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다. 이때 료겐 스님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큰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비추고 고요히 선정에 들어갔다. 스님의 모습은 점점 바뀌어 뼈만 남은 귀신의 모습으로 변했다. 여러 제자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 단 한 명 묘우후아자리(明普阿 梨)만이 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님은 그 형상을 판목으로 만들어 부적에 인쇄하도록 하고 이를 각 집 대문에 붙이도 록 지시했다. 이 부적이 붙어있는 곳에는 병마가 무서워 다가가지 않아 모두 재난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1000년간 일본인들은 이 부적을 쯔노다이시(角大師)라고 부르며, 모든 병과 재난을 피할 수 있는 영험 있는 것으로 믿어왔다. 이 설화는 료겐 스님에 의해 완성된 본각사상이 민간의 신앙과 결합하면서 생긴 이야기로 여겨진다.

10세기경 일본 천태종이나 진언종에서는 불보살을 본래 모습인 혼지(本地)로, 신을 임시방편의 모습인 스이작쿠(垂迹)로 간주하고, 불보살들이 신의 모습으로 일본인들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본지수적설이 크게 유행했다. 이런 현상은 일본인들의 사유 깊숙이 박힌 자연신에 대한 경외감 때문일 수도 있겠고, 사이초-엔닌-료겐으로 이어지는 천태본각사상의 영향이랄 수도 있겠다.

사이초에 개창된 천태종은 엔닌과 엔친에 의해 새롭게 주목받던 밀교와 융합해 일본식 천태본각사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밀교의 주요 골자인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 같은 사상은 10세기경 일본에 유입되면서 모든 사물에 불성이 있다는 극단적인 단계, 즉 본각사상으로 발전했다. 이 본각사상이 초목성불설(草木成佛說)로 이어진다. 료겐 스님이 제자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소모쿠홋신슈교조부쓰기(草木發心修行成佛記)』에는 “초목은 이미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사상을 갖는다. 이것은 곧 초목 발심·수행·보리·열반의 모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본각사상은 인간의 본래 심성에 대한 불성의 발견을 모든 만물로까지 확장한 것이다. 모든 사물이 신격화된다. 이 본각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조차 불성의 발현이다.

이러한 초목성불설은 이미 헤이안 시대의 안넨 스님 때부터 싹트고 있었지만 료겐 스님 대에 이르러 완성된 것으로 평가된다. 있는 그대로의 구체적인 현상세계를 그대로 깨달음의 세계로 긍정하는 사상은 초목성불에 한정되지 않고 더 넓은 저변을 갖는 것으로, 특히 고대 말기부터 중세에 걸쳐 일본 천태종에서 크게 발전했다. 그리고 이 사상은 다른 종파뿐만 아니라 후대 문학·예술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후대인들은 엔랴쿠지를 중흥시킨 료겐 스님을 바로 사이초 스님의 환생, 혹은 석가모니의 환생으로 묘사하고 있다. 반면 『보물집』,『비량산고인영탁』, 『십훈초』에서는 스님의 모습이 히에이잔에 대한 집착, 욕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엔랴쿠지 재건 과정에서 스님이 보여준 황실·귀족들과의 결탁, 타협도 불사하는 히에이잔에 대한 재건 의지가 후대인들로 하여금 스님을 정치적인 수완가로 낮춰 평가하는 여지를 남긴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어쨌든 료겐 스님의 삶은 후대인들에게 전설로 남았다. 어떤 이들은 그의 삶에서 희망 혹은 구원을 발견했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 스님은 정치적 수완가이자 번득이는 야심가 혹은 엔랴쿠지에 대한 욕망으로 똘똘 뭉쳐진 원혼의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했던 것이다.

<사진설명>료겐 스님 비석. 1000년간 일본인들은 료겐 스님의 설화에 등장하는 텐구가 그려진 부적을 쯔노다이시(角大師)라고 부르며, 모든 병환을 피할 수 있는 영험있는 것으로 믿어왔다.

료겐 스님의 사상은 일본에서도 본격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 상태라 그의 삶을 어느 한 측면에서 조명하기란 꽤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엔랴쿠지의 사적에서 혹은 사람들에게 구전된 설화를 통해 만나본 스님의 행적은 일본애니메이션 ‘모노노케히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모노노케히메’에서 시시가미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진 산에게 아시타가는 말한다. “시시가미는 절대 죽지 않아. 왜냐하면 시시가미는 생명 그 자체니까. 시시가미는 생명과 죽음 모두를 가지고 있어. 시시가미는 내 귀에다 대고 ‘살아야 돼’라고 속삭였어.”

료겐 스님이 설한 것처럼 초목에도 불성이 있다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부처라는 존재는 결코 삶과 유리된 존재가 아님이 분명하다. 만화에 등장하는 시시가미는 본지수적설에 등장하는 수적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시시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네 일상이 모두 부처님의 현현이라고 한다면, 눈앞에 보이는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귀에 들리는 새 울음이나 벌레의 소리도 그대로가 부처의 현현이 아니겠는가.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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