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6 이색이상분 1

기자명 법보신문

색·상 여읜 바라밀 실천이 법신의 참 모습

<사진설명>경주 불국사 경내 비로전.

羅漢應供薄 象身七寶珍 雖然多濁富 爭似少淸貧 罔象只因無意得 婁失在有心親
나한은 공양이 부족하고, 코끼리 몸은 칠보로 장엄했도다. 비록 탁한 복으로 부유할지는 모르나 어찌 가진 것 없는 청빈한 수행과 비기겠는가? 罔象은 다만 무(無)를 인해서 진리를 얻었고, 婁는 유(有)를 마음에 두어 진리를 잃었도다.

〈보충설명1〉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인용한 고일착입니다. 옛날에 두 비구가 살았습니다. 한 비구는 금강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챙겨서 아라한과를 이루었지만 쌓은 복이 엷어서 늘 공양이 부족했습니다.
다른 한 비구는 수행은 게을렀지만 보시공덕이 큰 줄 알아서 많은 보시를 했고 그 공덕으로 죽은 다음에 임금을 태우는 코끼리가 되어 몸에 칠보를 달고 다녔습니다. 이 둘의 경우를 비교했을 때, 둘 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아라한을 이룬 비구가 칠보를 걸친 코끼리 보다는 수승합니다.

〈보충설명2〉 罔象과 婁의 이야기는 장자의 외편에 등장하는 寓話입니다.

壯者 外篇 天地 第十二

黃帝遊乎赤水之北 登乎崑崙之丘而南望 還歸 遺其玄珠 使知索之而不得 使離朱索之而不得 使喫索之而不得也 乃使象罔 象罔得之 黃帝曰 異哉 象罔乃可以得之乎
황제가 적수 북녘을 노닐어 곤륜산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다 궁전으로 돌아올 때, 현주를 잃었다. 신하 지(知)로 하여금 찾게 했으나 얻지 못했고, 離朱(婁)로 하여금 찾게 했으나 얻지 못했고, 喫로 하여금 찾게 했으나 얻지 못했다. 그래서 象罔(罔象)을 시켰는데 象罔이 그것을 찾아왔다. 황제는 말했다. “기이하도다! 상망이 그것을 얻었다니~”

〈보충설명1〉 북(北)쪽은 차고 어둡고 검은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진리의 본체를 의미하며, 남(南)쪽은 밝고 따뜻한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진리의 용(用)을 의미합니다.

〈보충설명2〉 곤륜산은 속세와 격리된 높고 현현한 산으로서 북쪽과 함께 적멸의 세계인 진리를 의미합니다. 황제가 곤륜에 올랐다는 것은 금강경에 비유하여 공(空)사상에 안주했다는 뜻입니다.

〈보충설명3〉 還歸는 오욕락으로 가득한 현실에 젖었다가 청정한 진리의 세계로 돌아온 상태를 말합니다.

〈보충설명4〉 玄珠는 깊고 그윽한 진리의 세계를 뜻합니다.

〈보충설명5〉 還歸와 玄珠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에 관한 설화에서 그 의미를 더 깊게 새겨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문수보살을 진리의 체(體) 또는 智慧로 비유하고, 보현보살을 진리의 용(用) 또는 수행의 실천으로 비유합니다. 이 둘은 언제나 새의 양쪽 날개처럼 또는 수레의 양 바퀴처럼 항상 같이 있어야 합니다.

하루는 보현보살이 중생 구제를 위해 시장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문수가 300년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수가 엿장수 행세를 하며 보현을 찾으러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문수가 보아하니 보현은 축생의 구제를 위해 돼지가 되었는데 자기의 본래 모습을 잊은 채 300년 동안이나 돼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문수는 돼지의 배에다가 ‘久在塵勞則 賣却本來事 (오래도록 진로 가운데에 있으면서, 본래의 진리를 잊어버렸도다)’라고 썼습니다. 그러자 곧 돼지가 죽었습니다.

보현이 300년 간 돼지가 되었음은 오랫동안 오욕락에 물든 중생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며, 문수가 써준 글을 통해 돼지가 죽었다고 하는 것은 지혜를 통해 오욕락을 초월하여 진리를 되찾았다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 설화에 비추면 황제가 곤륜의 남쪽을 바라보다가 현주(玄珠)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보현처럼 시장에서 용(用)에 매이다가 본체를 잊었다는, 즉, 현실에 빠져 있다가 진심을 잃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보충설명6〉 ‘知’라는 것은 우리의 알음알이를 말합니다. 空性의 진리를 지식과 언어로 찾으려 하면 당연히 찾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보충설명7〉 ‘離朱(婁)’는 중국에서 가장 시력이 좋은 사람입니다. 밝고 어두운 것은 진리의 외현적인 모습이지 진리의 참 모습이 아닙니다. 눈을 통해 밝고 어두운 모습만을 찾으면 당연히 진리와 멀어집니다.

〈보충설명8〉 ‘喫’는 변론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진리는 말을 내어 시비를 가리기 이전의 차원입니다.

〈보충설명9〉 ‘象罔(罔象)’은 無爲, 無相, 無住로 사는 사람입니다. 진리는 당연히 無爲, 無相, 無住일 때에 비로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상(象)은 상대적인 개념의 모습을 말하고, 망(罔)은 상대적인 개념이 떨어진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象과 罔을 모두 상대적 개념이 떨어진 ‘無’로 이해해야 합니다.

‘색(色)과 상(相)을 여읜다’는 말은 부처(진리)를 화신불의 相好인 32相80種好로 보지 말라 즉 威德의 모습을 떠나서 법신의 자리를 보라는 뜻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철저하게 무위와 무상으로서 부처(覺者)가 되신 분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그러하셨 듯 離色離相이 철저히 이루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법신(참부처, 진리)을 보는 것입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佛可以具足色身見不 不也 世尊 如來 不應以具足色身見 何以故 如來 說具足色身 卽非具足色身 是名具足色身
“수보리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부처를 가히 구족색신으로 볼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응당 구족색신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여래께서 구족색신이라 말씀하신 것은 곧 진리의 차원에서 구족색신이랄 것이 없기 때문에 다만 구족색신이라고 이름 했을 뿐입니다.”

{六祖}佛意恐衆生 不見法身 但見三十二相八十種好 紫磨金軀 以爲如來眞身爲遣此迷故 問須菩提 佛可以具足色身見不 三十二相 卽非具足色身 內具三十二淸淨行 是名具足色身 淸淨行者 卽六波羅蜜 是也 於五根中 修六波羅蜜 於意根中 定慧雙修 是名具足色身 徒愛如來三十二相 內不行三十二淸淨行 卽非具足色身 不愛如來色相 能自持淸淨行 亦得名具足色身
부처님 뜻은 아마도 중생이 법신을 보지 못하고 단지 32상 80종호의 자금광 몸을 보면서 그 것을 여래의 진실된 몸이라고 생각할까 저어하여 이런 미혹된 집착을 버리게 하려고 ‘부처를 가히 구족색신으로 볼 수 있겠는가?’하며 수보리를 빌어 물었지만 32상은 곧 구족색신이 아니요, 안으로 32가지 청정한 행을 실천하여야 구족색신이 되는 것이다. 청정한 행이란 곧 육바라밀이다. 오근(五根) 가운데에서 육바라밀을 닦고, 의근(意根)에서 정(定)과 혜(慧)를 두루 닦아야 이것을 구족색신이라 이름 할 것이다. 다만 여래의 32상만을 사랑하고 안으로 32청정행을 닦지 않으면 곧 구족색신이 아니요, 여래의 색신만을 사랑하지 않고 능히 스스로 청정행을 지킨다면 또한 구족색신이라 이름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충설명〉 사상(四相)을 모두 끊고 청정수행을 지어 나가는 육바라밀 실천이 온전했을 적에 그것이 바로 법신의 모습이고 구족색신의 모습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과 가지가지 相에 집착한다면 금강경 살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계속〉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