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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우지(宇治) 뵤도인(平等院)

기자명 법보신문

봉황의 날개 드리운 아미타 세계

<사진설명>뵤도인 봉황당의 그림자가 검고 푸른 연못위에 드리워져 있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는 이곳은 일본 10엔짜리 동전의 모델이기도 하다.

교토 동남쪽에 위치한 차(茶)의 도시 우지(宇治)에 들어서노라니 어느덧 해는 저물어 도시 전체에 땅거미가 드리우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의 하나로 꼽히는 뵤도인(平等院) 봉황당(鳳凰堂)을 제대로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조바심에 발걸음이 절로 빨라진다.

뵤도인 경내로 들어서니 봉황당의 모습이 시나브로 희미해져가고 있다. 다행히 연못의 수면은 잘 닦인 청동거울처럼 검은 빛을 더해 외려 1000년 된 건물의 정경을 선명한 한 폭의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봉황이 우아하게 날개를 펼친 듯, 검푸른 연못에 고즈넉이 자태를 드리운 봉황당은 마치 아미타 부처님의 세상을 드러낸 듯 감동을 자아낸다.

‘후지와라 시대’로 일컬어지는 헤이안 말기에는 아미타당을 본당으로 하는 사원들이 유독 많이 건립됐다. 당시 일본인들이 현세의 부처 석가모니보다 내생의 서방정토에서 만날 아미타불을 더욱 간절하게 염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10∼11세기경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말법 시대’라고 여겼다. 지금의 연대 추정으로 계산하면 부처님은 2천6백 년 전쯤 태어나셨지만 당시 중국과 일본 사람들은 주 목왕 53년, 그러니까 임신년(기원전 949년)에 부처님이 입적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는 당나라 사람들이 도교를 창시한 노자보다 부처님이 더 일찍 태어났다고 주장하기 위해 만들어낸 설이다. 이 목왕임신년설에 의하면 1052년은 말법 제1년에 해당되는 해이다. 말법시대란 부처님이 입멸하고 2000년이 지나면 붓다의 가르침은 남지만 수행이나 깨달음은 없게 된다는 이른바 암흑의 시대를 일컫는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를 전후로 일본에서는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천태좌주 자리를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던 엔랴쿠지와 온조지 스님들이 요리미치 저택까지 쳐들어올 정도로 권력다툼에 열중했던 때도 이 무렵이다. 말법 1년에는 천황의 섭정 후지와라 미치나가가 지상에 아미타세계를 재현하듯 온갖 정성을 다해 조성한 호조지(法成寺)와 하세데라(長谷寺)가 큰 화재로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전역에 역병이 돌았고, 자연히 민심은 흉흉해져 갔다. 사람들은 이것이 분명 ‘가르침은 있지만 수행도 깨달음도 없다’는 말세의 징후라고 믿었다. 세상에 희망보다는 고통과 절망,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더욱 짙게 드리워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던 것이다.

당시 출세간, 세간을 불문하고 사람들의 불안감은 상당히 고조됐던 것으로 여겨진다. 히에이잔에서는 스님들이 서로의 임종 때에 극락왕생 발원을 해주기로 약속하는 염불결사가 결성되었고, 민중들 사이에서도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둔세승들의 염불신앙이 크게 유행했다. 귀족들은 다음 생에 아미타 부처님의 땅, 극락세계에 태어나길 발원하며 아미타당을 본당으로 하는 사찰을 다투어 세웠다. 말법 2년이 되는 해(1053년)에 지어진 뵤도인 또한 후지와라 가문이 아미타 정토왕생을 발원하기 위해 지은 사찰이다. 뵤도인은 원래 후지와라 미치나가(藤原道長)의 별장으로 지어진 건물을 그의 아들 후지와라 요리미치(藤原賴通)가 1053년 사찰로 만든 것이다. 이 절의 본당인 아미타당과 양 옆 누각(翼樓)이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형상 같다고 하여 봉황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봉황의 날개 속으로 파고들 듯, 아름다운 그림자를 드리운 아미타당으로 들어섰다. 아미타당 벽면엔 금방이라도 하늘로 솟구칠 듯한 비천상들이 악기를 들고 아미타 부처님을 찬탄하고 있다. 봉황당 북쪽 문에는 아미타불이 보살과 비천들에 둘러싸여 중생을 구원하러 지상으로 내려오는 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가 그려져 있다. 이는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설명하신 불국토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아미타경에는 “그 불국토에는 약간의 바람이 불어도 보석으로 장식된 가로수와 나망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데 그것은 마치 백 천 가지 악기가 합주하는 것과 같으며, 이 소리를 듣는 사람은 모두 절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생각하며 스님들을 생각할 마음이 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거울같이 잔잔한 연못에 아름다운 모습을 드리운, 그래서 차마 발길 돌리기 아쉬운 봉황당을 뒤로 하고 이 절의 보물들이 모여 있는 호모쓰칸(寶物館)으로 발길을 옮겼다.

현대식 건축으로 지어진 호모쓰칸은 천년 고찰의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인지 사찰 경내에서는 보이지 않는 후원에 지어졌다. 비록 현대식 건축으로 지어졌지만 건축에 문외한인 나의 눈에도 봉황당에 버금갈 정도의 아름다운 전경과 내부 인테리어를 갖춘 명물로 보인다.

지하로 내려가는 아이보리 빛 계단 하나하나마다에 아름다운 조명이 설치돼 있고, 유리로 된 벽면은 마치 자연 속에 건물과 나와 내부 전시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지하 수장고로 들어서자 명암의 강약과 세련된 유물 배치는 진품 비천공양보살들이 역동적으로 날아오르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 느낌은 마치 아미타 세계로 왕생한 것 같은 감동 그 자체이다.

이곳 호모쓰칸에는 범종을 비롯한 4점의 국보를 비롯해 여러 점의 보물들이 소장돼 있다. 그런데, 범종을 보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한국의 종과 마찬가지로 청동 재질에 여러 개의 종두를 달고 있지만, 몸체에 새겨진 비천상은 한국 에밀레종이나 상원사 동종에 등장하는 비천상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분명 이곳의 비천상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땅으로 내려오는 동작을 취하고 있다. 에밀레종이나 상원사 범종에서 볼 수 있는 비천상들이 하늘로 승천하는 깨달은 이의 모습이라면, 일본 범종에 나타난 비천상은 중생 구제를 위해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보살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특히 이 종의 비천상은 손에 연꽃을 들고 있는데, 이는 『정토삼부경』에 등장하는 연꽃을 형상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토삼부경』에 따르면, 서방정토에는 중생의 공덕으로 자라는 연꽃이 있는데 이 연꽃이 피어야 비로소 보리심을 발할 수 있다. 그런데 활짝 핀 연꽃을 보살이 직접 가져다주기까지 하니, 이 범종 소리에 어느 뭇 중생인들 서방정토에 나지 않을 수 있으랴.

<사진설명>뵤도인 동종에 새겨진 비천상이 연꽃을 들고 중생계로 하강하고 있다.

땅거미가 제법 진하게 드리워진 길을 따라 우지 강가로 나갔다. 이곳에는 우지 지역에 처음으로 차를 전파한 에이사이(榮西) 스님을 기린 탑이 세워져 있다. 중국 유학을 마치고 차 종자를 들고 돌아온 에이사이 스님은 우지 지역으로 건너와 차를 전파했다고 전해진다. 에이사이 스님은 일본 최초의 선종 사찰을 건립한 임제종의 종조이기도 하다. 당시 우지 사람들은 우지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있었는데, 스님은 이들에게 살생을 하는 대신 차를 덖어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다시 말해 팔정도의 정업(正業)을 가르치신 셈이다. 에이사이 스님은 우지 사람들의 어망 도구를 모두 거두어 강가에 묻었는데, 후대 사람들이 바로 그 자리에 스님의 공덕을 기리는 탑을 세웠다. 오늘날에도 일본의 차인들로부터 가장 선호되는 우지차의 역사에는 이렇듯 불살생의 가르침이 깃들어 있다.
우지 강변을 뒤로 하고 다시 교토로 차머리를 돌릴 무렵, 주변은 프러시안 블루로 찍어낸 우키요에(일본 근세에 유행한 목판화)의 한 장면처럼 푸른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검푸른 빛으로 물들어가는 세상은 몇 시간 전에 본 뵤도인의 아미타내영도처럼 희미하다. 나의 눈에 보이지 않기로는 이곳 속세도 저곳의 아미타 정토도 매한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에 씁쓸한 미소를 지어본다. 그러나 저러나, 아미타 부처님 나라에서 커가고 있을 나의 연꽃은 지금쯤 얼마나 자랐을까. 그 연꽃이 나의 손에 쥐어질 날이 과연 올 수 있기는 한 걸까. 우지시를 빠져나오는 나의 상념이 푸른 적막함 속으로 촉촉히 젖어 들고 있다.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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