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1 나라 사이다이지(西大寺) 下

기자명 법보신문

700년 전 열도에 울려퍼진 ‘생명의 노래’

<사진설명>사이다이지 경내의 작은 연못위로 이름모를 꽃이 붉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어디선가 하이쿠 작가 바쇼가 나타나 ‘오래된 연못이여!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를 읊조릴 것만 같다.

지나간 것도 아름답다/ 이제 문둥이 삶도 아름답다/ 또 오히려 문드러짐도 아름답다//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고/ …… 꽃같이 서러워라
-한하운의 ‘생명의 노래’ 중에서

사이다이지 연못에 드리운 연둣빛 버들가지를 바라보며 한하운 시인의 ‘생명의 노래’를 읊조린다. 어디선가 닌쇼 스님이 이 노래를 듣고 있을 것만 같다. 700여 년 전 당신이 가슴으로 불렀던 ‘생명의 노래’를 듣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온 나의 목소리를….

중세 일본에서는 문둥병(한센병) 환자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존재로 여겨졌다. 하긴 중세 서양에서는 문둥병 환자를 심지어 화형에 처하고, 한국에서도 근대까지 문둥병 환자들이 마을 어귀에 나타나면 돌로 쫓아냈을 정도니, 문둥병 환자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혐오의 대상이자 공공의 적이었다. 특히 중세 일본 사회에서는 손가락 발가락이 툭툭 떨어져나가고 얼굴이 뭉개지는 문둥병을 전생 혹은 현세의 악업에 의해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벌이라고 믿었다. 이름 하여 불벌관(佛罰觀)이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은 문둥병 환자에게 자비의 손길을 펼친 스님들이 700여 년 전 사이다이지에 주석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보살승이라 칭하며 복지사업에 앞장섰던 사이다이지의 에이손 스님과 그의 제자 닌쇼 스님이 그 주인공이다.

에이손과 닌쇼 두 스님은 문둥병 환자는 물론 거지와 몹쓸 병에 걸린 환자 등 중세 이래 ‘사람도 아닌 존재’로 일컬어지던 사람들(非人, 중세에 가장 천민시 되었던 계층)을 ‘문수보살이 짐짓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 여기며 구제에 나섰다.

기존 교단의 타락에 반발해 둔세승이 된 에이손 스님은 스스로를 보살승이라고 자처하며 사회복지사업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고, 에이손 스님의 뜻을 이어받아 사회사업을 더욱 발전시킨 이가 닌쇼 스님(忍性, 1217∼1302)이었다.

닌쇼 스님은 16세가 되던 해인 1232년 나라 가쿠안지의 관승으로 출가했다. 하지만 곧바로 관승체계에서 이탈한 스님은 사이다이지로 건너와 에이손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닌쇼 스님은 에이손 스님을 따라 나라와 가마쿠라 등지를 돌아다니며 한센병 환자를 구제하고 도로, 항만, 다리를 건설하는 등 스승의 사회구제 사업을 이어가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닌쇼 스님은 고름이 툭툭 떨어지는 문둥병 환자들을 약탕(藥湯)에 들게 하여 직접 그들의 환부를 씻어주고, 밥을 먹여주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들에게 불교를 가르치고 계율을 지키며 살아갈 것을 권장했다. 또한 문둥병 환자들 중에서도 비교적 신체가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도로나 다리 수리 등을 돕도록 권했다. 지금도 문둥병 환자들을 소록도라는 작은 섬에 가두다시피 하는 우리네 현실과 비교해 볼 때 스님의 활동은 놀라우리만치 숭고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닌쇼 스님의 활동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당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가마쿠라 막부에서조차 율승들의 활동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전했다. 스님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율승들은 가마쿠라 막부의 보호를 받으며 와카에·무쓰라를 비롯한 가마쿠라의 항만 관리를 맡았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스님들이 사회복지사업에 적극 나선 것은 에이손과 닌쇼 스님의 이런 활동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일본인들이 닌쇼 스님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두 개의 닉네임을 언급하곤 한다. 하나는 가마쿠라 시대를 대표적인 율승이라는 호칭이며, 또 하나는 일본의 마더 테레사라는 것이다.

흔히 계율과 보살행의 합일로 설명되는 스님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당시로서는 누구도 할 수 없었던 보살행을 펼친 배경에는 물론 종교적 신념도 있었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가마쿠라 시대를 대표하는 율승 닌쇼 스님은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것일까. 그가 추구했던 계율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승가 바깥에서 보살이 되는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일까.

율승이라 하면 으레 율원에서 승가와 재가의 규칙을 제정하고, 도덕적 가치로 인간의 삶을 재단하는 원칙주의자의 모습으로 인식해온 내겐, 계율과 보살행은 곧바로 연결시키기 힘든 별개의 것들일 뿐이다.

연못에 드리운 붉은 꽃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골똘한 생각에 잠겨 한참을 보냈을 즈음, 에이존 스님이 도다이지 앞에서 맹세했던 서원이 보살승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오른다.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구제해야 하는 자리이타의 실천이 진정한 출가자의 도리라 확신했던 에이손 스님을 떠올리니, ‘계율과 보살행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바로 자비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수행자가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행동규범인 계율. 사실상 계율은 그 자체가 부처님의 가르침이기에 앞서, 계율을 지킴으로써 정과 혜가 성장하고 비로소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는 필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계율을 지킴으로써 고요함, 지혜가 드러나고 이를 통해 여래장을 발견하는 과정 속에서 수행자는 중생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유마거사를 시름시름 앓게 만든 병의 원인일 것이며, 중생들이 울고 있는 가운데 홀로 해탈의 단계에 머물 부처는 없다는 대승불교의 근본 가르침이기도 할 것이다.

대승불교에 있어서 계율은 어쩌면 뗏목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 뗏목을 통해서 욕망의 소유자인 중생들도 정토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소유론적 욕망이 존재론적 원력으로 승화되는 나룻배가 곧 계율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 나룻배를 통해 건너간 땅은 모든 것이 소멸된 폐허가 아니라,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플 수밖에 없는 자비심의 원천이다. 결국 중생의 아픔을 감싸 안음으로써 보살은 보살이 될 수 있으며, 중생을 모두 구제한 다음에 성불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닌쇼 스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문둥병 환자들을 문수보살로 설명한 이유도 이런 흐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문둥병 환자를 지혜의 좌표이자, 선재동자를 화엄의 세계로 인도한 스승 문수보살로 표현한 것은 닌쇼 스님 자신에게 있어서 그들이 마음 속 미망을 거두어 지혜를 발하게 하고, 여래장을 드러나게 한 최고의 스승이었음을 표현한 것일 지도 모른다. 닌쇼 스님에게 있어 최고의 계율은 바로 중생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실천이었던 것이다.

<사진설명>사이다이지의 애염당(愛染堂). 더러움을 사랑하는 집이라는 이 건물의 이름은 문둥병 환자를 손수 씻어준 닌쇼 스님에 대한 찬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사이다이지를 다녀온 날 밤,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긴 여행의 여독을 풀었다. 아마도 닌쇼 스님이 문둥병 환자를 치료한 곳 또한 이곳 나라 인근의 어느 온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문둥병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씻어준 것은 온천수에 녹아있는 유황 성분이 아니라 스님의 마음이었을 것이리라.

몸속에서 생겨난 나병균에 일그러지고, 사람들에게 맞은 돌팔매로 마음마저 뒤틀려가는 이들의 몸을 쓰다듬으며 ‘너희 또한 부처님의 근기를 타고 난 불제자들이니 계를 받고 불법을 수지하라’는 스님의 가르침에 피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있었을까. 비록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짐승일지라도, 산천에 제멋대로 피어난 초목일지라도 그 가르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들은 온전한 몸과 온전한 마음을 간직한 채 손발이 일그러지지 않아도 되는, 또 사람들로부터 저주받지 않을 서방정토를 향해 행복한 마음을 품고 떠났을 것이다.

‘보살이 되려면 보살의 행동을 하라.’ 어디선가 얼핏 들었던 말을 읊조리며 나는 유황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물속으로 깊숙이 몸을 숨겼다. 이 온천물이 긴 여정에 지친, 그리고 무상함에 스러져 가는 나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길 바라면서….

takhj@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