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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보다 더 믿음직한 ‘10년 동지’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
진 관 스님 - 조 혜 은 간사

“지금 형편은 어렵지만
우리가 길 닦아 놓으면
다음 세대가 혜택 볼 것”

“스님은 순수한 열정과
신념으로 현장 지키는 분
작은 힘이라도 돕고 싶어”

인터뷰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10여 년을 함께 일해 온 진관 스님과 조혜은 간사를 한 자리에 불러 앉히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관 스님하고 말씀하세요. 전 별로 할 말도 없어요.”

누차 자리를 사양하는 조 간사를 떠밀듯 끌고 와 한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조 간사 앉은 자세가 영 불편하다. 스님에게서 멀찍이 떨어지더니 의자 끄트머리에 겨우 걸터앉은 모습이 금방이라도 일어날품새다.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 진관 스님은 1990년 11월 불교인권위원회를 설립해 민주, 통일, 인권 운동에 헌신한 불교계의 대표적인 스님으로 손꼽히고 있다. 조 간사도 1995년 불교인권위원회의 간사로 발을 들인 후 지금까지 10여 년 이상의 세월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불교인권위원회의 사무를 맡고 있다. 그렇게 오래 함께 일을 해왔지만 막상 자리를 함께한 두 사람은 만난 지 며칠 안 된 듯 서로에게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1994년에 양심수를 돕기 위한 일일 찻집을 했습니다. 그때 일손이 필요했는데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가 당시 동산반야회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조혜은 씨를 만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안면만 있었지 잘 알지는 못했지요. 하지만 무턱대고는 ‘와서 일손 좀 거들어 달라’고 했더니 두 말없이 일을 도와주었어요. 그게 조 간사와 처음 일을 하게 된 인연이었습니다.”

진관 스님은 이듬해인 1995년 4월 불교인권위원회 간사로 조 씨를 채용했다. 하지만 말이 채용이지 월급이며 처우가 직장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열악한 상태였다.

무턱대고 “일 좀 도와달라”

“1995년 4월 1일이 제 첫 출근이었어요. 진관 스님이 간사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며 오라고 하기에 별 생각 없이 출근을 시작했지요. 처음 받은 월급이요?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45만원이었어요.”

월세를 내야하는 사무실에 변변한 집기도 없는 직장이었지만 조 간사는 불평 한마디 없이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겨우 월세방을 벗어나 사무실을 전세로 옮겼다. 조금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하지만 1995년 진관 스님이 북경에서 북측 인사들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 이듬해인 1996년 10월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조 간사에게도 감시의 눈길이 미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집에까지 안기부 요원들이 찾아와 감시를 하더군요. 당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동네 사람들한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어보고 다녔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진관 스님이 구속되자 불교인권위원회의 존립도 불투명해졌다. 별다른 지원금도 없이 운영되던 사무실이었던 까닭에 최소한의 비용 마련도 쉽지 않았다. 조 간사에게도 “이번 기회에 그만두고 나와서 다른 일을 찾아 봐라”며 애정어린 충고를 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글쎄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스님 구명운동하고 면회일정 등을 짜면서 나름대로 사무실을 지켰지요. 어렸을 때 아버지 말씀이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마져 없으면 누가 스님을 도와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이나마 힘이 돼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요? 그런 거 해 본적 없네요. 난 원래 칭찬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사실 조 간사한테서 이런 말 들어본 것도 오늘이 처음이네요.”

진관 스님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 끝내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조 간사는 여름휴가도 한 번 가지 못했다. 조 간사가 휴가를 가버리면 당장 일을 챙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권 운동에 휴가가 어디 있습니까. 그보다는 불교계의 인권 운동이 얼마나 열악한 기반에서 진행돼 왔는지를 이제는 종단에서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는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운동을 해왔지만 우리 다음 세대들은 우리보다 나은 환경에서 불교 인권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스님 대하기가 어렵고 조심스러워요. 스님은 순수한 열정과 신념을 가지신 분이세요. 그렇기 때문에 항상 현장을 찾아다니시고 또 다양한 사안에 동참하시죠. 그러다 보니 간혹 실무자가 처리하기 힘든 일을 급하게 지시하시기도 하지만 지나서 돌이켜보면 그 일이 정말 그 시기에 반드시 필요했던 일이라는 걸 알게 되죠. 그런 점에서 스님의 말씀을 흘려들을 수가 없어요.”

기어코 조 간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 간사가 자리를 비우자 스님이 입을 연다.

“지나고 보면 스님 신념 옳아”

“조 간사가 비록 10년째 간사지만 그래도 석사학위까지 가진 엘리트 간사예요. 부장이니 국장이니 하는 직함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직함이 높아지면 그만큼 책임만 커지고 부담만 될 수 있어요.”

통일운동 등으로 두 번이나 구속됐던 스님은 혹여 주변의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염려했다. 조 간사의 직함을 그럴듯하게 바꿔주지 않는 것도 그런 스님의 속내 때문이다.

그런 스님의 마음을 안다는 듯 조 간사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묵묵히 일을 시작했다. 그런 조 간사를 스님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히 지켜본다. 그 사이로 백 마디 칭찬보다 더 진한 믿음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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