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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법신비상분 1

기자명 법보신문

붓다의 32相도 법신의 그림자일 뿐

<사진설명>경주 불국사 선원.

제26분의 가르침은, 법신의 경계는 내가 우주와 한 모습이라는 것을 체득하여 아는 것이지 추측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천친보살이 나누어 과목친 27단의(斷疑)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제21단의(단평등운하도생의 : 斷平等云何度生疑=소명태자가 과목친 제25분)까지는 법신에 관하여 중근기를 위해 교학적으로 설(說)해집니다. 즉 법신은 적멸(寂滅) 그 자체이므로 32상80종호의 상구족(相具足), 상성취(相成就)로 볼 수 없다(→不見)라고 설(說)해집니다. 그러나 하근기 중생은 법신을 비유로 추측해 알 수 있다는 생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마치 산삼의 잎을 보고 산삼인 줄 알아 산삼을 캐고 더덕의 잎을 보고 더덕인 줄 알아 더덕뿌리를 캐듯, 부처도 상호(相好)로 추측하여 법신을 엿볼 수 있다(→觀)고 생각할 여지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제26분에서는 법신을 보는 것에 관해 ‘見(증거물을 확실히 눈으로 보는 것)’ 대신 ‘觀(추측, 관찰, 고찰, 비교 등으로 보는 것)’字로 대치되면서 법신이 체험의 경계이지 관찰이나 추측의 경계가 아니라고 설해집니다. 번잡한 인식의 작용이나 고정관념 등이 끊어진 법신의 세계는 고찰, 추측, 관찰, 비교 등의 대상이 아니고 자기를 버려 우주적 대아(大我)의 세계로 합일되는 체험에 의해 만나게 되는 것이지만 하근기 중생이 여래의 상호를 보고 진리를 관찰할 수 있을 것으로 의구심을 갖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런 의심을 끊어주는 내용이 내면에 깔려 있습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 觀如來不 須菩提 言 如是如是 以三十二相 觀如來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히 32상으로서 여래를 관할 수 있겠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32상으로서 여래를 관할 수 있습니다.”

〈보충설명1〉 법신은 삼라만상의 근본이며 근본을 알면 지말은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러나 지말에 의지하여 근본을 캐면 착오가 생기기 쉽습니다. 더구나 요즘과 같은 오탁악세의 중생은 상(相)이 무겁게 덩어리져서지말인 상(相)에게서 조차도 속는데 근본인 마음이 왜곡되는 것에 대해 더 이를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부분의 설법에서는 부처님께서 하근기 중생의 오류를 짐작하시고 그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수보리를 하근기 중생의 대역으로 삼아 32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수보리도 부처님의 뜻을 곧바로 헤아려 마치 깨닫지 못한 하근기 중생의 마음인 듯 32상으로 여래를 관(觀)할 수 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러나 해공제일(解空第一)의 수보리가 자기 분수와 달리 하근기 중생의 대역을 맡아 32상으로 여래를 관(觀)할 수 있다고 대답한 것은 부처님 답을 이끌어 내기 위한 연극인 것이며 하근기 중생으로 하여금 법신의 바른 이해에 접근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보충설명2〉 부처님의 상호는 아무리 훌륭해도 다만 법신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이 그림자를 통해 그 뿌리인 부처를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상(相)에 떨어진다면 결코 부처를 알지 못합니다. 삼라만상의 현란함에 속지 않고 그 것이 텅 빈 진리에서 출현한 것임을 알면 법신이 우리 앞에 또렷이 드러나게 됩니다.

{冶父}錯
틀렸도다!

〈보충설명1〉 수보리가 추측으로 여래를 알 수 있다고 답한 것에 대해 야보스님이 잘못된 대답이라고 지적 하는 것입니다.

〈보충설명2〉 ‘착(錯)’은 선(禪)의 입장에서 살인검(殺人劍)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신의 경계에서는 수미산도 가짜고 모든 것이 가짜이므로 사사건건 걸려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泥塑木雕綵畵 堆靑抹綠更粧金 若將此是如來相 笑殺南無觀世音
진흙을 바르고 나무를 깎고 비단에 그린 부처님 모습이여! 푸른 단청, 녹색 단청, 황금 단청일 뿐이로다. 만일 이것을 가지고 여래의 모습이라 한다면 관세음보살에게 비웃음을 당하리.

〈보충설명〉 마지막 구(句)의 ‘죽일 살(殺)’字는 피동형으로서 ‘쇄’로 읽어야 합니다.

佛言 須菩提 若以三十二相 觀如來者 轉輪聖王 則是如來 須菩提 白佛言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不應以三十二相 觀如來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일 32상으로 여래 본다면, 전륜성왕도 곧 여래일 것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뜻을 이해하건대 응당 32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보충설명〉 전륜성왕은 인도의 신화에 나오는 제왕으로서 세계를 통일하여 지배하는 이상적 모습으로 32상과 칠보(七寶)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법신불을 깨달아 32상을 갖춘 것이지만 전륜성왕은 선업(善業)으로 인해서 32상을 갖춘 것이기 때문에 모습만 부처님과 비슷할 뿐입니다.

{六祖}世尊 大慈 恐須菩提 執相之病 未除 故作此問 須菩提 未知佛意 乃言如是如是 早是迷心 更言以三十二相 觀如來 又是一重迷心 離眞轉遠 故 如來 爲說 除彼迷心 若以三十二相 觀如來者 轉輪聖王 卽是如來 輪王 雖三 十二相 豈得同如來也 世尊 引此言者 以遣須菩提 執相之病 令其所悟深徹 須菩提 被問 迷心 頓釋 故 言如我解 佛所說義 不應以三十二相 觀如來 須菩提 是大阿羅漢 所悟甚深 方便 示其迷路 以冀世尊 除遣細惑 令後世衆生 所見不謬也
세존께서 큰 자비로 수보리가 상에 집착하는 병을 아직 제거하지 못했을까 저어하여 이 질문을 하였는데 수보리가 부처님 뜻을 미처 알지 못하고 곧 ‘네, 그렇습니다’ 하였으니, 일찍이 미혹한 마음이요, 다시 ‘32상으로 여래를 觀합니다’ 하였으니, 또 한 번 거듭 미혹한 마음을 보였다. 진리를 떠나 더욱 멀어진 대답을 하므로 여래가 설법하여 저 미혹한 마음을 제거하시기를 ‘만약 32상으로 여래를 본다면 전륜성왕도 곧 여래니라’ 하셨으니, 전륜왕이 비록 32상을 갖추고 있으나 어찌 여래와 같을 수 있겠는가.

세존께서 이 말씀을 끌어 들인 것은 수보리의 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하여 그로 하여금 깨달은 바가 투철하게 해주려는 것이니 수보리가 질문을 받고 미혹한 마음이 단박에 풀어졌기 때문에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 뜻을 관하여 알건대, 응당 32상으로 여래를 관할 수 없습니다’ 했다. 수보리는 대아라한으로서 깨달은 바가 매우 깊은데 방편으로 미혹한 길을 보였고, 세존께서는 세밀한 의혹을 모두 제거하여 후세의 중생들로 하여금 보는 바가 잘못되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冶父}錯
틀렸도다!

〈보충설명〉 상(相)을 초월한 그 자리를 깨달아 들어가면 모든 모습이 부처님 아님이 없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32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고 하는 답도 또한 틀린 답입니다. 그래서 야보스님은 ‘32상으로 여래를 관할 수 있다’는 앞의 경문에 대해서도 틀렸다고 지적하고 또 ‘32상으로 여래를 관할 수 없다는 여기의 경문에 대해서도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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