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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불교 도래지 미힌탈레

기자명 법보신문

“마힌다 언덕 위에서 왕이 귀의하셨도다!”

<사진설명>미힌탈레 지역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산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마하세야 다고바다. 부처님의 머리카락이 봉안돼 있다는 이 순백의 탑은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루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오늘 하루도 어지간히 덥겠다. 이제 겨우 오전 6시를 넘어섰는데, 차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제법 따갑다. 새벽 5시 전에 얼굴을 내미는 스리랑카의 태양은 이곳이 적도임을 각인시키려는 듯 7, 8시만 넘으면 벌써 위세가 등등해진다. 낮에는 30도를 훌쩍 넘어서는 기온에 내려 찌르는 듯한 햇빛은 이번 여정의 만만치 않은 복병이 될 듯하다. 새벽 일찍 길을 나선 것은 이런 열기를 좀 피해 비교적 선선한 아침 시간에 유적을 둘러보자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 찾아가는 지역, 바로 미힌탈레(Mihintale)로 가는 도로 사정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힌탈레는 콜롬보나 캔디 등에 비해 귀에 익은 이름이 아니다. 관광객의 발길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스리랑카의 불교사와 그 유적지를 훑어보고자 한다면 ‘불교 도래지 미힌탈레’를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승당-병원-목욕탕…즐비한 유적군

야트막한 산악 지역인 미힌탈레 유적은 산 위로 까마득히 뻗어있는 계단 아래서부터 시작됐다. 1934년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지기 전까지 이 거대한 유적은 정글에 묻혀 있었다. 산등성이를 따라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석주와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건물의 잔해들은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승당과 병원, 목욕탕, 불탑 등의 흔적이어서 이 일대가 하나의 거대한 사원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주차장에서부터 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돌계단이 무려 1840계단이나 된다는 안내인의 말에 한발 한발 오르며 헤아리던 셈을 미련 없이 포기해 버렸다. 정상을 향해 올라 갈수록 점점 더 가파르게 변하는 계단에 숨이 턱까지 차올라 숨소리가 ‘헉’하는 탄식으로 바뀔 즈음, 마침내 하얀 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암바스탈라 다고바(Ambastala Dagoba)로 불리는 이 탑은 여타의 스리랑카 탑들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기원전 3세기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한 마힌다(Mahinda) 스님과 불교를 수용한 데바남피야 티샤(Devanampiya Tissa. B.C.E 250~210) 왕이 처음 대면한 자리에 세워진 탑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또 이 탑에는 83세에 입적한 마힌다 스님의 유골이 모셔져 있다고 하니 이 탑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된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탑 옆에는 마힌다 스님의 동상이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1992년 조성됐다는 이 입상은 온통 도금을 한 후 눈동자만 까맣게 칠해 놓아 우리의 그것과는 영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반듯한 자세로 서 있는 마힌다 스님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니 참으로 미남이다. 넓은 이마, 적당한 크기의 점잖은 콧대, 엷게 미소를 머금은 입술, 곧고 당당한 어깨와 훤칠한 키, 군살 없이 매끈한 몸매. 아쇼카 왕의 아들이라는 마힌다 스님의 풍모에서는 과연 법왕의 후손다운 위풍이 느껴졌다. 스리랑카 사람들이 어떤 기록에 근거해 마힌다 스님의 모습을 이처럼 빚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스님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이 듬뿍 담겨 있음이 분명했다.

미힌탈레로의 불교 도래는 스리랑카 불교사에 있어서도 매우 드라마틱한 기록이다. 인도의 법왕으로 칭송되는 아쇼카왕은 재위기간(B.C.E 268~232년 경) 동안 불교 전파를 위해 외국으로 총 아홉 차례에 걸쳐 전도사를 파견했는데 그 마지막 파견지가 바로 스리랑카였다. 이 아홉 번째 전도사로 파견된 인물이 아쇼카왕의 아들, 바로 마힌다 스님이다.

<사진설명>마힌다 스님과 데바남피야 티샤 왕의 첫 대면지에 세워진 암바스탈라 다고바. 주변에 망고나무와 보리수가 우거져 있다.

마힌다, 망고나무로 왕을 시험

20세에 모가리 푸타를 스승으로 출가해 상당한 수행을 쌓았던 마힌다 스님은 불법을 전하라는 부왕의 명을 받들어 32세였던 기원전 247년 스리랑카로 향했다. 4명의 비구와 2명의 사미를 동행한 채 신통력을 발휘해 하늘을 날아 바다를 건넌 마힌다 스님은 아누라다푸라에서 13킬로미터 떨어진 이곳 미힌탈레의 바위산 정상에 내려앉았다. 마힌다 스님이 스리랑카에 도착한지 며칠 후인 음력 5월 보름날, 당시 아누라다푸라의 왕이었던 데바남피야 티샤는 사슴 사냥을 위해 이곳 미힌탈레 지역을 찾아왔다. 왕이 이곳에 도착하자 이 산의 신은 마힌다 스님과 왕을 만나도록 하기 위해 사슴으로 변신해 왕을 유인했다. 사슴을 쫓아 산속 깊이 들어온 데바남피야 티샤 왕은 바위산 정상에서 수행 하고 있던 마힌다 스님과 그 일행을 발견하고 이곳에 있는 연유를 물었다. 하지만 마힌다 스님은 ‘데바남피야 티샤 왕이 과연 불법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만치 현명한지 시험해봐야겠다’는 생각에 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마힌다 스님은 앞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며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왕이 대답했다.

“이 나무는 망고라고 불립니다.”
“이 망고나무 말고 또 다른 망고나무가 있습니까?” 마힌다 스님이 다시 물었다.
“이곳에는 망고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그럼, 이 망고나무들 외에 또 다른 나무가 있습니까?”
“망고나무 외에도 다른 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왕이 대답하자 마힌다 스님이 다시 또 질문을 던졌다.
“망고나무들과 망고 아닌 나무들 외에 또 다른 나무가 있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왕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저 이 망고나무가 있을 뿐입니다.”

이 대답을 들은 마힌다 스님은 왕이 붓다의 가르침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지성을 갖췄음을 알고 그 자리에서 왕에게 『상적유소경(象跡喩小經)』을 설하였다. 마힌다 스님의 법문을 들은 왕은 곧바로 불법에 귀의하였고 7일 만에 왕비와 신하, 백성 등 8500명이 왕의 뒤를 이어 불교도가 되었다. 불교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왕은 마힌다 스님에게 아누라다푸라에서 멀지 않은 마하메가와나(Mahameghavana)숲과 68개의 동굴사원 등을 보시했다고 하니 불교를 접한 왕의 기쁨과 신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해볼 만한 일이다.

일주일 만에 8500명 불교 신자로

<사진설명>스리랑카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마힌다 스님.

미힌탈레라는 이 곳 지명은 이러한 역사를 말해 주는 듯 ‘마힌다의 언덕’이라는 뜻이며 이 탑의 이름인 암바스탈라 또한 ‘망고’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서 상의 기록일 뿐 기원전 247년에 이르러서야 불교를 받아들였다는 기록에 대해 만족해하는 스리랑카 인들은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스리랑카 사람들이 널리 믿고 있는 전설에 따르면 불교 전래 시기는 스리랑카의 건국 설화와 연관돼 있다. 고대 스리랑카의 역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건국은 기원전 6세기 인도로부터 건너온 스리 위자야 일행에 의해서인데 이 설화는 7세기 인도로 구법여행을 떠났던 현장 스님의 『대당서역기』에도 소개돼 있다. 『대당서역기』에 따르면 스리랑카에 최초의 나라를 세운 스리 위자야는 사자와 인도의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아버지인 사자를 죽이고 스리랑카로 넘어와 섬에 살고 있는 온갖 야차들을 정복한 후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자의 후예’라는 뜻의 싱할라(Sinhala) 민족이 스리랑카의 주인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때가 기원전 543년으로 바로 상좌부 불교계에서 사용되는 붓다의 입멸연대와 일치한다는 것이 스리랑카 사람들의 믿음이다. 자신들의 역사를 붓다와 연계시키고 있는 스리랑카 사람들의 이 같은 믿음은 붓다를 향한 그들의 깊은 신앙의 단면인 듯해 빙그래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스리랑카 사람들이 붓다의 입멸 연대를 싱할라 민족의 시원으로 삼는 것만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기어코 이 섬에서 붓다의 흔적을 찾아내고야 말았다는 점이다. 스리랑카에는 붓다께서 재세시에 이 섬을 방문했다는 유적이 3곳이나 있는데 그 사실 여부를 떠나 붓다를 향한 이들의 눈물겨운 신심이 만들어낸 자랑스런 믿음인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붓다의 머리카락 봉안했다는 대탑

이런 생각으로 암바스탈라 다고바 주위를 배회하다 부처님의 머리카락이 봉안돼 있다는 맞은편 마하세야 다고바(Mahaseya Dagoba) 쪽 계단으로 발길을 옮겼다. 산 아래에서부터 웅장한 모습을 보였던 탑이 바로 이 마하세야 다고바다. 정말로 탑 안에 부처님의 머리카락이 모셔져 있는지 사실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그렇게 믿고 있는 이들의 신심이 이 높은 산꼭대기에 이처럼 거대한 탑을 쌓아올린 것만은 분명하다. 계단을 오를수록 탑은 점점 더 크게 다가오더니 마침내 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웅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는 순간 탄성은 눈앞에 펼쳐진 대지를 향해 터져 나왔다. 탁 트인 하늘을 거침없이 수평으로 가르고 있는 광활한 지평선. 그 아래로 저 멀리 아누라다푸라의 거대한 유적들이 펼쳐졌다. 10여 킬로미터 밖에서도 뚜렷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아누라다푸라의 대탑들은 푸른 호수에 다소곳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아침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미힌탈레를 통해 스리랑카에 들어온 불교는 바로 저곳, 고대 싱할라 왕조의 첫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에서 저처럼 화려하게 꽃핀 것이다. 다음 목적지인 아누라다푸라의 그 하얀 불꽃을 바라보는 순간 순례자의 심장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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