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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일본 교토불교대 이케미 쵸류(池見澄隆) 교수

기자명 법보신문

동아시아 불교학계에 심성사 첫 도입

지금은 보편적인 학문의 영역이 된 심성사는 197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아날학파에 의해 처음으로 주창되었다. 심성사를  방법론으로 취한 연구는 역사학회는 물론 다양한 학문의 분야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데, 동아시아 불교학계에 가장 먼저 이 분야에 연구성과를 드러낸 이가 바로 이케미 쵸류(池見澄隆) 교수이다.

심성사가 자신의 방법론의 튼튼한 두 다리로 삼고 있는 것은 집단적 무의식과 긴 역사적 시간이라고 하는 술어이다. 집단적 무의식이라는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시대 민중의 관념화된 심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심성이 긴 시간의 흐름, 예를 들면 2∼3백년이니 3∼4백년이니 하는 시간을 두고 변화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일반적으로 논해온 정치·경제의 역사는 배제되기 마련이다. 승자와 패자의 논리, 소유와 착취로 재단된 역사적 도식구분이 배제되는 것이다. 이는 역사의 연구방법을 비로소 그 역사의 주인에게 돌림으로 인해 역사가 당연히 대상화했어야 할 길을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대표적인 저작이 한국에서도 소개된 필립 아리에스의 역작 『죽음앞의 인간』이다.

이케미 교수에 의하면 불교를 서술하는 지금까지의 방법은 불교 외적인 역사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는데 심성사의 영역은 바로 불교의 내적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이 된다. 즉, 불교를 신앙해 온 역사가 불교의 내적 역사가 되는데 그 주체는 바로 이름도 얼굴도 없는 민중이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교조나 조사의 언설을 통한 교리교학의 논쟁이나 탐구를 통해 불교사를 기술하는 것이 그 중심과제가 되었다고 한다면 이젠 이 불교의 맥을 실제로 이어온 신앙인의 역사가 기술되어야만 하며 이러한 역사의 회복을 통하여 이들에게 이를 되돌려줘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불성’ 심층 연구

그의 대표적인 저작인 『중세의 정신세계』는 탄탄한 심공사 방법론의 기반아래 이루어져 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이 책에는 심성사의 내연을 확장시켜 정신사적인 입장에서 불교를 바라보는 관점이 예리하게 도출돼 있다. 이 책은 불교가 일본에 토착되는 가운데 일본 민중의 의식을 어떻게 지배해갔는가, 토착불교를 통해 정통 교리교학의 관점이 민중의 입장에서 어떻게 굴절되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가, 나아가 실제로 불교가 모든 계급의 불교인들에게 어떠한 내적 양식을 주었는가 하는 물음과 연구를 통해 심성사라는 영역을 당당히 불교학 연구의 대열에 들어서게 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공적이 있다.

장의불교에 대한 긍정적 해석

특히 이 저서를 통해 역사적인 흐름 아래 일본인의 생사관을 새롭게 정립했으며 특히 임종행의(臨終行儀)에 대한 정신사적 연구는 학문의 독자성에 있어서 일본사상사에 큰 획을 긋는 획기적인 연구임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이는 장제불교(葬祭佛敎)라고 하는 부(負, negative)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일본불교 연구에 있어 보다 긍정적인 해석의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문제의식에 바탕한 가운데 다양한 소재를 통해 일본불교연구를 독창적으로 개척해 갔다는 점에서 이케미 교수의 공로가 상당히 크다고 하겠다. 또한 고대와 근대를 넘나들면서 중세 정신사의 영역을 열어놓음으로 인해 일본 정신사상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손꼽히고 있다.

한국불교연구는 이러한 외국학자에 의한 자국의 불교연구와 비교해서 이제야 불교의 전 역사 가운데 근대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을 뿐 전체적인 흐름을 감지하기에는 아직도 요원하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예를 들어 조선불교사를 어떻게 기술해야 하는가는 학자들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도 있는데 이제까지는 정치ㆍ경제사적인 입장에서 유교를 국시로 하는 정책에 의해 불교가 탄압을 받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기술이다. 물론 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불교의 민중화 문제에 이르면 오히려 이는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위경(僞經)인 부모은중경, 지장경 등을 통한 민중의 교화가 이루어져 갔다는 점이다. 부모은중경만 해도 현재 많은 판본이 존재한다. 이를 유교화의 갈등에서 생긴 전략적 선택이라고 해도 이 위경을 유교경전이라고 보는 이는 없다. 이렇게 볼 때 이 조선불교의 민중화의 맥락과 과정은 불교연구를 새롭게 조명하는 그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이는 이 땅에 살았던 민중의 신앙의 역사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렇게 문제의식이 발로 될 때 비로소 한국 불교사에 있어 새로운 감각과 지평이 열리게 되리라고 본다.

이럴 때 이케미 교수의 연구 방법론은 그 일본적인 요소는 차치하고라도 우리 나름의 신앙인의 역사에 대한 연구방법을 개척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이제 그가 어떻게 이러한 연구에 천착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직접 듣기로 한다.

“불교사상을 사정거리로 둔 일본인의 사상 및 정신과 그 변천, 그것이 저의 연구테마입니다. 이 연구에 전력을 기울이기까지 큰 만남이 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책을 통한 사상연구의 방법과의 만남, 또 하나는 스승을 통한 정신사의 입장과의 만남입니다.

불교학을 배우고 있었던 대학 3학년 때, 저는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1911-1999, 일본을 대표하는 철학자, 불교학자)의 저서인 『동양인의 사유방법』가운데 「일본인의 사유방법」과 만났습니다. 그 내용은 외래종교사상인 ‘불교사상’을 일본인이 어떻게 수용해 왔는가, 그 수용형태로부터 일본인의 사고방식을 고찰한 것이었습니다. 나카무라 선생은 ‘인도 불교학’이 전공이었지만 선생이 제창한 수법은 당시 ‘불교학’이라고도 ‘문화사’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그러한 참신한 연구를 한 나카무라 선생님에게 저는 깊은 감명을 받음과 동시에 크게 촉발되어 그 후 ‘불교를 기초로 한 일본사상의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서적을 통한 나카무라 선생님과의 만남이 저의 연구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후에 단 한번이었지만 나카무라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교토불교대학 불교학과가 주최한 회합이었는데 당시 불교학과 주임이었던 저는 사회를 담당하였습니다. 나카무라 선생님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제가 연구자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된 것이 나카무라 선생의 저작이었다고 에피소드를 말씀드렸을 때 나카무라 선생은 부끄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는데 그 인상이 지금도 크게 남아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수치심’ 연구중

정신사의 입장과의 만남은 말하자면 모리 미키사부로오(森三樹三郞, 1909-1986, 중국사상사가)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모리 선생님은 오오사카대학을 정년퇴임한 후 불교대학에 부임하셨는데 저와는 부모와 자식과의 연령차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격차를 넘어 일본 사상사를 연구하고 있던 저에게 있어서는 연구대상이 다르기는 하지만 연구의 방법론이나 문제의식에 있어서는 유사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모리 선생이 제창한 ‘정신사’라고 하는 사고방식에 공명했습니다. 언젠부터인가 강의를 필두로 하는 직무시간 이외의 대부분을 모리 선생과의 담론으로 보내면서 실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저는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수치〔恥〕’의 사상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습니다. 명치시대 이전은 일본인에게는 수치뿐만이 아니라 ‘참괴(慙愧)’라고 하는 불교사상에 깊이 관련된 심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리 선생과의 만남 가운데 그 분에 대해 참괴의 감정을 안고 있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느 논문에서 모리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서 가르쳐 주셨던 견해를 인용할 때 마치 자신의 이론인 것처럼 오해를 불러들이기 쉬운 표기를 해버렸습니다. 왜 그 때에 ‘모리 선생님의 아이디어이다’라고 하는 설명을 써넣지 않았던가. 이 참괴의 생각을 지렛대로 더욱 탐구를 깊게 해 가는 길이 모리 선생의 은혜를 갚는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익선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이케미 쵸류 교수는

1941년생. 동북대학 문학박사, 현재 교토불교대학 부총장, 불교대학 문학부교수, 일본종교학회이사, 불교사학회 평의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중세의 정신세계』(人文書院),『일본불교의 射程-사상사적 접근』(共編者,人文書院),『도설ㆍ일본불교의 세계』(共著, 集英社),『일본인의 불교6』(共著, 東京書籍),『葬祭佛敎』(共著, 논불社),『慙愧의 정신사-「또 하나의 수치」의 구조와 전개-』(思文閣出版) 등이 있다.


“천여년간 꾸준히 흘러온 인간의 일상적 사유 주목”

e-mail 인터뷰

▶불교역사 연구를 통해 드러나는 표층(表層)과 심층(深層)이라는 용어를 쓰시고 계시는데 어떤 경우에 이를 사용하고 있습니까?

- 기존의 불교사상사 연구에 있어서는 표층을 연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거대담론과도 같이 존재감이 큰 불교자인 개인이나 집단, 또는 카리스마성을 띤 조사들이 어떻게 사유하고 행동했는가에 대한 것이 주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층의 기저에는 심층의 수맥이 흐르고 있다고 봅니다. 이 수맥은 표층의 이념을 지탱하는 정념(情念)을 포함하는 영역을 말합니다. 예들 들어 일본불교에 있어 ‘죽음과 구제(救濟)’를 논할 경우 이를 둘러싼 심층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심성의 역사라고 하는 발상이 유효합니다. 심성이라는 것은 참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사유나 감성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이를 통해 느끼고, 살고, 죽고, 행동하는 의식의 일상이라고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표층의 역사, 예를 들면 정치사나 경제사 등이 비교적 짧은 시대 속에서 획기적인 상황을 나타내는데 반해 심층의 역사는 5백년에서 천년여의 긴 시간에 걸쳐 완만하면서도 확실한 변화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불교연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양국의 불교는 역사적 보편성을 획득한 불교의 이념 아래 각각의 독특한 토양을 자양분으로 토착화를 이루어 왔습니다.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는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한편 일본에서 불교를 공부하는 많은 한국 학생들을 볼 때 그 사유구조가 한국인 특유의 전체적인 관점이나 다양성에 대한 천착이 강한 반면, 일본의 학생들은 한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 추적하는데 큰 소질을 가지고 있음을 봅니다. 이 둘이 서로 보완 된다면 양국에서 좋은 학문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연구자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소중히 하고 계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마른 모래가 물을 흡수하듯 저는 학문과 인간, 인격적인 면에서 모리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를 통해 보건데 저는 인문계통의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내면의 자기탐구」에 대한 과제를 통해 이를 도와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교토불교대학의 학생이 친구와 등산을 갔다가 조난을 당하여 일주일 후 구조되었을 때, 팔과 다리를 두드리며 육체가 있다는 기쁨에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 후 두 사람은 출가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극한 상황은 삶의 방식에 크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이러한 극한 상황은 간단히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숙제로 제출하게 해서 객관화시키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자신 나름대로 해석이나 의미를 부여하게 합니다. 주입된 지식이 아니고 작은 일이라도 자신의 체험이야말로 이러한 해석과 의미부여가 이후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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